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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예술취향

【영화/성장】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ep2 l 어떤 영화는 '화두'의 역할을 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by 예술취향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Josee, The Tiger And The Fish



도서 원작인 영화를 보고 이야기하는 모임

< 조제 영화 그리고 이야기 >

참여하고 있다.


진행되고 있는 모임에 들어간 거라 모임 제목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몇 번의 모임을 진행했지만 이번에 본 영화가 드디어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이기 때문에 첫 번째 리뷰를 남긴다.



남주인 츠네오는 대학생이다. 우연히 인적이 드문 매일 새벽 유모차를 끌고 산책하는 할머니를 알게 되고,

어느 새벽, 강아지와 산책하다가 소문의 유모차가 덩그러니 내리막길을 내려와 쾅 부딪히는 장면을 목격한다.

언덕 위의 할머니가 "안에 좀 봐봐. 잘 있는지 보라고!"라고 해서 그는 유아차 안을 확인한다.

유아차 안엔 아기가 아닌, 츠네오 또래 다리가 아픈 손녀가 타고 있다.


츠네오는 그날 새벽 쿠미코와 할머니가 사는 집을 따라가 아침밥을 얻어먹는다. 그리곤 친해진다.

츠네오의 마음을 암시하는 장면 이후에, 둘은 친해지고 바깥세상을 보여주고 싶은 츠네오는 쿠미코의 유아차에 보드를 달아 밝은 낮에 도시를 함께 누빈다. 감독은 쿠미코(조제)의 캐릭터를 드라큘라에 빗대어 설정했다고 한다. 밝은 밖에 나오지 못하고 성에만 있는 드라큘라.

그런 쿠미코(조제)를 츠네오가 다리고 나온 것이다.


쿠미코는 스스로를 조제라 이름 붙였다. 프랑수아 사강의 책에 나오는 조제를 좋아해서.

조제는 사랑의 끝을 짐작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조제의 할머니는 둘의 사이를 못마땅해하고, 그렇게 둘은 멀어진다.

어느 날 조제의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복지원 사람들이 종종 찾아가 조제를 보살펴준다는 소식을 들은 츠네오는 회사를 소개받는 자리에서 갑자기 자리를 벗어나 조제에게 달려간다.

잠시의 쉼도 허용되지 않을 만큼 마음이 달려간 것이다.



그렇게 당도한 집에서 조제와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옆에 이상한 아저씨가 살고 있더라. 찌찌를 만지게 해주면 쓰레기를 버려준다고 해서 그렇게 했더니 진짜 쓰레기를 버려줬어."라는 말에 츠네오는 "복지원 사람들에게 버려달라고 해주지"라고 했지만 조제는 "복지원 사람들은 낮에 오고, 쓰레기는 아침에 가져간다고. 네가 뭘 알아! 네가 내 삶에 무슨 참견이야! 그럴 거면 나가버려!"라고 소리친다.


그 길로 츠네오는 정말 나간다. 띠용.



이 장면에서 모임원의 의견이 갈렸다.

① 영화에서 보여주는 츠네오의 성격이 시종일관 미적지근해서 그 사람의 캐릭터라고 생각한 사람.

② 츠네오는 지금 조제의 남자친구가 아니기 때문에 자유의지를 존중해 줬다는 의견.

③ 일본이 워낙 성매매가 많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여자는 그렇게 할 수도 있구나'라고 생각하는 츠네오의 일면을 보여줬다는 의견.

④ "그렇게 중요한 자리를 박차고 달려갔지만, 거기서 등을 돌려버린다고??!!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여자라면 거기에서 화를 내든지, 자신이 해준다고 하든지 어떤 말이라도 해야지" 진짜 나가란다고 나가는 츠네오가 시종일관 이해 안 간다는 의견.


당신의 의견은?


나는 대수롭지 않게 지나간 한 장면을 이렇게 다각도로 깊게 살펴본다는 점에서 이 모임이 아주 좋다.



보이는 설정은 삼각관계다. 하지만 카나에(우에노주리)는 잠깐 등장하고 마는 존재다.

인상 깊었던 장면은 츠네오와 쿠미코가 사귀기로 암시되고, 집을 합쳤을 때

어느 날 카나에가 쿠미코를 만나러 와서 뺨을 때리는 장면이었다.


"너의 장애라는 무기가 부러워."라고 잔인하게 말하곤 뺨을 때린다. + 쿠미코가 손을 올리자 자신의 얼굴을 아래로 내려 때릴 수 있는 높이에 맞춰준다. + 그리곤 한 대 떠 때림.


쿠미코의 신체적 제약에 맞춰 자신의 키를 낮춰줌으로써

동등하게 때릴 수 있도록 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이것이 평등/


둘은 데이트를 나간다.

드디어 호랑이의 등장.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호랑이를 보러 오고 싶었어."


