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 나가보는 두 번째 취향 일기-
어떤 얘기를 할까 고민을 하다가 2019년 왓챠 시청시간 상위 1프로에 걸맞은 이용자답게 드라마/영화 얘기를 해볼까 한다.
왓챠 추천작으로 새로 빠지게 된 미드 걸스 girls 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대학 졸업 후 부모로부터 경제적 자립을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4명 여자아이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대학 졸업 후 제대로 된 돈을 벌기까지의 그 시간들, '직업'이라는 걸 갖게 되기까지의 시간들, 그 직업을 갖고 나서도 살아남기 위해 버텨내는 시간들은 모두의 삶에 있는 시간들이다.
그러고 보면 '경제적 자립'이라는 건 그렇게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닐뿐더러,
'나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SNS에서 묘사되는 화려한 일상, 번듯한 직장은 누군가에게는 그저 반짝반짝 빛나는 포카리스웨트 같은 환상일 뿐, 대다수의 노동자들은 지독히도 짠내 나는 시간들에서 고군분투한다.
그래서 준비해봤다. 바로, '짠내 나는 현실을 묘사한 영화'
**아래부터 이어지는 내용은 각 영화들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르덴 형제- 로제타 Rosetta , 내일을 위한 시간
첫 번째로는 많은 분들에게 이미 유명한 다르덴 형제의 작품 [로제타], [내일을 위한 시간] 두 편이다.
다큐멘터리 감독으로도 유명한 다르덴 형제답게 드라마틱한 스토리라인이나 과도한 양념 없이
주인공 인물 1명에게 집중할 수 있게끔 그들의 시선을 그대로 카메라에 담는 게 인상적인 영화다.
[로제타]의 주인공 '로제타'는 트레일러에서 알코올 중독자 엄마와 살아가는 고등학생이다. 본인이 생활비를 벌어야지만 생계가 가능해지므로 누구보다 간절히 '직업'을 갖기 노력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 그렇게 이곳저곳을 전전하다가 한 와플가게를 알게 되고, 너무도 간절했던 나머지 와플가게에서 원래 일하던 남자 직원의 실수를 사장에게 일러바치고 결국 그 남자 직원은 해고당하고 그 자리에 로제타가 일하게 된다.
[내일을 위한 시간] 은 회사 복직을 앞두고 있었던 산드라는 회사 동료들이 '자신과 일하는 것 vs 1000유로 보너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사장의 제안에 직원 대다수가 보너스를 선택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그래서 그녀의 복직 또한 불투명해진 상황에 그녀는 동료들 한 명 한 명을 직접 찾아가 설득을 해보지만, 각자의 '보너스'가 필요한 상황이 있는 직원 들인 만큼 그녀를 지지해주는 직원은 흔치 않고 결국 그녀는 직장에서 잘리게 된다.
이 두 영화에서 마음에 들었던 설정은 '와플가게'와 '1000유로 보너스(한화로 약 120만 원 정도)'이다.
생계를 위한 최소한의 돈을 벌기 위해 억척스럽게 고군분투 하지만 결국엔 와플가게에서 일하는 것도 녹록지 않아서 누군가를 밟아야 겨우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은 과도한 설정이 아니라 지독한 현실이다. 또한, 사람들은 대단한 부와 권력, 조국을 위해서 사람을 배신하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많지도, 그렇다고 적지만도 않은 단돈 120만 원에 같이 일했던 동료의 생계 따위는 무시할 수 있으며 고용주는 단돈 120만 원으로 한 사람의 생계를 쥐락펴락 할 수 있는 것이다.
아키 카우리스마키 - 성냥공장 소녀
안데르센의 동화 '성냥팔이 소녀'에서 따온 제목으로 동화의 해피엔딩과는 정반대 되는 스토리 전개다.
주인공 아리스는 성냥공장에서 일하는 아가씨이다.
엄마와 계부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 성냥공장에서 일하지만, 어떻게든 행복을 느끼려 저녁에는 댄스 클럽에 나가 사람을 사귀어 보려 노력하고 그렇게 남자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는 하룻밤 상대에 불과했고 그 하룻밤에 그녀는 아이를 가지게 된다.
그녀의 엄마, 계부 심지어 아기아빠까지 그녀를 모른 체 하고 결국 그녀는 쥐약을 구입해서 자신의 하룻밤 상대였던 아기아빠, 계부 그리고 엄마까지 모조리 죽인다. 하지만, 그렇게 모든 사람을 죽이고도 그녀는 갈 곳이 없어서 결국 자신이 일했던 성냥공장으로 다시 되돌아간다. 공장에 들어간 아리스는 본인을 체포하러 온 형상들과 마주치게 되고, 결국 체포되고 만다. 그렇게 일개미였던 아리스의 자리는 다시 다른 일개미가 차지하면서 일상은 이전과 똑같이 아무런 감정 없이 기계처럼 흘러간다.
