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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의미와 밸런스 회복

열역학과 '더 파워풀' 공연 예술

by 아란도


우리의 몸은 무질서도가 낮고 균일하다(엔트로피가 낮다). 고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 각자는 움직일 수 있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개별자로서 상호작용 힘을 사용할 수 있다. __열역학 제2법칙 '엔트로피의 법칙'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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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절대영도에 도달할 수 없다는 자연과학 안의 사실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엔트로피는 상수가 되어야 하는 것. 기준(척도)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로지 절대0도 쪽으로 향하는 방향성 만이 있는 것. 인간은 그 자신의 엔트로피가 높아졌다는 사실인지에 의해서 낮아지는 쪽으로 수렴한다. 수렴은 절대0도를 향하는 의지의 다른 이름이다.


'남은 엔트로피'는 열역학 계가 절대온도 0도 가까이에서 열역학적 비평형상태(non-equilibrium state)에 있을 때의 엔트로피와 평형상태(crystal state)에 있을 때의 '엔트로피 간의 차이'를 의미한다. 잔여 엔트로피라고도 한다. __열역학 제3법칙_ '네른스트 플랑크 정리'__


제2법칙으로 엔트로피의 상대적 크기를 알 수 있고, 제3법칙으로 엔트로피의 절대적 크기를 알 수 있다. 제3법칙에서의 엔트로피는 절대영도에서는 상수가 되는데, 이때 엔트로피가 0에 도달하지 않고 남는 엔트로피가 있음이 발견되었다. 절대영도의 방향으로 수렴되기만 할 뿐 절대영도가 되지는 않는 남는 엔트로피인 열 에너지가 있다는 것.


우리가 마트에서 물건을 사도 항상 남는 자투리 동전이 있다. 우리가 시간을 사용할 때도 항상 남는 자투리 시간이 있다. 우리가 음식을 먹어도 항상 남는 자투리 음식 찌꺼기가 있다. 어떤 행위를 해도, 어떤 생각을 해도 남는 감정은 있다. 세상은 항상 자투리를 남긴다. 여지를 남긴다. 딱 떨어지지가 않는다. 이것을 어떻게 활용하거나 줄일까? 가 세상을 푸는 문제의 관건이 되기도 한다.


다이아몬드 결정체는 단단하고 얼음은 쉽게 녹거나 깨진다. 이 차이가 있다. 이 차이 때문에 활용도가 다르다. 활용도의 차이이지 좋고 나쁨의 차이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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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몸에 적용하자면, 인간은 비평형상태에서 존재하며 평형상태로 가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열린계인 인간의 몸은 비평형상태를 유지한다. 인간의 몸은 열린계이고, 열린계는 비평형상태를 유지함으로 인해서 생명이 된다. 에너지를 외부에서 조달한 후 내부에서 처리한다. 이 대사과정에서 엔트로피가 다시 올라간다. 이렇게 올라간 엔트로피를 조절하여 밸런스를 회복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비평형상태를 지속하게 된다. 이러한 반복 과정에서 남는 에너지가 생긴다.


남는 에너지, 아직 처리되지 못한 에너지가 항상 있다··· 나는 이 에너지가 자크 라깡이 말하는 주이상스라고 생각한다. 이것을 인간은 어떻게든 해결하고자 하며 그래서 애도 행위, 취미 행위, 자기 소요 행위 등을 통하여 그 남은 에너지를 해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는 에너지는 있다. 완전히 타지 않는다.


김어준이 기획하고 탁현민이 연출한 < 더 파워풀> 공연의 열기를 피부로 직접 체험하면서 이 남는 에너지인 주이상스를 우리는 지금 해결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방법론적으로도 그렇고 감정적으로도 그렇다. 국민은 이겼다. 그리고 점점 더 농축의 길로 가고 있다.


대선이나 총선, 나이가 되어 투표권을 획득한 후 항상 갑옷과 무기를 내려놓지 못하고 사는 기분이었다. 총선이나 대선이 임박하면 늘 그런 기분에 휩싸였다. 물론 이런 표현은 비유적이다. 이제 이런 남는 에너지가 주는 어떤 상실감과 애상함은 칼을 내려놓고 농기구를 들어야 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어떤 뭉쳐진 미진한 감정의 해소의 방향 때문일 수도 있다.


