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미영 Feb 12. 2020

춤추는 군인들

함께 춤추면 행복하지 말입니다...


춤을 통해 계급도 경계심도 얼어붙은 마음도 녹여낸다.   



내비게이션의 음성을 따라 작은 도로로 들어서니 굽이굽이 이어지는 계곡 따라 펼쳐지는 풍경이 너무나 아름답다. 짙푸른 초록이던 모습은 성질 급한 나무들이 급하게 붉은색을 입히는가 싶더니 이내 밤새 내린 눈으로 나뭇가지마다 빛나는 눈꽃들이 햇살에 반짝인다.

이른 아침 군인들을 만나기 위해 나서던 발걸음이 처음엔 두려움과 낯섦으로 시작되어 열 번이 되어가는 동안 설렘과 반가움, 친밀감으로 바뀔 수 있었던 것은 뜨거운 여름에서 알록진 가을을 지나 온 세상을 고요히 순백으로 덮어버리는 겨울이 오기까지의 시간과 춤이 가지는 놀라운 영향력 덕분이었다. 그들과의 만남은 즐거운 여행이었다. 새로운 길에 대한, 새로운 시간에 대한, 새로운 사람에 대한 여행이었고 또한 새로운 감정에 대한 여행이었다.

강원도 화천군은 군인들의 고장이다. 주요 사단이 밀집해 있는 군사지역으로 모든 일상이 군부대와 연관이 되어 있어 터미널, 식당, 커피전문점 어디를 가도 군인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 일주일에 한 번, 춤을 추기 위해 기다리는 국군용사들이 있다.

자유롭던 일상을 뒤로하고 자신의 독특한 개성을 묻어 둔 채 부모님의 살뜰한 보살핌을 그리워하며 모두가 함께 생활하는 군인들. 더구나 이제 입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용사들은 아직도 부대가 익숙지 않다. 요즘같이 형제도 별로 없이 혼자 지내던 이들에게 이런 단체생활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친화력이 좋아 누구와도 허물없이 지내던 사람들도 불편하고 경직되는 곳인데 내성적인 사람들은 오죽하랴. 더구나 입대 전에는 해보지도 않던 많은 일들을 감당해야 하고 계급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경험들과 자신의 한계를 넘나드는 훈련량 역시 그들이 겪어내야 하는 것들이다.

이런 군인들의 다양한 스트레스의 해소와 긍정적 에너지 활성화를 통한 더 즐거운 군 생활을 위해 댄스테라피를 진행하게 되었다. 총 10회기 동안 진행되었으며 20여 명의 군인들이 참여하였다.

부대 입구 위병소에서 신분확인을 한 뒤 모두가 모여 있는 장소로 향했다. 삼삼오오 지나가며 “필승!” 인사를 건네는 군인들의 모습이 낯설고 안쓰럽고 든든하다. 모두가 모여 있는 곳. 경계의 눈빛,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적막함까지 감도는 낯설고 불편한 분위기에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고 이름에 자기의 움직임을 싣고 다른 사람의 움직임을 함께 움직여 보면서 얼어있던 분위기가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했다. 함께 몸을 이완시키면서 경직된 마음의 벽이 허물어지고 서로의 움직임을 관찰하면서 평소 알지 못했던 동료의 모습을 알아간다. 인사 한번 제대로 해보지 않았던 사람과 움직임을 조율하고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때로 힘겨루기를 하기도 하고 어린아이처럼 게임을 즐기기도 하며 춥고 외롭던 부대 내에서 마음을 주고받는다.

자기 이름 소개하기 조차 귀찮아하고 움직임을 하자 하니 더더구나 싫어하던 군인들이 회기를 거듭하면서 이 시간을 기다린다고 얘기한다. 미리부터 병영도서관에 모여 책상과 의자들을 치워놓고 치료사를 보자마자 오늘은 어떤 활동을 할 것인지 묻기도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신청하기도 한다. 만나면 으레 하던 무표정한 형식적인 인사에 점차 반가움이 묻어나고 숨어있던 표정들이 살아난다. 처음 만나 긴장하며 불편하던 무뚝뚝한 군인 아저씨들이 매력적인 미소를 뿜어내는 귀엽기까지 한 군인 조카가 되어 리듬에 맞추어 춤을 춘다.

자신의 휴가 계획을 짜보기도 하고 서로가 서로의 아바타가 되어 시키는 대로 움직이기도 한다. 좋아하는 가요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자신들이 만든 움직임으로 안무도 한다. 한 사람씩 돌아가며 하는 미러링 움직임에 자기만의 개성이 조금씩 가미되어 회기를 모두 마칠 무렵 그 움직임만으로도 훌륭한 춤이 된다. 딱딱하게 굳어있던 몸들이 유연해진 움직임으로 바뀌면서 딱딱했던 마음들이 서로에게 얼마나 유연해졌는지를 볼 수 있다.  처음 손을 맞잡던 어색함은 간데없고 손을 잡고 빙빙 돌기도 하고 서로의 몸을 움직여보기도 하고 격해진 움직임으로 몸을 부대끼고 부둥켜안기도 하면서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의지할 곳을 찾고 누군가의 쉴 곳이 되어준다. 리듬에 맞추어 같은 움직임을 땀을 흘릴 때까지 반복하면서 모두가 하나의 마음이 된다.

갑자기 내린 눈으로 제설작업에 동원되느라 참여하지 못한 한 용사가 다음 주에는 꼭 나오겠다며 함께 하지 못했음을 아쉬워하는 고마운 마음에 격한 감정이 일렁인다.

마지막 그들에게 가는 발걸음에 서운함이 앞선다.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들과 신선한 공기가 새삼 새롭고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불어오는 찬바람마저 피부에 새겨둔다.

마지막 회기에 또 훈련이 잡히는 바람에 많은 이들이 참석하지는 못하였지만 함께 하고 싶었다는 마음들을 전해준다. 함께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가면을 만들고 가면에 맞는 움직임을 선보이며 마지막 사진을 찍어둔다.

“처음엔 그룹 원들이 너무 낯설었는데 움직임을 통해 많이 친해져서 좋다.”

“움직임이 귀찮았는데 움직임을 통해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을 수 있어서 좋았다. 마음이 편해진 것 같다.”

“재밌고 유익한 시간이었다.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했다.”

“나에게 군대는 여행과 같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일들을 만나고 새로운 나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댄스테라피가 군인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잔뜩 긴장된 하루하루를 보내는 그들이 잠시 마나 자기를 이완시킬 수 있는 것, 맡겨진 임무에 마음 문 굳게 닫고 지내는 그들이 서로 소통하며 자신의 어려움을 나눌 수 있는 것, 두고 온 그리운 것들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바라보고 내재된 긍정적 에너지를 회복하도록 도울 수 있었던, 그들과 함께 호흡하고 춤추며 땀 흘리던 시간들이 소중하다.

그들의 열정과 젊음을 응원하며 그들의 앞길이 밝고 환하길 염원하며 그들과 리듬에 맞추어 춤추던 그 시간이 그들의 긴 인생의 여정 길에 즐겁게 기억되는 순간이 되기를 바란다.      


이전 14화 춤추는 ADHD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