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 기운이 돌았다.
긴가민가가 아니라 명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청동으로 향했다. 이번 주에 전시를 하나도 보지 않았다는 부채감일까 혹은 전시코스까지 다 짜놓고 춥다는 핑계로 한남동을 가지 않아서일까. 모든 걸 차치하고 나에게 든 생각은 하나였다. '무언가 기분전환할만한 좋은 일이 생기겠지?'라는 기대감.
고전작품을 보고 한 번도 뛰지 않던 심장. 48년생 작품에 뛰다.
언젠가부터 갤러리가 쉬는 날이 일, 월로 굳어진듯하다. 하지만 내가 토요일에 나가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다. 일요일에 열면서 전시도 하고 있는 갤러리를 몇 곳을 추렸다.
첫 번째 방문한 곳은 현대갤러리에서 진행하고 있는 신성희(1948–2009)《꾸띠아주, 누아주》이다. 대한민국의 탑갤러리 중 하나이자 가장 오래된 현대상업갤러리이기 때문에 이미 유명한 작가, 원로 작가가 많이 소속되어 있고 유대도 깊다. 그래서 '이번에도 원로작가의 전시를 하는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큰 기대 없이 들어갔다. 갤러리현대의 전시는 늘 어느 정도 이상의 전시를 볼 수 있었기에.
멀리서 본 작품은 특별하지 않았다. 그런데 웬걸 가까이 갈수록 눈을 깜박이게 된다. 음..? 내가 보고 있는 게 이렇게 아름답다니..? 음..? 아름다워.. 아름다워..!! 48년생의 작품에 이토록 심장이 세차게 뛰다니! 소설 같은 고전작품을 읽고 한 번도 감명받지 않던 나다. 하지만 그림으론 이토록 쉽게 빠졌다.
이후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 3개의 작품이 벽에서 떨어져, 핀조명이 작품 부분만 명확히 비추고 있었다. 뒷모습까지 보라는 의미일 테지. 꾸띠아주(박음 회화) 중 3점이다. 박음질된 부분이 반짝반짝 빛나는 폭죽처럼 퍼졌다. 작가가 흩뿌린 물감이 반투명하게 비치는 모습이 스테인드글라스의 그것처럼 일렁이며 눈으로 들어왔다.
그대로 마음의 1/3쯤을 그 작품에 내어주고 말았다.
다시 본 이강소의 풍래수면시.
다음 일정이 있었는데 이젠 아무렴 상관없다. 오늘 할 일의 1/3쯤을 다 마친 듯했다. 날이 추워서 바로 옆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에 들어가, 1월 초에 동료 3명과 함께 본 전시를 다시 보기로 했다. 당시 나와 동료들의 감상과 인스타친구인 분의 감상이 상이했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다.
다시 본 이강소의 풍래수면시.
'으아아'
속으로 몇 번이고 외쳤다.
'너무 잘해.'
이강소는 정말 무참히 잘하는 작가였다.
강이나 바다, 파도 이런 자연물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사람은 많다. 미술은 기술이니까 배우기만 하면 똑같이 그리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진짜 '강'을 담는 일은 아무나 못한다.
이강소는 자신이 느낀 강을, 자신이 느낀 섬을 담았다.
누구의 결과물이 이해되지 않을 땐 상대방이 되어보면 알 수 있다. 손 가는 대로 그리는 그림은 참 쉬워 보인다. 하지만 화판 위에 올라가서 내면의 강을 붓 끝으로 옮기는 일은 아무나 하지 못한다. 완전히 완성된 작품. 내 제화된 섬이 완전히 그림에 표현되어 있어서 뭘 잘한다는 건지로 모른체 '너무 잘해'라는 말만 읊조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지금까지 이대원 화가를 잘 못 생각했구나.'
쉬는 시간을 갖던 중, 현대화랑의 4인전이 오늘 까지라는 글이 보였다. <한국 구상회화 4인전: 윤중식, 박고석, 임직순, 이대원> 1910,20년대에 태어나 한국미술의 기초를 닦으신 분들이다. 당시 주역들의 작품을 볼 수 있겠지만 올해 한국 근현대 회화 상설전이 많이 준비되어 있어서 굳이 갈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어차피 서촌으로 넘어가는 길이니 가벼운 마음으로 들리기로 했다.
늘 현대화랑 관람객은 나 혼자 혹은 두 명이었는데 관람객이 많았다. 1층엔 윤중식, 박고석, 임직순 세 분의 작품이, 2층엔 이대원 화가의 작품이 따로 있었다. '왜 이대원 작가만 따로 전시하지? 공평하지 않아.'라는 생각을 하며 2층으로 향했다.
'내가 지금까지 이대원 화가를 잘 못 생각했구나.'
이대원 화가의 작품을 처음 본건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2021년에 열린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였을 것이다. 한 점 있던 그의 작품이 그날 나의 두 번째 최애였고, 경성제국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지만 그림을 그리며 학장이나 총장 같은 '장'을 많이 맡은 이력이 특이해서 기억에 남았다. 그냥 그 정도였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람. 점묘법을 사용한 쇠라의 그랑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를 보러 미국에 가거나 모네의 정원을 보러 프랑스까지 갈 필요가 없어졌다. 우리에겐 이대원 화가의 작품이 있으니까!
갤러리에 퍼지는 '베토벤의 봄 소나타 1악장'의 속도에 맞춰 심장이 뛰었다. (매우 거세게 뛰었다는 뜻. 1층에서도 음악이 있었나? 모를 일이다. 검은 사제들의 강동원 머리뒤 후광을 봤다는 사람은 여럿인데, 실제 빛은 없었다는 사실처럼 음악이 없다가 있게 됐다.)
음악의 주된 악기의 비트가 쿵쿵 심장을 치는 동시에 작품의 빨강, 노랑, 초록, 파란색이 랜덤으로 확대되어 눈에 튀어왔다. (마약성 환각일까..? 하지만 감기약도 먹지 않았다..^^)
그렇게 마지막 남은 1/3의 마음마저 이대원 작가의 작품에 빼앗긴 후, 넝마가 되어 귀가했다.
이제 다시는 원로작가의 전시를 거르지 않겠습니다.. 신진작가나 새로운 갤러리만 탐방하지 않겠습니다..
작가의 일생이 담긴 붓질이, 아름다움을 느끼는 일이 감기를 낫게 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믿으며
감기에 걸렸더라도 전시탐방을 가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