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민
다니고 있는 회사가 등장해서 읽어본 책.
키트루다는 24년 300억 달러(43조 원) 넘는 매출을 기록할 것으로 보이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의약품이다. 23년에 이어 2년째 1위다. 물론 한국에서도 가장 많이 팔리는 약이다. (한국 연 매출은 4천억 원 정도로 미미하다.)
참고로 코스닥 시총 1위인 알테오젠은 이 키트루다를 정맥주사형에서 피하주사형으로 놓을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여 주가가 이렇게 오른 것이다. 약물 전달 시간이 짧아지는 장점이 있고, 가장 중요한 특허 만료 시점을 연기시킬 수 있기 때문에 피하주사형 약제 개발 기술이 요즘 인기라고 한다. 특허가 만료되면 시장엔 바이오시밀러(그렇다. 우리가 아는 셀트리온이나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주요 사업이다.)가 출시되어 기존 오리지널 약의 매출은 급감한다. 그래서 제약사들은 눈에 불을 켜고 독점권을 유지하려고 애를 쓴다.
이 약은 모르는 것이 좋다. 면역항암제이기 때문이다. (“너네 회산 무슨 약을 팔아?”라는 질문을 받으면 몰라도 된다고 답해준다. 죽을병이거나 중증의 병을 치료하는 약만 팔아서 그렇다.)
1세대 항암제인 세포독성항암제는 그 독성으로 부작용이 많이 발생한다. 2세대 항암제인 표적항암제는 항암제가 암세포를 공격하지 못하게 막는 단백질 변이 등을 무력화하여 암세포를 효율적으로 공격시키는 항암제이다. 3세대 항암제인 면역항암제는 인간의 면역세포가(공격수인 T세포) 암세포를 공격하지 못하게 막는 단백질을 막아 T세포가 암세포를 더 잘 공격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이 면역항암제 원리를 발견한 과학자들은 노벨상도 받았다.
환자의 생존율과 생존기간을 획기적으로 늘려주는 키트루다는, 10개도 훌쩍 넘는 종류의 암에 적용할 수 있다. (국내는 아직 4개 정도만 허가받음) 보통 약들은 한두 개의 암에만 겨우 적용할 수 있는데, 키트루다는 암세포를 직접 공격하는 게 아니고 공격을 돕는 역할이라 다양한 암에 사용 가능한 것이다.
바이오스펙테이터라는 매체에서 기자로 일하는 저자가 쓴 책이라 너무 전문적인 방향으로 흘러가지는 않으면서 긴 이야기를 한 권에 잘 담았다. 키트루다를 개발하고 판매하는 머크(한국에선 한국 MSD)가 어떤 방식으로 임상시험을 설계해서 타 제약사와의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얻었는지 생생하게 그려져 있는데, 물론 약에 관심 없는 사람들은 '뭔 말이야...' 하며 바로 책을 덮을 것 같다. 나도 일하면서 주워들은 이야기로 대충 무슨 말인지 겨우 이해하는 수준이다.
거대 제약사의 횡포가 실제로 있어왔고, 이를 그려낸 여러 매체들이 있어서 이미지가 썩 좋진 않지만, 그래도 제약사들이 환자의 생명을 구하고 병을 치료하기 위한 약을 개발하는 데 쓰는 돈이나 기울이는 노력은 정말 천문학적인 수준이다. 그 안의 구성원들 또한 (다는 아니지만)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일한다. 글로벌 기준으로는 미미한 한국 시장에서 일하고 있지만, 본사 사람들 힘내서 좋은 약 많이 만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