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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가토

권여선

by 김알옹

권여선 작가님의 두 번째 장편소설. 자신의 대학생활의 부채를 갚는 기분으로 쓴 소설이라고 한다. ‘레가토’라는 제목은 음악 용어로 음과 음을 끊김 없이 이어 연주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는 소설에서 과거와 현재, 개인과 사회, 인물들 간의 관계가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음을 상징한다.




(오래된 소설이지만 그래도 스포 주의!)


1970년대 말, 대학 내의 서클 ‘전통연구회’는 전통문화를 연구하는 학술 동아리로 알려져 있었으나, 실제로는 반독재와 민주화를 지향하는 운동권 모임이었다. 서클의 리더인 박인하는 지성과 카리스마를 갖춘 인물로, 멤버들을 이끄는 중심적인 존재였지만 실제로는 내적으로 연약한 존재였다. 서클에는 조용하지만 뚜렷한 자기 목소리를 가진 신입생 오정연도 있었다. 그녀는 전라도 출신으로 작은 사찰을 운영하는 보살님으로부터 태어나 서울까지 공부하러 올라오게 됐고, 어영부영하다가 서클에 가입해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며 조금씩 서클에 스며든다.


어느 날, 서클 회식 후 술에 취한 정연을 인하가 집으로 데려가고, 꼬박 하루 동안 정연은 인하에게 강간당한다. 그 뒤로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서클 활동을 하지만, 몇 달 후 정연은 임신 사실을 알게 되지만 이를 숨긴다. 서클 회원들과 다툰 이후 그녀는 휴학계를 낸 후 어머니에게 돌아간다. 어머니의 사찰에서 아이를 낳은 정연은 몸조리가 끝난 후 복학을 꿈꾸며 친구를 만나러 가까운 광주에 외출을 떠난다. 그때는 80년 5월이었다. 정연은 지옥도와 다름없는 오월의 광주에서 우여곡절을 겪다가 결국 실종된다.


광주 시민을 폭행하는 공수부대원


정연의 실종은 서클 멤버들에게 깊은 충격을 주었고, 사건 이후 멤버들은 각자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정연의 행방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고, 이 사건은 서클 내에서 금기시된 주제가 되었다. 그로부터 30여 년 후, 정연의 동생 하연이 언니의 실종 사건에 대해 진실을 밝히고자 한다. (사실 하연은 정연의 딸이다.) 하연은 과거 서클 멤버들을 찾아가며 당시의 진실을 하나씩 추적한다.


서클의 멤버들은 현재 각기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리더였던 인하는 국회의원이 되어 성공했지만 과거의 그림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다른 멤버들 역시 청년 시절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며, 각자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하연의 방문은 그들에게 묻어두었던 과거를 다시 떠올리게 하고, 마침내 하연이 정연의 딸이며 인하가 생부라는 숨겨진 진실들이 하나씩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정연은 생존해 있었고, 그때 광주에서 정연의 목숨을 구한 프랑스인 교수의 보살핌으로 파리에서 체류 중이었다. 그때의 부상과 충격으로 기억을 잃었고 한국어도 잃었고 휠체어 신세가 됐다. 우연과 우연이 겹쳐져서 정연의 지인과 하연의 지인이 동시에 정연을 발견하게 되고, 아주 작은 희망의 씨앗이 싹을 틔운다.





7080 세대의 성과 여성관이 이렇게 낙후되었을까? 술 취한 상태로 살짝 입을 맞췄는데 이걸로 화를 냈다기로서니 아예 입을 막을 목적으로 후배를 강간해 버리는 인간이 대외적으로는 민주화 투사로 존경받고 나중에 국회의원까지 된다. 피해자는 마치 자신이 죄인인양 제대로 고개도 못 들고 다니고, 임신까지 했는데 출산을 선택하며, 생부란 놈은 30년이 지나도 이 사실을 모른다. 그런 인하는 진짜 허구의 인물일까?


작가님 본인이 운동권에 몸담으면서 실제 주변에서 발생했거나 발생했을 법한 이야기를 어느 정도는 녹여냈을 것 같은데, 이런 위선적인 인간들이 민주화를 이뤄낸 주역으로 사회의 주류가 되어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누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작가님의 의도였다면 성공한 셈이고. 주인공인 정연을 이렇게까지 저열한 남자에게 욕을 보게 하고, 한국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사건에까지 휘말리게 하면서 작가님이 말하고 싶었던 주제는 무엇일까. 개인의 삶은 시대의 흐름에 휩쓸려 흘러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 소설에서 사용한 장치가 강간이어서 읽는 내내 찝찝한 마음이었다.


그와 별도로 소설 전체가 광주를 그리고 있는 <소년이 온다>와는 다른 스타일이지만, <레가토>에서 짧게 등장하는 광주의 참혹함은 몹시 마음을 시리게 한다. (인물은 그 안에서 작위적으로 배치되긴 하지만)


세대별로 마음의 부채가 하나씩 있나 보다. 굴곡진 한국 현대사에서 상처 하나 없는 세대가 어디 있겠는가. 작가님의 세대는 그 빚을 잘 갚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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