김어준 더 파워풀 공연은 지난 대한민국의 시간들에서 남은 것, 지난 6개월 간의 긴장 상태와 폭발에 의해 남은 열 에너지를 태우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거대한 용광로에 우리는 무엇을 용해시켰고 그 용광로 안에서 무엇이 다시 생성될지 그것은 각자만이 알 것이다. 잘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 안의 어떤 층층 감정을 풀어내는 시간은 미래로 투사하는 시간이었다고 보인다. 현재에서 과거를 재정돈하는 영상과 애도의 노래와 연주 사이에서 피어나는 것은 하나의 어떤 길이었다.


결국, 이러한 행위는 애도적 행위가 크다. 우리 사회 안에 새겨진 상처와 충격의 소용돌이에서 우리의 영혼을 안정화시키는 행위이다. 커다란 집단의식을 치르는 것 같은 공연 속에서 나는 어떤 안도감을 느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서로에게 기대어 있기에 무너지지 않고 외떨어지지 않으면서도 독립체로 존재하는 것인지 모른다.


남는 에너지가 독이 되지 않도록 다 태워버리는 것이다. 후련하게, 끈적함을 남기지 않도록! 쿨해지도록! 표면상 우리 자신을 위한 위로이지만, 에너지 관점에서 보면 남는 에너지 해결 법이었다. 이 작업은 엔트로피를 낮추어 삶을 살게 하는 시간을 만든다.


우리가 뿜어낸 에너지는 이미 열에너지로 변한 에너지이므로 더 사용할 수는 없다. 이 열 에너지가 우리 안에 가득 찬 채로 계속 남아 있게 되면 감정만 찐득하게 만들 뿐이다. 태우지 않으면 엔트로피가 높아진 상태로 계속 간다.


다 태워버리고 새로운 창의적 에너지를 만들려면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 고대에 축제가 많았던 이유는 바로 이러한 연유에 그 취지가 있었던 것은 아닐는지. 이것이 축제나 잔치의 본 의미가 아니었을까! 그러니 놀이는 어른이 되어도 꼭 필요한 것이다.


축제를 광장에서 제대로 벌여보는 것은 그래서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 축제 하나쯤은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광장에서! 새로운 에너지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 에너지로 또 갈 데까지, 해볼 데까지 해보는 것이다.


···집단적 분출에 의해 변환된 남은 에너지는 건강하게 해소되어야 한다. 그래도 남는 에너지는 있다. 그 남는 에너지는 기필코 사유로 변환되어야 하고 예술적이고도 창의적인 자기 창작으로 거듭나야 하며 그렇게 마침내 소진되어야 한다. 형상이 달라져야 한다. 열 에너지의 흔적만 있는 상태로 변환되어야 한다. 광장예술이 하나의 집제창작이듯이 공연예술 역시 그러하다.


삶은 엔트로피의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지만, 수렴 행위를 통하여 엔트로피를 안정화시켜야 한다. 밸런스 회복이다. 삶은 이러한 패턴의 반복에 의해 지속된다. 물론 반복은 이전과 그 이전의 차이나는 반복이어야 한다. 차이나는 반복은 '수렴'의 강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일지도. 그 차이나는 낙차의 힘으로 우리는 변화를 깨닫고 자각하는 것이 아닐까. 새로 살 힘을 얻는 것. 하고자 하는 의욕 상태가 되는 것. 김어준이 사람들에게 주고자 했던 것은 바로 그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찌꺼기를 해소하고 텅 비어서 다시 차오르는 것 말이다.


시간 속의 김어준, 과거와 현재의 사이에는 열정과 애상함이 있다. 열정이 시간 속에서 애상함이란 열 에너지를 남겼고, 남은 열 에너지의 해소를 원하게 되었다. 그것이 축제였고 잔치였으며 애도의 시간이었다. 환호 속에는 어떤 눈물이 함께 하는 것 같았다. 기쁨과 슬픔이 한데 어우러진 상태에서 피어난 환희, 그와 동시에 어떤 시간의 무상감도 있었다. 시간을 보았다. 우리의 시간이 거기 있었다. 아마도 투표권 얻은 이래 계속 함께 달려온 시간이었을 것이다. 시간의 동지들이 거기 있었다. 앞으로도 함께 달릴 동지들이 거기에 있었다.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지만, 30년 동지들이 거기에 있었다.


산자와 죽은자가 함께 하는 시간, 역사와 재배열된 역사가 만나는 시간, 시간의 공허를 빈틈없이 포착하려는 의지가 있는 시간, 동지는 간데없는데 동지는 또한 거기에 있는 탁현민의 연출이 거기에 있었다.


2시간 10분으로 예정되어 있는 공연이 1시간 여 동안 더 지속되었다. 현장 공연의 묘미였다. 3일간 지속된 더 파워풀 공연에 나는 일요일에 관람했다.


