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란 고통을 줄이는 게 아니라 활기를 되찾는 것이다. 능동적 여가 활동은 그 통로가 될 수 있다.
행복을 미루면 행복의 감각은 녹슨다. 행복을 미루는 것이 자동적인 습관이 되어버린다. 그렇기에 애초에 생각했던 어떤 조건이나 기준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행복을 미루는 사람들은 행복할 수가 없다. 지금 행복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행복하려면 ‘오늘을 희생하면 내일은 행복할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행복은 어떤 조건이 채워졌을 때가 아니라 우리가 행복을 허락한 만큼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
내일 일은 생각하지 말고 오늘만 행복하자는 것은 아니다. 삶은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 수 없다. 숙제처럼 싫어도 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오늘 걸어야 할 길을 걷지 않으면 내일은 뛸 수밖에 없다. 지금 일이 싫다는 이유로 당장 사표를 쓰고 하고 싶은 일을 찾으러 다닐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보다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낮에는 개미에서 밤에는 베짱이로, 혹은 평일은 개미에서 주말은 베짱이로 이중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다. 누구에게나 하루의 몇 시간 혹은 주말의 한나절은 자유 시간이 있다. 이 시간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활동으로 채워 넣는 것이다.
자유를 즐기는 것, 놀 줄 아는 것은 일하는 것보다 훨씬 더 높은 경지의 능력이다.
치유란 잘 놀지 못하는 상태를 잘 놀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실제 정신과의사인 도널드 위니캇Donald Winnicott은 심리치료의 목표를 ‘놀지 못하는 상태에서 놀 수 있는 상태로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단순한 여가가 아니라 놀이와 같은 여가다. 여가 시간이 아무리 늘어나도 놀이가 없다면 워라밸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간의 행복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감정은 즐거움과 기쁨이다. 인간의 행복은 그렇게 진화되어 왔다. 즐거움과 기쁨의 이중회로로 행복나선이 그려진 것이다. 핵심은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균형이다.
오티움은 배움과 새로운 실험을 통한 ‘성장 경험’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성장 경험이 깊어갈수록 창조적 경험으로 나아가게 된다
〈오티움의 특성〉
1. 여가 활동의 결과가 아니라 과정 자체가 기쁨을 준다.
2. 여가 활동을 즐기나 그것이 인생을 지배하지는 않는다.
3. 여가 활동으로 지치는 것이 아니라 힘을 얻어 일상에 활기를 준다.
4. 자신의 기질이나 취향에 잘 맞는 활동이다.
5. 활동 중에 종종 정신적 이완에 이르거나 무아지경의 상태에 빠진다.
6.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참여한다.
7. 상대방이 꼭 필요한 활동(예: 테니스나 탱고 등)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개인적 활동에 기반을 둔다.
8. 활동을 그만둘 때 사람에 따라서는 가벼운 금단 증상이 있을 수 있지만, 서서히 나타나고 일시적이다.
9. 그 활동으로 인해 나쁜 생활 습관을 줄이거나 중단한다.
10. 정신적으로 기민하고 자신감이 증가하며, 자부심이 생겨난다.
11. 그 활동을 통해 삶의 불행이나 고통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다.
12. 어쩌다 한 번 하는 활동이 아니라 일상에서 자주 하는 활동이다.
13. 난이도와 배움에 오티움 활동에 따른 성장의 단계가 있다.
14. 오티움은 깊이가 있기에 쉽게 질리지 않고 꾸준히 지속할 수 있다. 오티움이라고 하려면 최소 1년 이상은 그 활동을 이어가야 한다.
15. 일, 관계, 여가의 역동적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활동이다.
중년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외부로 향했던 에너지가 내면으로 향해야 한다. 미래로 향했던 초점이 오늘로 바뀌어야 한다. 이전에는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가 중요했다면 중년의 위기를 거치면서 내적 만족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고, 미래의 행복을 꿈꾸며 오늘을 인내하며 살았다면 이제 오늘의 행복을 허락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나의 기쁨을 피우는 곳이 굳이 일터가 아니어도 된다. 나로서 숨 쉴 수 있는 작은 세상을 여가에서 찾을 수 있다.
