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예언적 글 (기도)

아침놀, 이스라엘 민족에 대해

by 아란도

Nietzsche, Daybreak: "On the People of Israel"

#니체_아침놀 #이스라엘_민족에_대해

이 부분을 다시 읽어 보았다. 옮겨쓰기는 예전에 써둔 것이다. 그때는 뭔가 명확하지 않더니, 다시 읽어보니 명확해진다.


이스라엘은 정확히 니체의 글대로 되었다. 그런데 또 정확히 반대로 행했다. 이것은 배신인가? 지금 니체가 만약 이스라엘을 본다면 어떤 심정일까? 니체의 느낌이 나는 현대 철학들과 또는 가져다 썼으면서도 밝히지는 않고 비틀어버린 '무슨 주의'들을 보면, 모두 니체를 배신한 것이라고 보인다.


왜 그럴까? 왜 자기 안으로부터 솟구치는 힘에 대한 사용법을 배운 후, 그것을 전쟁이나 학살, 혐오와 차별에 적용하는 것일까? 왜 그것을 원한과 악마적 복수에 연계 시키는 것일까? 지금이 2,000년 전도 아닌데.


이스라엘이 오랫동안 인내를 발휘한 것은 오로지 복수하기 위함인가? 그것도 유럽이 아닌 아랍 세계에.


니체의 '이스라엘 민족에 대해' 글은 니체가 그 자신의 저작에서 그토록 비판하며 일어서는 격렬함이 극도로 자제되어 있는 것 같다. 어찌보면 이 글은 정말로 간절히 염원하는 기도와 같은 글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현재, 세계의 현실은 어떠한가? 유럽을 가질 수 없어, 아랍 세계에 대신 피의 복수를 하는 것인가? 이란 땅은 고대 페르시아 제국이 있었던 땅이다. 그 땅은 바빌로니아로부터 자신들의 조상을 해방시켜 준 땅이기도 하다.

복수를 2,000년 동안 품고 있다면, 은혜도 그와 마찬가지 입장에서 판단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서로 신봉하는 관념체계가 달라졌다고, 그 핑계로 전 세계인을 인질 삼는 게 말이 되는가?


(바빌론 유수와 키루스 대왕: BC 586년 바빌론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유대인들이 포로로 끌려갔을 때, 그들을 해방시킨 이는 바로 고대 페르시아(현 이란)의 '키루스 2세(고레스 대왕)'였다. 그는 유대인들에게 귀환을 허락하고 성전 재건을 지원했다. 유대 성경(구약)에서는 이방인 왕인 그를 '메시아'와 유사한 존재로 칭송했다.)


그런데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저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또한 '가자지구' 봉쇄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무엇인가? 전 세계가 그 인질극에 치를 떨며 몸살을 앓고 있는데도 말이다.


지금 이스라엘이 하고 있는 행위는 '나치의 만행'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가자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들도 유전자가 있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그들의 유전자에도 각인될 것이다. 세상에서 영원히 번성하고 영원히 퇴락하는 것은 없다. 종족을 말살한다 하여도 그것은 인류에게 각인된다.


악마를 미워하다가 악마가 된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결정인가? 아니면 네타냐후 한 개인의 원한과 복수인가? 이제 이스라엘 민족은 전 세계에 답을 내놓아야 한다고 본다.


시오니즘은 신나치가 되려고 하는 것인가? 당신들이 하고 있는 행동을 보라! 당신들 꼴을 거울에 비춰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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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비치는 것들을 씁니다. 글쓰기에 진심입니다. 이제 봄이고 오늘은 비가 오고 차를 한 잔 마시고 내 안에서 꿈툴대는 언어들을 옮깁니다. 좋은 날이 그대와 나에게도 함께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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