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예술에 대한 사랑
로버트 맥키의 책을 읽을 때면, 시나리오라는 ‘이야기 예술’에 대한 사랑, 더 좋은 이야기에 대한 갈망이 느껴진다. 나 또한 좋은 이야기를 갈망하는 사람이기에, ‘나는 왜 무언가 보는 경험을 놓지 않으려는 걸까, 이야기가 있는 영상을 보며 무엇을 경험하고 싶어 하는 걸까?‘ 궁금해하곤 했다.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이 책을 보며 ‘아, 내가 이래서 이야기를 좋아하는구나’ 깨닫고 공감하게 된다. 책의 첫 페이지에 적혀있는 멋진 말처럼 “이야기는 삶의 도구이다(by 케네스 버크).”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모르는 세계를 발견하고, 그 안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가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은 새롭고 매혹적인 세계 속으로 들어가 처음에는 너무나도 나와 달라 보이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는 결국 우리와 똑같은 또 다른 인간이 되어 살아보기 위한 것(Story, p.12)”이다. 현실에서 살아볼 수 없는 다양한 삶을 소설과 영화 같은 ‘이야기’ 속에서 살아보는 것이다. 현실에서 본 적 없는 인물들을 만나고 사랑해 보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들은 우리의 가치관을 바꾸고, 삶에 대한 나름의 통찰력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준다. 작가는 삶에서 영감을 받듯이, 작품은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준다. 나처럼 삶과 예술 사이의 일어나는 이러한 상호작용을 믿는 사람이라면, ‘이야기 예술’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특히 나를 사로잡았던 문장은, 작가가 가져야 하는 ‘이야기에 대한 사랑’에 관한 부분이다.
“이야기에 대한 사랑, 즉 작가의 전망은 이야기를 통해서만 표현될 수 있다는 믿음, 등장인물들이 실제의 사람들보다 훨씬 더 사실적일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가공의 세계가 실제의 그것보다 훨씬 근원적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극적인 것에 대한 사랑, 즉 돌연한 사건들의 놀라움과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사실들에 매혹당해야 한다. 진실에 대한 사랑, 즉 작가로 하여금 평생 인생의 모든 진실에 대해서 그 가장 깊은 비밀의 동기에 이르기까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천형을 지도록 만드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인간에 대한 사랑, 즉 고통받고 있는 영혼에 기꺼이 동감하여 그들의 내부로 들어가 그들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려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 감각에 대한 사랑, 즉 육체적인 것만이 아니라 내면적인 감각에 대해서도 열려 있으려는 욕망이 있어야 한다. 꿈에 대한 사랑, 즉 단순히 그 끝이 어디인지 가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도 상상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즐거움을 알아야 한다. 유머에 대한 사랑, 즉 삶의 균형을 회복시켜 주는 여유를 아껴놓는 기쁨을 알아야 한다. 언어에 대한 사랑, 즉 소리와 그것들이 주는 감각, 문장의 구성과 의미에 대한 탐구가 주는 재미를 알아야 한다. 이중성에 대한 사랑, 즉 삶 속에 감춰져 있는 이중성을 감지해 내는 능력과 사물들의 본질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건강한 의구심이 있어야 한다. 완전함에 대한 사랑, 즉 완전하다고 느끼는 순간에 도달하기까지 쓰고 또 고쳐 쓰는 열정이 있어야 한다. 독창성에 대한 사랑, 즉 대담하게 독창성을 추구하며 조소를 당할 때에도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 즉 좋은 작품을 소중히 여기고 나쁜 작품을 싫어하며 그 둘 사이의 차이를 아는 내밀한 감각이 있어야 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즉 남들에게서 끊임없이 인정받지 않아도 견딜 수 있으며 자기 자신이 진정한 작가라는 것에 대해 추호도 의심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작가는 작품을 쓰는 행위를 사랑해야 하고 외로움을 견뎌낼 줄 알아야 한다. (Story, p.39)”
시나리오 작가뿐만 아니라, 무엇이든 이야기하고 싶은 열정을 가진 창작자라면, 이 책에서 방법론적 배움 뿐만 아니라 위로와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한 권씩 모아두고 읽다 멈추기를 반복한 책이지만, 꺼내들 때마다 곱씹어보게 되는 책이기에 완독을 목표로 기록을 시작한다. 책에서 언급된 영화들을 찾아보며 공부하고 즐기기 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