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가장 먼저 글로 말하는 사람이다
작가는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가장 먼저 글로 말하는 사람이다.
작가는 내면의 고통과 혼란을 감내하면서도, 세상에 먼저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다.
작가는 창작 과정에서 겪는 불안, 외로움, 자기 의심, 사회적 압박을 견뎌낸다.
작가에게는 그 스트레스 자체가 작품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작가는 먼저 말하는 사람이다. 절대적으로 세계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세상이 아직 말하지 않은 것, 혹은 말하기 꺼리는 것을 용기 있게 먼저 꺼내는 사람이다. 시대의 아픔, 개인의 상처, 사회의 모순을 언어와 이미지로 먼저 표현한다. 사람들은 표현된 그 감정을 인식하고 공감하는데, 여기서의 공감이란, 동의적일 수도 있고 다양한 감정의 표출로서의 자기 드러냄이다. 재창작으로의 전환이기도 하다. 사람은 누군가가 먼저 말한 것에서 어떤 상대적 척도를 가늠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감정의 통역자는 말로 표현되지 못한 감정을 언어로 이끌어 내는 사람이다. 감정을 글이나 그림으로 번역하거나 전환시키는 자이다. 진동하는 침묵 속에서 먼저 외치며, 변화의 불씨를 살리는 사회적 촉매이기도 하다.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파먹으며, 마침내 그 빈 통로를 세상과 연결시키고야 마는 내면의 탐험가이다.
"나는 작가다" , “나는 고통을 견디고, 먼저 말한다.” 이 문장은 마치 선언처럼 들린다.
하나의 말의 작동 기제는 그 자체로 창작의 윤리이자 철학의 원천이다. 내면의 강력한 압박은 어떤 말을 뽑아내는 압력이다. 압박이 가해질 때 기계에서 국수가 뽑히듯 말도 뽑아져 나온다. 글을 쓰는 이가 견디는 압박은 바로 그 자신이다.
무수한 글을 썼다. 기억나지 않을 것 같지만, 그 글들을 쓰는 그때의 감정들은 항상 내 안에서 아른거린다. 모든 순간이 내 안에 있는 것이다. 객관적인 대상으로서의 글은 낯설게 다가올 때도 있고 세세한 문장들이 기억나지 않기도 한다. 반면에 전반적인 그때의 그 분위기 잡힘은 내 안에 켜켜이 그대로 존속하면서 그 분위기가 글을 이어가는 것처럼 나에게 전달된다. 그것은 한 번도 끊어진 적이 없다. 그리고 그것이 나아가는 길이 있다. 오로지 그것만을 향한 여정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즐거움과 슬픔을 한데 둘둘 감잡아서 꼭 끌어안고 가는 그 느낌은 어떨 때는 애상함을 풍긴다.
글을 쓰는 일은 그 자신에게는 보석을 세공하듯 연마의 과정이 된다. 또 한편으로는 글을 쓰는 일은 수집이기도 하다. 글감으로 필요한 소재들을 찾아서 떠나는 여행자가 그것들을 한데 끌어모으기 때문이다. 작품의 소재가 될지 한낱 버려질 한 무더기의 쓰레기가 될지 알 수 없는 시린 여정을 견디며 수집하는 글감들. 그렇게 펑펑 터지며 솟아난 글들, 별이 될 수 있을까!
딱 한 권의 책을 써야지!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한 권을 향하여 무수한 글쓰기와 글감을 모아야만 했다. 그렇게 산의 무게에 파묻혀서 동굴 안에 갇히는 기분이 늘어갔다. 마치 세상이 그 책 한 권의 무게로 나에게 가스 라이팅 하는 것 같은 그런 기분, 그 눅눅한 무게들을 지고 동굴 안으로 침잠하는 것만 같은.
지금은 한 권의 책이 되려면 여러 책들이 지지대가 되어야 하고 서로가 견고하게 받쳐줄 때 아치가 된다는 것을 알겠다. 기실, 하나의 책은 이미 여러 권이다. 모두 같은 방향성을 타고 있다. 갈라진 듯 보여도 그것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한 권의 책을 향한 여정이 아주 길어졌다. 그렇게 이미 여러 권의 글 무더기가 되었다.
브런치, 브런치에서의 몇 년 간은 나의 글쓰기에서 보자면 일종의 탐색 기간이었다고 볼 수 있다. 새로운 포맷과 거기에 맞추어 가는 나, 그리고 다양한 브런치 작가들, 그 안에서의 나는 여럿인 듯 혼자인 듯 지냈다. 무엇보다 나는 나 자신을 탐색했다. 어떤 마음을 먹는다는 것은 사람마다 반드시 어떠한 시기가 분명 존재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르익어야 한다. 자기 연결의 시간이 필요하다. 자기 압박을 가하는 시간 안에서 그 시간을 견뎌야 한다. 불쑥 튀어나올 것을 기다리며.
나의 의욕과 활력이 마음을 먹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서서히 열리는 꼼지락 속에서, 나는 한 권의 책을 마음속에 윤곽을 그려 보기 시작하였다. 내가 어떤 책을 품어 읽을 때의 기쁨과 고통처럼, 나에게서 분만된 미래의 내 책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안착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러한 윤곽은 브런치의 여정이면서도 나의 여정이기도 하며 브런치 작가들의 여정이기도 하다. 브런치와의 여정 속에 내가 있다는 것이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