금과 토 공연은 보지 못했으나 그 공연들 역시 깨가 쏟아졌으리라. 일요일 공연은 드디어 거대한 박이 터졌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어준 총수의 형님동생 시전이 드디어 공식적으로 성립되었다. 게다가 김정숙 여사님과는 누님과 시동생의 기묘한 촌수도 만들어졌다. 결국 문재인 전 대통령은 형님이 되셨고, 김정숙 여사는 누님이 되셨다. 이러한 관계 형성은 두 분이 부부라는 것을 떠나서 하나의 각각 개별적 존재자로서 서로서로 도원적 관계를 맺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복숭아나무 아래는 응원봉이라는 요술봉이 대신하였다.


김어준은 6개월 전에 알았어야 했는데 6개월 후에 삶의 하루하루가 정말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내란 기간 동안 고립된 생활로 인해 이석증이 와서 서 있으면 갑자기 어지럼증이 온다고 말했다. 그래서 앉아서 그의 시간을 소화했다. 이를테면 더 파워풀은 잔치 공연이고, 모든 시간은 공연 프로그램의 일환이었다. 여기에는 각자의 그 자신과 그 자신 안에 감추어진 끼가 드러나기도 하며, 좀 더 과장되기도 한다. 무대 위에서 빛나는 주인공의 역할을 모쪼록 소화해 내어야 한다. 마치 원래 그런 것처럼 해내어야 한다. 진실과 허상이 무대 위에서는 모호하게 뒤섞여 있다. 그리고 그 환상감은 공연장이란 닫힌계의 세계에서는 하나의 세계가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소비하고 또 그 세계를 자기 안으로 가져오려고 공연장으로 가는 것이다.


하나의 쇼를 만들고 하나의 세계를 만들고 여기에 <그래이트 뷰티>의 영화적 서사를 나는 다시 이입한다. 마술과 기적의 사이, 그것은 다만 속임수만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진실이라고. 진리는 가려진 커튼 사이로 얼핏 얼핏 보이는 것이지 바로 단박에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탁현민은 자신의 연출에 김어준이 뮤즈가 될지는 생각을 못했었지만, 영감을 주는 뮤즈로 김어준이 탁월하다고 자평하였다. 나는 김어준이 이 시대에 살고 있어서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에 대해 생각한다. 아주 간혹 가다 간혹 오아시스처럼 그런 사람들이 어느 시대에나 있다. 가장 비근한 사람이 '간송 전형필'일 것이다. 그 시대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사람들, 그들은 아마도 시대를 초월해 어느 시대로나 마구 다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래서 좋은 것이다. 선하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고. 불균형을 만들어 내어 판을 흔드는 사람들, 그런 시간 여행자들이 있다. 공연은 이런 환상감을 만들어서 우리에게 퍼트린다. 그런데 환상감 사이로 부는 바람에 의해서 우리는 환기되며 미지를 꿈꾸게 되는 것이다. 우주의 환상감 안이 곧 우리의 정신 안이듯이.


'더 ~풀' 시리즈 공연이 언젠가는 더 노스탤지어 &백 투더 퓨처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이미 우리는 미래에서 그 공연을 관람할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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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런치에는 영상이 안 올라가니 사진만 올립니다. 화질이 선명하진 않지만 제 관점에서 보는 엔트로피 안정화 과정입니다. 공연예술로 보는 우리 역사! 뭉클했습니다. 그 엄청난 시간들··· 다 이겨내고 오늘 여기에 ""대한""이 있네요!



사진1/ 텔레토비처럼 제2주차장에서 잔디언덕을 넘어가다. 그리고 공연 끝나고 다시 언덕을 오르고 내려오다. 이때 드는 생각은 이 언덕에 스릴러나 재난 영화 또는 좀비물 찍으면 딱!이라고 생각했다 공연 끝난 후 1만 5천여 명이 사람이 원형 극장을 천천히 돌아 나오는 풍경이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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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인스파이어 아레나 홀. 공연보러 온 이들이 식사를 할 곳이 마땅치는 않았다. 호텔 투숙객 기준이노 식당이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편의점 CU와 카페와 브런치 스토어가 있다. 빵과 커피를 사들고 노천극장형 계단에 앉아 간단하게 요기했다.

이 전장에서도 영상고래쇼를 하면 멋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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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 더 파워풀 공연 안으로 들어가다

일요일 공연에 문재인 전 대통령 내외분 참석하다. 두 분 인사에 환호로 모두 답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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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4/ 김어준 기획, 탁현민 연출 "더 파워풀"


김어준 막간, 겸손스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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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5/ 공연 프로그램 북(가이드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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