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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영 Jan 28. 2020

춤추는 ADHD

이쪽저쪽 위아래 모두 제각각이지만  즐겁고 행복한 춤추는 시간


  

한 아이가 끊임없이 공간을 휘저으며 뛰어다녔다. 뛰다가 만나는 것들을 괜히 툭툭 치기도 하고 뭐라고 말을 하기도 하고 전등 스위치를 켜기도 끄기도 하며 돌아다닌다.

그리고 한 아이는 바닥에 누워 뒹굴거렸다. 혹여 다른 아이가 걸려 넘어지면 두 아이 모두 다칠 것 같아 앉아 있으면 좋겠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또 다른 아이는 책상 위를 밟고 올라서 있는듯하더니 이내 뛰어내렸다가 올라섰다가를 반복했다. 한 아이는 창틀에 올라앉아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 커튼을 내렸다 올려다 한다. 그 좁은 창틀에 어떻게 올라앉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위험하니 내려오라 해도 들리는지 안 들리는지 행동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마지막 여자아이는 그 모습에 기가 죽어 한쪽 구석에서 가져온 인형을 매만진다. 수업시간에는 인형을 내려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얘기했더니 짜증 섞인 표정으로 귀찮다는 듯 인형을 두 손으로 감싸 안고는 등을 돌려 버린다.

도무지 같이 춤출 수 없을 것 같은 다섯 아이들이 한 공간 안에 있다. 이 다섯 명의 아이는 서로 다른 가정환경과 학교에서의 다양한 문제들을 가지고 왔다. 아이들의 히스토리는 각각이지만 이들에게도 공통점이 있다. 바로 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ADHD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라는 진단을 받고 이곳에 모였다는 것이다.

ADHD는 학령기 아동에게서 주로 나타나며 주의력 결핍, 충동성 그리고 과잉행동을 주 증상으로 하는 질병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초등학교 한 학급의 약 15%인 4~6명이 이런 증상을 보인다고 한다. 제대로 치료하지 않을 경우 성인이 되어서까지 증상이 이어져 우울증, 조울증, 공황장애, 불안장애, 각종 중독 등의 공존질환이 더해지기 때문에 최근에는 성인 ADHD의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무무는 가정환경이 좋지 않다. 아빠가 계시지 않고 동생과 엄마와 함께 곰팡이 가득한 집에서 지낸다. 이 아이는 틈만 나면 누워있고 질문을 해도 대답을 잘 하지 않는다. 이유를 묻자 자기는 아무하고도 이야기를 하지 않는단다. 엄마랑 동생이 아니면 잘 말하지 않을뿐더러 누구와도 얘기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학교에서 친구도 없이 혼자 지내다가 집에 가서야 엄마랑 몇 마디 하는 게 무무의 소통창구 전부이다. 부산하게 움직이진 않지만 주의력이 약해서 학업에도 많이 뒤처져 있고 활동을 할 때 잘 집중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센터에 왔다.

진진이는 이제 막 2학년이 되었다. 1학년 내내 학교 책상에 가만히 앉아서 수업을 들은 적이 없다. 당연히 담임선생님과 친구들에게 미움의 대상이 되었다. 진진이는 쉴 새 없이 돌아다니고 누군가를 공격한다. 세션 중에도 틈만 나면 형아들을 때리고 발로 찼다. 이 아이가 같이 놀고 싶다고 하는 표현이라는 게 귀찮게 하고 때리고 싫어하는 행동을 두세 번 더 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얼굴 찌푸리고 저리 가라고 소리 지르는 반응이라도 받고 싶어서 그런다는 것을 안 건 5-6회기가 지나고 나서였다. 그룹 활동이 처음인 진진인 다른 아이들을 너무나 힘들게 해서 그룹에서 제외시켜야 하는 건 아닌지 나를 고민하게 했다.

범범이는 미혼모에게서 난 아이이다. 워낙 성향이 외향적이고 활동적인 데다가 자기주장이 강하다. 그룹을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려고 하고 한번 흥분하기 시작하면 조절이 잘 되지 않는다. 별로 웃기지도 않은 일에 어쩌다 웃음보가 터지면 멈추지 않고 깔깔거린다. 이 아이는 창의적인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하고 온갖 활동으로 몸을 쉬게 두지 않는다. 이런 아이가 사춘기를 맞으며 급격하게 엄마와의 사이가 나빠졌다. 엄마는 미혼모의 아이라는 것이 내내 아이에게 미안하다. 그리고 혹여라도 다른 사람에게 손가락질을 받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더구나 엄마는 성격이 너무나 얌전하고 정리정돈을 가지런하게 하는 사람이다. 엄마는 아이를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잔소리는 점점 심해지고 아이의 반항도 그에 따라 점점 심해져 세상에서 엄마를 가장 싫어하게 되었다. 힘들게 낳아 기르는 아들에게 미움을 받는 것도 서글픈데 ADHD 진단을 받아 엄마는 걱정이 태산이다.

나나는 무조건 상대방이 제일 싫어하는 말을 한다. 못생겼다, 뚱뚱하다, 못한다, 재미없다 등등 나나는 가장 부정적인 말로 상대방을 비하한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 친구가 없고 담임교사조차 아이를 미워한다. 나나가 미운 말을 하는 이유를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나나는 매사에 자신감이 없고 자존감이 약하다. 이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 다른 사람을 미리 공격한다. 나나의 엄마는 나나를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말 잘 듣고 엄마를 잘 따르는 둘째에 비해 나나는 말도 안 듣고 늘 제멋대로 하는 아이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애정표현이 둘째에게만 편중되고 나나는 점점 더 외롭다. 둘째는 항상 깔끔하게 센터에 오는데 비해 나나는 풀어헤친 머리를 도대체 언제 감았는지 궁금한 상태로 센터에 오기 일쑤였다.