기계처럼 일하는 노동환경. 그곳에서 어떻게든 벗어나려 노력해보지만 노동환경은 결코 변하지 않고 또 다른 노동자가 어떠한 희망도 감정도 없이 기계처럼 일하는 쳇바퀴 같은 상황 설정이다.
그녀가 쥐약을 사서 남자의 술잔에 타는 장면은 지극히 엽기적인 행각이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상황 설정, 그리고 카메라 화면이 인상적이다. 또한, 이 포스팅에서 소개하는 모든 영화를 통틀어서 주인공의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과한 표정을 짓지도 않고 많은 양의 대사를 읊는 것도 아니지만 영화는 오로지 그녀가 만들어내는 분위기로 이어져 나간다. 감독의 다른 작품도 기대된다.
노아 바움백 - 프란시스 하
언젠가는 뉴욕에서 제일 유명한 댄서가 되겠다는 댄서 지망생 프란시스(주인공), 그리고 그녀의 룸메이트인 작가 지망생 소피. 둘은 브루클린의 한 작은 아파트에서 같이 살며 꿈을 키워나간다. 하지만 '출판계에서 먹어주는 거물 작가', '정말 유명한 현대무용 댄서'와 같은 세계를 접수할 거라는 패기 넘치는 꿈과는 달리 현실은 당장 이번 달 월세를 걱정하는 신세이며, 저녁식사값을 지불하려다 정지된 신용카드 덕에 집까지 가서 현금을 가져와 겨우 저녁값을 지불했던 날, 행사장 케이터링 서빙 알바로 생계를 유지해가고 꿈은 무용수지만 무용단 행정직으로 간간히 생활비를 벌어가고 있는 뭘 해도 어설프고, 뭘 해도 안 풀리고, 뭘 해도 돈이 안 모이는 프란시스의 불안정한 현실이 너무나도 와 닿는 영화다.
켄 로치 - 나, 다니엘 블레이크
아마 가장 많은 분들이 알만한 감독, 그리고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이 작품은 '노동'을 다루고 있다기보다는 저소득층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복지정책에 의구심을 던지는 영화다.
당장 눈앞에 놓인 취약층을 보호해야 하기까지 있는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서류 작업, 행정절차들. 신청서를 적는 사람들은 노인들이 대부분인데 신청서는 오직 컴퓨터로만 제출할 수 있는 모순적인 상황들을 지적하며 특히, 마지막에 '나, 다니엘 블레이크'라고 외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 영화다.
물론, 영화 중간중간 과도한 설정 장면이 있지만, 일처리 느려 터지는 유럽 종특을 생각하면 그리 억지스러운 설정도 아닌듯한 영화다.
잉마르 베리만-모니카와의 여름
(이 포스팅에서 가장 하이라이트인 영화이다. 단언컨대 이 포스팅에 나온 영화 중 단 한 개의 영화만 봐야 한다면 무조건 추천하는 영화.)
열일곱 모니카, 열아홉 해리는 각자의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현실에 답답함을 느낀다. 그렇게 둘은 보트에 몸을 싣고 무작정 떠나서 작은 섬에 정박해 둘밖에 없는 시간들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돈이 떨어지고 배고픔을 느끼게 되면서 더 이상 이렇게 생활이 이어질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닫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모니카는 임신을 하게 되어 결국 떠나왔던 집으로(부모의 품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그렇게 도시로 돌아온 둘은 각자의 현실에 타협하면서 생활을 꾸려나간다. 해리는 직장을 구해서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 노릇을 하고 모니카는 아기를 돌보기 시작한다. 하지만 모니카는 아기만 돌보는 현실에 지루함을 느끼고 해리 몰래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해리는 모니카와 크게 다투게 되고 결국 모니카는 집을 나가고 해리와 아기만 남게 된다.
사실 이 영화의 가장 압권은
이 장면이다.
해리 몰래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는 장면인데 갑자기 관객을 정면으로, 똑바로 응시한다.
충동적, 즉흥적, 무모함, 무작정이라는 단어만이 어울리는 모니카와 해리의 삶이지만
관객은 절대 그들을 나무랄 수 없다. 왜냐면 우리 모두 그러니까.
누구나 마음속에 부모의 삶을 경멸하고 구질구질한 생활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은 가지고 있다. 다만, 행동하지 않았을 뿐이다.
관객은 모니카를 함부로 나무랄 수 없을 것이다.
왜냐면 우리 다 밖으로 행하지 않았을 뿐, 모두 마음속에 숨겨놓은 행동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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