일주일 전에 강아지를 맡아주기로 한 남자 양아치가 "결혼??!!?"이라는 말에

조제는 "아니 그럴 리가."와 같은 말을 한다.

그리고 둘은 츠네오의 부모님을 보러 간다.


모임원 중 한 명은 이 흐름이 의아했다고 한다.

이 영화가 진정 장애인&비장애인의 사랑이 아닌 그냥 사랑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라 칭해지고 싶다면

조제는 처음부터 체념하고 끝을 예감할 게 아니라. 둘은 더 지리멸렬하게 싸우고 20대 초반의 연애답게 막말도 하고 상처 주는 말도 내뱉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나는 잘 모르겠다. 후천적 장애가 아닌 선천적 장애를 가진 조제가. 자신을 쿠미코가 아닌 조제라 스스로 칭했을 때 이미 조제의 마음은 정해졌을지 모른다.



처음 가는 여행에 조제는 들떴다.

하지만 영화에서 여행은 분기점이 된다. 츠네오의 마음이 식고 조제가 알아차리고

츠네오가 자는 동안 솔직하게 마음을 털어놓는 지점.


수족관이 닫혀있음을 알았을 때 조제를 업은 츠네오는 지친다.

휴게소에서 츠네오는 집에 "나 못 간다고 전해줘"라는 전화를 건다.

그리고 둘은 목적지를 바꿔 바다로 떠난다.


바다로 향하는 순간부터 이별여행의 느낌이 들었다. '이게 마지막이겠구나.'

한 방울만 더 떨어지면 넘쳐흐르는 물컵이 이미 흘러넘쳤고, 둘 다 알고 있다.


이후 가기로 한 온천 숙소 말고 무슨... 물고기 전등이 돌아가는 모텔에 도착한다.


츠네오가 잘 때 조제는 말한다. "나는 바닥에서 굴러다니는 조개껍데기였어. 나를 위로 끌어올려 줘서 고마워. 네가 사라지면 나는 다시 바닥으로 가라앉을 거야 근데 그래도 좋아." 조제는 둘 사이가 끝날 걸 예기하고 있으니까. 네가 없어지더라도 나는 내 삶을 살 거야. 같은 말을 한다.



.

.

일 년 후

둘이 헤어질 때, 조제는 이별 선물로 야한 잡지를 내민다. 둘만의 장난.

그렇게 둘은 덤덤하게 헤어진다.


그 길로 카나에와 길을 걷던 츠네오는 멈춰 서서 운다. 이 장면이 없으면 자신이 연기한 남주가 너무 쓰레기 같을 거 같아서 츠네오를 연기한 남주가 애드리브로 넣은 장면이라 한다. 20대 초반에 하는 보통의 연애의 끝 같아 보였다.


만약 남주가 울지 않고, 저녁식사 뭐 먹을까를 이야기하면서 그냥 걸어갔다면,

'진짜 저 ㅅㄲ 뭐지?'라는 생각이 들긴 했겠다.


근데 진짜 의문은 카나에다. 남주 매력 뭔데.

언니 혼자 잘 살아. 방금 헤어진 남자 옆에 왜 있냐고. 아놔.


모임을 하면서 두 번째 보는 일본 영화이자 세 번째 보는 로맨스 영화다.

이 영화는 첫 번째 연애와 내가 솔직하고 싶었지만 솔직히 털어놓지 못했던 연애를 떠올리게 했다.

아무튼 첫 연애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라 좋았다.




일본 영화는 늘 조금 옅고, 약간 조용하게 진행되는 면이 있는 듯하다.

2004년에 만들어진 영화라 그런 걸까 아님 내가 일본 영화를 늘 관조적으로 봐서 그런 걸까.

일본 영화는 늘, '저들의 문화겠지.'라는 생각을 기조에 깔고 보게 된다. 그래서 내 기준 특이하거나 소화하지 못하는 장면이 나와도 그저 덤덤하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이번 영화도 덤덤이 처럼 덤덤덤덤하게 봤는데, 함께 이야기 나누며 현실로 끄집어 내려올 수 있었다.


어떤 영화든 배울 점이 있다는 걸 모임을 하며 느낀다.




《 새로 얻은 지식! 》


✔️한국 영화 오아시스는 이 영화 이후에 나왔다!

✔️오아시스는 장애인을 아주 잔인하게 다뤘다.

극중 문소리가 맡은 역할이 상상을 할 때, 갑자기 다리가 나아서 춤을 추는 장면 등.

모든 장애인의 가장 큰 소원이 나의 장애가 낫는 것이 아니다.

✔️바다처럼 물이 많이 나오면 여주가 마음고생을 많이 한다는 영화적 암시가 있다.


✨️어떤 영화는 '화두'의 역할을 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사랑을 유지하는데 연민이 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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