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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악】<권진규의 영원한 집> 남서울시립미술관

ep4 l눈에 보이는 대상 너머의 본질을 추구한 작가 권진규의 영원한 집

by 예술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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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서울시립미술관에선 조각가 권진규의 상설전을 하고 있어요. 마치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점에 천경자 작가의 상설전이 열리는 것과 같이 말이죠.


2021년, 권진규기념사업회와 유족이 작품 141점을 기증했어요. 그뜻에따라 지난 2022년 서소문관에서 회고전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노실의 천사≫를 열었고, 2023년 권진규 작고 50주기를 맞아 남서울관 1층에 상설전을 열었답니다.�✨️



권진규 연대기 1922-1973


-1992년 4월 7일 일제강점기, 함흥에서 유복한 집안의 차남으로 태어났어요.

-1947년 이쾌대가 운영하던 성북회화연구소에 입학한 후,

무사시노미술학교의 전신인 제국미술학교 출신인 이쾌대의 영향을 받아

-1949년 3월 무사시노미술학교 조각과에 입학했어요.


- 1951년, 3학년 때 '오기노 도모'와 교재 시작. 그래서 <도모>작품이 많음.

- 1952년, '도모' 본가 근처 산장에 머물며 점토 작품과 목조불상을 제작했어요.


-1953년 3월, 무사시노미술학교를 졸업한 권진규는 연구과에 남아 작업을 계속했어요.

* 니카회가 주최한 제38회 니카전에 말을 소재로 한 석조 세 점을 출품, 특별상 수상

*니카회 : 유파 여파를 불문하고 새로운 가치를 존중하고, 창작자의 제작상 자유를 옹호하고 발탁한다는 취지로, 새로운 경향을 흡수하며 저명한 예술가를 배출한 재야단체


- 1954년 영화세트 제작 아르바이트 시작 전까지 도모의 부업소득으로 생활

- 1955년 도모의 본가 근처, 가마에 기와를 굽는 것을 보고 테라코타 시작

* 1958년 제4회 이치요오회 미술전람회에서 이치요오상을 수상한 테라코타 <두상>(1958)

- 1959년 어머니의 병세 악화로 도모와 혼인신고 후, 홀로 한국 귀국.


-1959년 귀국 후 아틀리에를 완성한 뒤에 하루를 시간 단위로 나눠 아침과 밤에는 작품구상과 드로잉을 하고 점심과 저녁엔 작품을 제작했다.

-1960년대 그는 귀국해 손수 지은 아틀리에에서 마치 수행자처럼 작업에 정진하며 고유의 작품세계를 확고히 구축했다.


- 1965년 도모의 부모가 보낸 이혼서류에 동의.

- 1965년 제1회 개인전에 <입산>

- 1968년 제2회 개인전에 <비구니>,<춘엽니>등 출품.

- 1971년 초, 양산 통도사 수도암에 기거하며 불상을 제작했고, 6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품세계를 '불교적 세계로의 고뇌 어린 침잠 같은 것'이라 말했다.

- 1971년 12월 제3회 개인전에 건칠 불상 11점을 출품했는데 반응이 기대에 못 미치자, 작품 제작보다는 로맹 롤랑이 자신의 절망을 이겨내고자 쓴 <베토벤의 생애>와 불교경전이 <반야심경>을 반복해 읽었다. 이에 더해 해외전시, 동상제작 등 바라던 일이 무산되자

- 1972년 8월 양산 통도사에 다녀와 다음날 가마를 부수고 계속해서 귀의할 것을 암시했다.

- 1973년 고려대학교 박물관이 현대미술실을 만들면서 <가사를 걸친 자소상>, <마두>작품을 소장하기로 하자 기뻐했던 것도 잠시, 개막식에 참석한 다음날인 5월4일 오전 현대미술실에 들렀다 귀가해 스스로 귀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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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규의 영감


그는 3년간 불어를 공부해 부르델의 원서를 독파했을 정도로 부르델을 좋아했으며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서구문명의 뿌리인 고대 그리스 아케이즘 양식을 근원으로 새로운 미술을 추구했던 부르델처럼 권진규 작가 역시 동양과 서양의 고대 유산을 참조하여 강건하고 응축된 형태로 변하지 않는 본질을 구현하고자 했어요. 이는 고대부터 사용된 썩지 않는 테라코타방부·방습·방충에 강한 건칠로 작품을 제작한 이유이기도 해요.



<흰 소>(1972)는 이중섭의 작품 <황소>(1953)를 모본으로 제작된 작품입니다. 권진규는 1972년 3월 개최된 이중섭의 15기 유작전을 두 번 다녀왔는데, 여기서 작품 <황소>와 <흰 소> (1954년경)를 보고 크게 감동받았어요.

그는 급한 대로 마침 갖고 있던 『황순원 전집』 제2권 (창우사, 1964) 내지에 이들을 드로잉 했어요.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이 책에 <황소들>이라는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중섭과 함께 김환기, 박수근 등의 작품을 자주 칭찬했다고 해요. 유족에 따르면 <흰 소>(1972)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만들어졌는데, 이중섭의 소만큼 생생하고 힘찬 기운이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또한 그가 마지막으로 제작한 작품이라는 점에 특별한 의미가 있죠.