호호는 항상 여기저기가 아프다. 손에 항상 밴드 서너 개쯤은 붙이고 오는데 떨어져서 보면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스크래치가 있는 듯 없는 듯한 상태이다. 그래도 아프다며 울상이다. 누가 슬쩍만 부딪혀도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움직일 수 없어 쉬어야 한단다. 이런 아이를 다시 움직이려면 최대한 인내심을 발휘하여 끈질기게 아이를 격려하고 달래야만 한다. 호호는 사람을 심하게 가린다. 짝지어 무언가를 할 때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는 절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문제는 마음에 드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호호는 대부분의 짝 활동을 거부하고 늘 울상으로 징징거렸다.

이런 아이들이 한 그룹이 되었다. 동그랗게 앉아 시작할 수 없었고 돌아가면서 이름을 소개할 수도 없었고 게임을 하려고 해도 설명을 듣지 않았고 이 아이를 잡으면 저 아이가 어디론가 가버리고 이 아이를 달래는 동안 다른 아이들이 다투었다. 아이들의 집중력을 높이겠다, 혹은 창의력을 향상시키겠다는 목표를 뒤로 하고 먼저 아이들과 함께 뛰어 놀겠다는 일념으로 잡기놀이부터 시작했다. 선생님이 잡으려고 뛰어다니자 아이들은 잡히지 않으려고 뛰기 시작했다. 모두가 함께 뛰고 있는 것만으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땀을 흘리며 힘이 빠질 때까지 뛰자 아이들이 드디어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서야 이름을 소개할 수 있었고 자기의 움직임을 선생님이, 친구들이 따라 해 주니 기분이 좋다는 것을 경험했다. 여러 가지 주요 증상들 때문에 모였지만 그 문제들은 뒤로 젖혀두고 아이들이 충분히 에너지를 발산하고 재밌게 뛰어놀고 마음껏 표현하는 것으로 목표를 수정했다. 신문지를 마음껏 찢어 날리고 뿌리고 던졌고, 천 위에 친구를 태워 온 힘을 다해 끌고 다녔으며 천정에 손을 닿기 위해 몇 번이고 있는 힘껏 뛰어오르고 선생님 한번 잡아 보겠다며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다녔다. 로봇이 되기도 하고 사자가 되기도 하고 공룡이 되기도 했다. 토끼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집이나 핸드폰이 되기도 했다. 아이들이 자기를 표현하기 시작했고 웃음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미운 말만 하던 나나가 넘어진 아이에게 안 다쳤냐며 다행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엄마 말고는 얘기 안 한다던 무무가 수다쟁이가 되어 자기 얘기 좀 들어보라며 나의 얼굴을 두 손으로 움켜쥐더니 자기 쪽으로 돌린다.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형아를 때리던 진진이가 게임의 규칙을 지키기 시작하고 형아를 졸졸 따라다닌다. 엄마를 싫어하던 범범이가 엄마에게 애교를 부리기도 하고 언제부터인가 호호도 손에 밴드도 붙이지 않을뿐더러 아프다며 다가오는 대신 수다가 늘고 자기표현이 분명하고 잦아졌다.

놀랍게도 아이들이 변했다.

그냥 진심으로 아이들과 뛰어놀고 리듬에 맞추어 춤추다가 멈추기를 하고 깔깔거렸을 뿐인데 너무도 놀라운 변화를 보였다. 마지막 세션에 “얘들아 이쪽에 서봐” 나도 모르게 되지도 않을 주문을 아이들에게 했다 싶었는데 맙소사! 아이들이 말한 벽으로 다 와서 서는 게 아닌가? 눈물이 날 뻔했다. 한바탕 뛰어놀고 아이들과 둘러앉았다. 아이들의 변화는 나만 느낀 게 아니었다.

“나나는 웃음이 많아졌고요 엄청 친절해졌어요.”, “호호는 수다쟁이가 됐어요 그리고 웃음소리가 커졌어요. “무무 오빠도 수다쟁이 됐잖아, 무무 오빠가 재밌어졌어요.”, “진진이는 선생님 말을 이제 좀 잘 듣네요. 우리말도 이젠 좀 잘 듣는 거 같아요.”, “범범이도요 웃음이 많아졌어요, 이렇게 웃긴 애인지 몰랐어요.”

아이들의 고백이 감동적이다. 아이들과 함께 뛰고 구르고 춤추고 안아주었다. 때로는 어디로 가는지 몰라 헤맬 때도 있었다. 진진이가 아이들을 향해 공격성을 보이고 아이들은 모두 진진이를 너무나 미워하며 오지 말라고 거부했다. 난감했고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아무것도 듣지 않는 것 같고 아무것도 해주지 않을 것 같던 아이들이 변화했다. 아이들은 스스로 느끼고 스스로 치유되고 있었다. 너무나 고마웠다. 여러 가지 증상들이 아직 아이들에게 있다. 학교에서, 가정에서 더 많이 수정되어야 할 과제들이 남아있다. 하지만 믿는다. 그 아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을 즐거운 기억들이 분명 예쁘고 훌륭하게 성장하는데 필요한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그래서 염려하지 않고 아이들을 응원한다. 그것이 댄스테라피가 아이들과의 세션을 마치며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선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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