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안에 갈 곳이 없다. 별일 없이 여기서 살아야 하는 시대
사방 거리 네온에 불 들어오면 텃밭만 빈 어둠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잘 분간이 안 되는 식물들 사이가 두터워지기 시작한다.
텅 빈 주차장을 보았다. 그 빈 공간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걸었다. 인간의 이동이 느린 이유는 방해벽 때문이다. 아주 고대에는 중앙아시아에서 만주까지는 금방이었을 것이다. 중간에 방해벽이 없으면 인간은 금세 이동한다. 이때 방향감각은 별자리다. 어디로 갈 것인가를 판단하는 척도는 별자리였다. 고대에 천문학은 인간의 이동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인간에게 맨 처음 척도로서의 랜드마크는 북극성이었을 것이다.
공용 주차장은 항상 차량이 가득 주차되어 있다. 정해진 길로만 걸어가고 걸어올 수 있다. 축제 준비 기간이 되자, 거의 모든 차량이 빠졌다. 갑자기 빈 공간이 되었다. 차량이 없어지자 나는 발걸음이 바로 대각선으로 향하고 있음을 알았다. 좀 더 깊은 곳에서는 이 빈 공간을 지그재그로 왔다 갔다 걸어보고픈 충동도 있었다고 보인다. 그리고 문득, 아, 그렇구나! 했다. 인간은 빈 공간이 있으면 방해벽이 없으니 그냥 걸어가 버리는구나. 인간이 가지 못하는 이유는 국경선이 있고 다 사람이 살고 있고, 빈 곳이 없어서였겠구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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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 갈수록 고대 그리스 문화는 더 친근하게 여겨진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현시점에서 보면 고대 그리스도 멀고 유럽의 역사도 멀고 유럽 대륙도 멀다.
중간에 끊어진 기억 같은 것이 있다. 그러다 갑자기 근대로 와서 미국이 세상을 호령하는 시대로 갑자기 튕겨져 나온 것과 같다.
고전들을 읽다 보면 어떤 오래된 기억을 회복하는 느낌이다. 그간에 익숙해진 습관에 갑자기 버퍼링이 생긴 것처럼 세상이 그렇게 보인다.
예전에 한참 백제·신라·고구려 ·가야 시대의 역사를 흥미롭게 여긴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시대로 가보면 오히려 아라비아 반도와 무역하던 백제와 신라가 보인다. 그때의 해상로 기억이 우리 역사에 흔적으로 남아 있고 어느덧 그 흔적은 기억이 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낯설게 여겨지지 않는 그 무엇이 있다.
우리 문화유산의 유물과 전승에는 고대의 해상로 교역시대의 문화가 어느 층에 고여 있다.
그리고 비단길을 통한 육상 교역 문화의 층이 있다. 불교의 전래가 그러하다. 초기의 불교 전래 외에도 대승불교는 간다라 미술과 함께 들어왔다.
그리고 당나라에서 선불교도 들어왔다. 이 문화들은 다시 휘돌아서 중세와 르네상스에도 흘러들어 갔고 제국시대에도 흘러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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