취향에 있어 우열은 없다. 취향은 고유하다. 다만 이는 고정되어 있다는 뜻이 아니다. 끊임없이 변화한다.
오티움은 ‘내 영혼에 기쁨을 주는 능동적 여가 활동’을 말한다. 앞에서 다섯 가지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자기 목적성, 일상성, 주도성, 깊이, 긍정적 연쇄효과다.
자기 위로의 핵심은 ‘스스로 만들어내는 기쁨’이다. 그 기쁨은 내면 깊숙이 침투하는 고통을 막아낸다. 기쁨은 내면의 보호막이 되어준다.
향상심은 경쟁심과 다르다. 향상심은 기본적으로 외부와의 경쟁이 아니라 자신과의 경쟁에 가깝다. 어제보다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고, 어제보다 좀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은 것이다. 이러한 향상심을 ‘미켈란젤로 동기’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말의 유래는 미켈란젤로가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그리던 때의 한 일화에서 비롯되었다. 약 20미터 높이 위에서 고개가 꺾인 채 하루 종일 천장화를 그렸던 그의 모습을 잠시 상상해보자. 그는 장장 4년에 걸쳐 가로 40.5미터, 세로 14미터의 대형 천장화를 완성했다. 하루는 그림을 그리느라 몰두해 있던 그에게 한 친구가 의아해하며 물어보았다. “여보게, 잘 보이지 않는 곳까지 그렇게 정성껏 그림을 그릴 필요가 뭐 있나? 잘 안 보이는 곳은 대충 그려도 누가 그것을 알겠는가?” 그러자 미켈란젤로는 딱 두 마디로 대답했다. “내가 알지.” 즉, 향상심이 높은 사람들은 자기 기준이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실력이 바로 늘지 않더라도 꾸준히 연습을 하고, 누가 보거나 보지 않거나 일정한 오티움 활동의 루틴을 유지한다. 이들은 현재의 실력에 만족하기보다 현재 능력보다 조금 상회하는 목표를 세우고 도전한다. 그리고 이에 미치지 못할 때 체념하기보다 무엇 때문에 미치지 못했는지를 분석하고 어떻게 하면 개선할 수 있는지를 검토해 재시도한다. 즉, 실력 향상을 위해서는 단순히 책을 많이 보거나 연습만 많이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건 자신의 활동을 관찰하고 점검할 수 있느냐다. 이는 습관적인 활동이 아니라 의식적인 활동을 말한다
활동이 깊어지려면 배움 이전에 배움의 태도를 배워야 한다. 뭔가 넘어가기 어렵거나 실력이 늘지 않는 상태에서 체념하고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고민과 훈련을 거듭해서 그 턱을 넘어가는 체험이 있어야 한다. 그 턱이 바로 슬럼프다.
연주 분야에서는 ‘이삭 스턴 규칙’이라는 게 있다. 위대한 바이올린 연주가인 이삭 스턴Isaac Stern이 연주 기법이 좋아질수록 반복 연주를 지루해하지 않고 오래할 수 있다고 한 말에서 유래되었다. 실력이 늘면 늘수록 반복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이 커진다는 것이다. 즉, 실력이 늘수록 지루해하지 않고 집중해서 연습할 수 있는 시간도 길어진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승수효과multiplier effect’라고도 표현한다. 특정 분야에서 작은 이득이 훨씬 큰 이득을 발생시키는 일련의 사건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연습이 기량을 향상시키고, 향상된 기량으로 더 큰 기쁨을 느끼고, 그렇기에 더 오래 연습을 하고, 나아가 더욱 기량이 향상되는 선순환이 성립된다. 경험이 경험을 부르고, 경험이 열정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설적이지만 슬럼프를 환대하며 실력 향상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