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 신드롬은 허구이자 환상이다. 노력을 많이 한다고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노력을 적게 한다고 실패하는 것도 아니다. 노력은 수많은 조건 중 하나일 뿐이다.
더는 열심히 살 수 없는 사람들조차도 자기 자신을 벼랑 끝까지 내몰며 인간의 한계에 도전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노력하면 어떤 일이든 잘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열심히 하면 공부도 잘할 수 있고, 좋은 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노력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모든 시험은 노력을 테스트하는 것이어야 한다. 재능이나 인지 능력을 테스트하는 시험이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불공평한 일이기 때문이다. 타고난 재능이 버젓이 인정되어서도 안 된다. 가능하면 입 밖으로 발설해서도 안 되는 단어가 '재능'이고 '능력'이다. 실패한 일에도 포기하지 않고 더 열심히 매달린다. 실패한 일이 성공한 일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노력하면 그 일도 충분히 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렇게 노력 신봉 공화국이라는 나라에 살고 있다. 노력이라는 유일신을 믿으면서 말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충분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자기의 재능과 능력의 한계치를 알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눈치가 빠른 사람들은 아예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어차피 건너가지 못할 강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노력하고 싶지 않으니 내세우는 핑계일 뿐이라고 비난받을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일찍 포기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일 수도 있다. 눈을 살짝만 돌려보면 노력만으로는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노력 신봉 공화국에서 살고 있으니 애써 못 본 체할 뿐이지 눈만 제대로 뜨면 다 알 수 있는 경험적 사실이다.
잭 햄브릭 교수는 의도적 연습과 성과에 관한 모든 연구를 철저하게 조사했다.
게임 분야에서의 노력은 성공과의 관계성이 26퍼센트에 불과했다. 성공의 원인 중 26퍼센트만이 노력이었고, 74퍼센트는 노력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전문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대부분 노력으로 성공의 원인으로 이야기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99퍼센트 이상의 성공이 노력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위 연구의 결과를 기초로 잭 햄브릭 교수는 두 가지를 이야기한다.
첫째, 안데르스 에릭슨 교수(1만 시간 법칙)가 이야기하는 것만큼 혹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믿는 것만큼 노력이 성공의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노력의 효과가 그렇게 크지 않다.)
둘째, 성공의 주요인에는 많은 요인이 있을 수 있지만, 그중 핵심은 타고난 재능과 능력이다.
재능이 노력을 창조한다.(재능-노력 연관성)
재능과 노력은 서로 다른 독립적인 주체가 아니라 서로 깊은 연관성이 있다.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더 많이 노력한다. 쉽게 말해 재능이 노력을 가능케 한다는 말이다.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이 아니라 재능이 있어서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다. 노력이라는 것은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재능이 있어야 노력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노력의 효과가 타고난 재능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노력-재능 상호작용'효과라고 한다. 다르게 표현하면 타고난 재능이 높은 사람은 노력하면 10점까지 결과를 낼 수 있지만, 타고난 재능이 낮은 사람은 노력해서 4점밖에 결과를 낼 수 없다. 타고난 재능이 낮은 사람에게 노력의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타고난 재능이 높은 사람과 비교하면 효과의 크기는 50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날씬한 사람이 적게 먹고, 뚱뚱한 사람이 많이 먹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현상을 기초로 날씬한 사람은 날씬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하고, 뚱뚱한 사람은 전혀 노력하지 않은 게으른 사람이라고 믿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노력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본능과 생물학적인 차이일 뿐이다.
날씬한 사람은 날씬하게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체질적으로 식탐이 적어 많이 먹지도 않는다. 뚱뚱한 사람은 뚱뚱하게 태어났고, 체질적으로 많이 먹을 수밖에 없다. 날씬한 사람은 적게 먹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지만, 뚱뚱한 사람은 먹고 싶지만 먹지 않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해야 한다. 노력만 놓고 따지자면 뚱뚱한 사람이 날씬한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이 한다.
타고난 체질과 유전적 특질들을 인간의 노력으로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똑똑함은 선천적인 것이어서 노력으로 똑똑해지지 않는다. 그릿도 마찬가지다. 그릿을 노력이라고 포장하고, 일견 그렇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릿에 열광하고 용기를 얻으며 열심히 살 것을 맹세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릿은 단순히 성격적 특성인 근면과 성실성을 뜻한다. 그래서 그릿을 쉽게 향상시킬 수 없다. 그릿은 유전이기 때문이다.
노력은 그냥 쉽게 변하지 않는 성실함의 다른 표현일 뿐이고 재능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노력 신봉 공화국에서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사람이 합격하는 것이 아니다. 노력 신봉 공화국에서는 오히려 재능이 합격을 좌우한다. 노력 신봉 공화국의 역설이다.
(노력 신봉 공화국에서는 실패한 사람들도 성공한 사람들만큼 열심히 공부한다. 더 열심히 한 사람도 많다.)
합격한 사실을 알고 난 뒤 사후적으로 그 성공 요인을 노력이라고 설명할 뿐이다. 결과가 발생하고, 그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낸 이유가 노력인 것이다.
노력 신봉 공화국에서 노력 말고 무엇으로 성공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 "나는 머리가 좋아서 합격한 것 같습니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합격생이 있을까? 우리나라에서는 절대 그럴 수 없다. 우리는 노력으로 성공하는 나라에 살고 있고, 그런 나라여야만 하기 때문이다. 진짜 주원인은 재능이다. 똑같이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에 합격과 불합격은 재능에서 결정 난다.
노력의 결과 역시 개인에게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타고난 재능이 있는 사람이 더 많은 노력을 하게 되고, 노력의 효과는 타고난 재능이 있는 사람들에게 더 크게 나타나며, 가장 중요한 것은 노력은 성실성처럼 타고난 성격적 특질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노력은 재능의 부산물이고 재능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이 선택하거나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별로 없다.
노력 신봉 사회에서 살아가는 법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않고서는 관련한 일에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직접 시도해보고, 부딪쳐보고, 경험해봐야 한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최선의 노력을 해봐야만 자기의 재능과 능력을 파악할 수 있다.
노력하더라도 실패할 수 있고, 성공하지 못할 수 있다. 인생에서 성공은 노력으로만 성사되는 것이 아니다. 노력 외에도 중요한 변수들이 많고, 대표적인 것은 재능과 가정적, 사회적 환경이다.
(개인이 자율적으로 선택하거나 결정할 수 없는 것들)
우리의 현실이 우리가 원하는 것만큼 열려 있지 않더라도 우리는 새로운 길을 탐색해야 한다. 자기의 재능을 찾고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우리 모두 다 경쟁에서 이겨 승리자가 될 수 없다.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도 실패하면 다른 길을 찾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실패했다고 좌절할 필요도 없고, 패배감을 느낄 필요도 없다. 사람마다 타고난 재능과 소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 부분을 인정하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인 생각일 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패배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다. 인정하지 않으면 더욱더 괴로울 뿐이고, 끝없는 패배감은 우리의 삶을 통째로 무너트릴 것이다.
성공한 사람들이 누리는 부와 명예, 사회적 위치는 명분이 부족하다. 마이클 샌델이 주장하는 것처럼 그냥 운이 좋았던 것뿐이다.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니다. 당신의 성공이 우연임을 잊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