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솔제니친의 책은 처음 읽어본다.
스탈린 시절 수용소(굴라크)에 갇힌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의 하루 일상을 그려낸 책이다. 이곳에 갇힌 죄수들은 항상 춥고, 배고프고, 졸리고, 피곤하다. 옷은 얇고 구멍 나서 해져있고, 막사엔 땔감이 없어 오들오들 떨면서 잠들고, 매번 건더기 없는 국을 먹고 노동량에 따라 달라지는 소량의 빵을 먹어 항상 배고프다.
그날, 슈호프는 아침에 눈을 떠 아침식사를 하러 나간다. 식사 중 나온 빵을 몰래 들고 와서 잘 숨겨놓고, 몸이 안 좋은 것 같아서 잠시 진료를 받지만 별다른 조치 없이 작업장에 나간다. 영하 30도의 날씨에 외부 건축 공사에 동원된 죄수들은 수용소 내 소그룹인 반별로 구성되어 노동 할당량을 받는다. 슈호프와 동료들은 이를 채우려 반장과 함께 업무를 분장하여 일사불란하게 작업한다. 무사히 작업을 마쳤지만 수용소 복귀 전 인원확인에 긴 시간이 걸린다. 복귀한 슈호프는 반원 중 부유해서 외부로부터 음식이 잔뜩 든 소포를 받는 사람에게 배달서비스 및 음식 지킴이 서비스를 제공하고 몇 가지 음식을 받는다. 저녁 점호 후 든든하게 껴입은 채로 잠드는 슈호프는 '오늘 정도면 나쁘지 않은 하루였어'라며 만족한 채로 잠든다.
(P.238) 슈호프는 더없이 만족한 기분으로 잠을 청했다. 오늘 하루 동안 그에게는 좋은 일이 많이 있었다. 재수가 썩 좋은 하루였다. 영창에도 들어가지 않았고, '사회주의 단지'로 추방되지도 않았다. 점심 때는 죽그릇 수를 속여 두 그릇이나 얻어먹었다. 작업량 사정도 반장이 적당히 해결한 모양이다. 오후에는 신바람나게 벽돌을 쌓아올렸다. 줄칼 토막도 무사히 가지고 들어왔다. 저녁에는 체자리 대신 순번을 기다려주고 많은 벌이를 했다. 담배도 사왔다. 병에 걸린 줄만 알았던 몸도 거뜬하게 풀렸다.
이렇게 하루가, 우울하고 불쾌한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거의 행복하기까지 한 하루가 지나갔다.
이런 날들이 그의 형기가 시작되는 날부터 끝나는 날까지 만 10년이나, 3653일이나 계속되었다. 사흘이 더해진 것은 그 사이에 윤년이 끼었기 때문이다.
책 내내 체제 비판의 분위기가 감지되는데 슈호프가 워낙 만족하며 잠드는 결말 때문인지 그렇게 무겁게 느껴지진 않는다. 그게 오히려 무섭다. 저런 하루가 3653일이나 계속된다는 것이. 심지어 이 형량이 끝나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나는 게 일반적이다.
어디선가 책 리뷰를 보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거 훈련소에서 내가 보낸 하루랑 비슷한데...?'라는 내용을 써놔서 생각해 보니 그렇다. 동기와 함께 아침을 먹고 훈련을 받고 저녁을 먹고 점호를 받고 잠드니까 똑같긴 하다. 그래도 슈호프가 있는 수용소는 대부분 10년 혹은 그 이상 갇혀있어야 하고 말도 못하게 추운 곳에 있는데, 군대 훈련소는 6주 훈련(요즘엔 5주로 바뀌었다고 한다.)만 받고 자대 배치를 받으니 괜찮은 것 아닌가? 라고 하면 강원도 전방에서 겨울에 훈련받은 사람들이 "여기나 시베리아나!" 하고 반박하겠지...
이제 25년쯤 지나니까 그때 기억도 미화되곤 하지만 아직도 가끔 군대 재입대하는 꿈을 꾼다. 그만큼 군생활은 한국 남자들에게 큰 트라우마이다. 26개월의 청춘을 나라에 뺏긴 것도 이렇게 억울한데 (요즘은 18개월이라고...) 솔제니친은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스탈린을 '늙은 꼰대' 정도로 비꼬아서 써놓은 내용을 검열당해 8년형을 선고받고 벽돌공(작중 슈호프도 벽돌공이다. 솔제니친은 소재 부자다.), 계산원, 탄광노동 등의 노역에 동원됐다. 27세부터 35세까지 수용소에 갇힌 삶이라니...
노벨문학상까지 받은 대문호의 작품인데 여기에 한국 젊은이들의 군생활과 비교를 해놓으니 그 급이 확 떨어지는 느낌이라, 그런데 별 차이가 없으니 더 우스운 꼴이 돼버려서 어서 다른 작품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수용소 군도>는 열린책들 세계문학전집 기준으로 6권... 언제 읽어... <암 병동>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2권이구나. 이걸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