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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그만 졸고 영화를 보렴

아키 카우리스마키, 사랑은 낙엽을 타고(2023)

by 힌무


영화를 보다가 조는 습관이 생겼다.


몇 해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일이었다. 영화를 보기로 마음먹었으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눈을 떼지 않는 것이 응당 관객으로서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짧은 길이의 영상에 절여진 채 체력이 점점 감소한 지금을, 당시에는 상상하지 못한 것이다.


어떤 영화는 좌석에 앉자마자 졸 것 같은 직감이 오기도 했다. 어, 밥 먹고 나니까 노곤한데, 의자가 푹신하니 기대고 싶은데, 이 영화가 의외로 블록버스터라는 반전이 있지 않는 이상 나 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니 이미 졸린데…… 하다 보면 어느새 머리를 휘청거리며 길을 잃고 있었다.


스크린에서 주인공이 걸어 다니고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는 동안 나는 그 이야기를 쫓아가지 못한 채 이야기 너머에서 고통받았다. 그러다 점점 졸음에도 익숙해져서 아예 수면을 취하는 경우도 늘어났다. 차라리 조금 잠들고 퍼뜩 깨어나는 편이 나았다. 비록 몇 장면 놓쳤을지언정 정신 차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화면을 따라가면 됐다. 뚜벅뚜벅. 오히려 마지막 장면까지 현실과 꿈을 헤매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극장을 나오는 순간이 더욱 허탈했다.


눈으로 읽고 다음 장을 넘길지 말지 결정하는 독서와 다르게, 영화란 극장에 앉아 있는 모든 과정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영화를 보는 동안 우리는 앞좌석을 차지 말 것, 핸드폰을 무음으로 해놓을 것, 옆사람을 방해하지 않을 것과 같은 규칙을 숙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두 눈을 통해 보고 있는 영화에 대해서 우리는 자유롭게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계속 보거나, 극장을 나가거나. 다만 나는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영화를 계속 보거나, 졸거나.



그런데 가끔은 전혀 졸지 않고 본 영화보다 조금 졸면서 본 영화가 더 좋기도 했다. 작년 1월에 본 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아키 카우리스마키, 2023)가 그랬다. 여전히 쌀쌀하고 추운 1월이었고 주말이었다. 점심 약속이 있어서 오후 다섯 시쯤 영화를 예매했다.


카우리스마키 감독이 핀란드에서 손꼽히는 인물이라는 정보는 전혀 모른 상태였다. 다른 영화를 보러 갔을 때 우연히 예고편을 봤을 뿐이었고 어딘가 건조한 느낌이 들어 궁금했다. 특히 제목부터 이 영화가 마음에 들었는데, 각박한 현대 사회에서 자신 있게 사랑을 외치는 제목이라니! 어쩌면 나 이 영화에게 쉽게 마음을 줄지도 몰라. 그래서 나는 나의 사랑하는 친구와 데이트 코스로 이 영화를 선택하게 되었다.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신촌 필름 포럼에서 감상했다. 독립 영화는 독립 영화관에서 보자는 주의지만 생각해 보니 필름포럼은 몇 번 안 가본 곳이었다. 오랜만에 온 신촌. 영화관 입구부터 신촌과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묘하게 촌스럽다고 볼 수도 있을 텐데 따듯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감돌았다.(나무위키에 검색해 보면 신촌 필름포럼은 2008년부터 운영되었다고 한다.) 좌석은 여유로웠고 우리는 중앙에 앉았다.


사실 이미 점심 약속에서 에너지를 써버린 탓인지 좌석에 앉자마자 피로감이 몰려왔다. 배도 부르겠다, 극장은 마침 어두웠고 옆으로 같은 열에 앉은 관객도 없었다. 나는 그만 습관성 졸음에 져 버렸다. 다행히 눈을 떴을 때는 엔딩 크레딧이 아니었다. 아직 주인공들이 화면 안에서 움직이는 중이었다.


영화 속 안사(알마 포이스티)와 훌라파(주시 바타넨)는 헬싱키에 살고 있고 블루 칼라를 상징하는 노동자 계급의 인물들이다. 두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만나고 알아가는 방식이 작품에서는 상당히 건조하게 진행된다. 시종일관 라디오에서는 참혹한 전쟁이 끊이질 않고 두 사람이 발 닿고 있는 현실 또한 녹록지 않지만 그럼에도 사랑은 낙엽을 타고 다가온다.


안사와 훌라파도 나와 옆자리 친구처럼 극장에 가서 나란히 앉는 장면이 있다.


흠뻑 졸고 나니 졸음이 깨서 더 이상 잠들지 않았다. 1분 1초 스펙타클한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내가 졸았다고 해서 그 사이 누군가 죽었다거나 배신을 했다거나 하는 절정은 없었다. 덕분에 이 영화의 매력에 절반 정도 마음을 내주었다. 채도 낮은 풍경. 시멘트. 공장. 밝지 않은 감색. 조용한 말소리. 술집의 소음. 웃지 않는 얼굴들. 그 얼굴들이 주고받는 우스갯소리. 그렇게 주머니에서 꺼내는 사랑. 물론 더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개운한 정신으로 재감상해야겠지만. 마침 내일은 늦잠을 잘 수 있는 날이니까 잠들기 전 다시 한 번 시도해볼까. 남은 절반의 마음도 온전히 내어주기 위해서.


그리하여 나는 신촌의 오래된 극장을 떠올리면 헬싱키의 장면들이 연상되고, 동일하게 앞선 장면들을 생각하면 신촌의 극장을 떠올리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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