<앉아 있는 여성>은 한쪽 무릎을 세우고, 머리 옆에 손으로 무언가를 받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러한 자세는 그의 드로잉 북에 모딜리아니가 그린 카리아티드를 모사한 드로잉에서 찾아볼 수 있어요.

(*카리아티드는 고대 그리스 신전 건축에서 기둥으로 사용된 여성상) 모딜리아니는 나상의 카리아티드 드로잉을 70여 점 남겼는데, 권진규의 드로잉 북에는 여체의 다양한 동작과 함께 ‘모딜리아니Modigliani’라는 글씨가 적혀 있어 이 조각의 도상이 어디서 유래했는지를 알 수 있어요.


그의 작은 인체 조각들은 신라 토우부터 서양 근대미술까지 다양한 미술 양식에 근원을 두고 있어요. 그는 여러 가지 동세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그것을 풍부한 양감을 지닌 조각으로 제작했어요.






권진규의 작품

권진규 작품 중 <선자>, <자소상>, <나부> 등 유명한 작품이 많지만 작가의 삶을 중심으로 다시 본 작품을 소게합니다.




1965년 신문회관에서 수화랑 초대로 첫 개인전을 개최했는데,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관람했고, 작품판매와는 상관없이 호평을 받았습니다. 전시를 보고 감동한 이화여자대학교 서양화과 학생 이선자가 아틀리에를 찾아와 조각을 배우고 모델도 서면서 1966년에 <선자>를 제작하게 되죠. 또한 선자의 고등학교 친구들이 자주 놀러오면서, 쉽게 모델을 구하게 된 그는 여성두상 작업에 몰두할 수 있었습니다.


작가는 세부적인 표현보다는 단순화하여 대상의 본질에 집중했어요. 정면을 향한 시선과 단정한 모습은 마치 구도자 같아보입니다.






작가는 일본에서 남성상과 여성상을 많이 제작했습니다. 졸업작품으로 등신대의 <나부>(1953)를 제작하기도 했죠.


네 개의 나상은 남녀의 신체적 차이보다 인체의 공통적인 구조와 질감을 강조한 작품입니다. 이후 그는 1968년 일본 개인전을 위해 다양한 동작의 작은 나부상을 많이 제작했어요.


당시 일본 조각가들이 여성의 신체적 특성을 강조한 관능적인 여성상을 만들었다면, 그는 생명력을 강조한 강건한 여성상을 만들었어요. 권진규는 작품을 통해 구조와 본질을 구현하고자 했기 때문에 남성상과 여성상에 큰 차이를 두지 않았습니다.










1970년 자소상은 세 번째 개인전에 대한 저조한 반응, 동상제작과 해외전시의 무산, 건강 악화 등 그가 처한 여러 악재를 반영한 듯 고뇌에 차 있는 듯한 모습입니다. 권진규의 자소상은 시기 별로 양식과 표현의 차이가 있는데, 이는 권진규의 개인적, 사회적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내면을 반영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예취 코멘트


저는 권진규 작가를 정말 좋아하는데요. 아마 유분기 혹은 물기라곤 한 톨도 없어보이는 테라코타나 건칠에서 느껴지는 단단함이 마치 작가의 삶을 대변하는 듯 보였기 때문이겠죠. 그는 눈에 보이는 대상 너머의 본질을 추구 했기에 대상의 세부를 생략하고, 고대부터 사용해온 방법 '테라코타'를 선택했어요.


권진규 작가는 "인생은 공, 파멸"이란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고, 그래서인지 늘 "구도자적 태도, 귀의, 불교적"이라는 단어와 "권진규는 미술계와 일반의 냉담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어떤 특정한 사조에 속하거나 단체에 가입하지 않았다"라는 말이 따라옵니다.


하지만 이번 전시를 통해, 그는 일본에서 일찍이 인정받았고 개인전은 늘 주목받았으며, 촉망받고 미래는 더욱 창창한 예술가였다는 것을 알게되었어요. 한 때, 대부업체의 창고까지 갔다온 그의 작품들의 영원한 안식처가 될 '영원한 집'. 다른 작품으로 바뀌면 또 갈 예정이에요.�



쁘띠서울여행 코스!

사당역~서울대입구역~봉천역


한때 sns에서 포토스팟으로 인기가 뜨거웠던 남서울미술관은 전시장이 많은 지역에 위치하진 않지만 사당역 바로 앞에 있어, 관람이 용이합니다. 남서울시립미술관에 갔다가 장블랑제리에서 빵을 사고, 독립서점 살롱드북에서 책을 고른 후, 마지막으로 조그맣지만 강한 전시장 실린더에서 전시를 보고 근처 카페 히코(강아지 있음)&발루토 오목눈이(디저트 맛집)&2층사무실(진짜 사무실 같음, 엄숙한 분위기에서 집중 빡, 친구랑 x)에서 여독을 풀면 사당~서울대입구역~봉천역까지 쁘띠서울여행의 완성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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