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추위
알츠하이머라는 이름을 처음 접한 건 중학생 때 읽었던 에릭 시걸의 <프라이즈>였다. 노벨상을 탄 젊은 천재가 기억을 잃게 되어 낙담하는데, 치매라고만 알고 있었던 증상이 알츠하이머라는 이름이 따로 있던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에릭 시걸은 <러브 스토리>의 작가로 유명하다.)
기억을 잃어 점점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게 되고 퇴행을 하며 가족을 힘들게 하다 결국 세상을 떠나는 무서운 병은 아직도 치료제가 없다. (회사 미국 본사에서 조현병 치료제로 승인받은 약이 알츠하이머에도 효과가 있는지 임상시험 중이라고 한다... 제발!!)
대만의 저명한 언어학자인 저자는 대학교 수학 교수인 남편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가난한 유학생 시절을 거쳐 딸을 다 키워내고 연구자로서의 업적도 많이 쌓았다. 이제 남은 노년을 행복하게 살기만 하면 되는데...
남편이 알츠하이머 초기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일을 놓지 않고 있던 저자는 남편의 증상이 심각해짐에 따라 결국 집에서 전담 보호자가 된다. 딸은 해외에서 생활하고 있어서 도움을 줄 수 없기에, 노년 보호자가 노년 환자를 돌보는 비극이 시작됐다. 낮밤의 개념도 잘 모르고 잠드는 데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남편 때문에 절대적으로 잠이 부족하게 된 아내는 돌봄 노동에 시달리며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모두 녹초가 되어 우울증에도 걸리게 된다.
저자가 정말 대단한 게 증상이 점점 심각해져서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요양원에 보내기 전까지 무려 4년간 남편을 돌본 것이다. 심지어 중간에 남편을 데리고 해외여행까지 다녀왔다. 70살 노인이 자기보다 큰 남편을 데리고... 사랑 아니면 해낼 수 없는 일 아닌가.
돌봄 노동은 모두 집에 남겨진 여성들의 몫이 된다고 꼬집은 많은 책들이 있는데, 국가에서 도움을 주지 않으면 저자가 처한 상황이 나나 내 부모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저 상황에 처하면 얼마나 막막할까? 그래서 심심치 않게 동반자살을 하는 사람들 뉴스도 나오고... 책을 읽고 아내에게 내가 알츠하이머에 걸려서 기억을 잃게 되면 그냥 요양원으로 보내달라고 했다. 아주 빠른 작별로 부탁해! 괜히 나 돌본다고 집에서 낑낑대봤자 사서 고생이라고. 기억을 잃어서 책을 읽거나 영화/드라마를 보거나 대화를 나누고 여행을 다니는 활동을 할 수 없는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라고.
모든 판자가 낡아서 교체된 테세우스의 배는 아직도 테세우스가 타고 온 그 배라고 볼 수 있을까?라는 정체성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테세우스의 배' 질문을 알츠하이머 환자에게도 던질 수 있겠다. 아내를 기억하지 못하는 나는 법적으로는 여전히 남편이긴 하겠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냥 기능을 제대로 못하는 유기체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의문을 가질 때 철학 책을 읽어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