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리허설과 첫 촬영을 앞두고

by BK

프리 프로덕션 기간 동안 수차례 협의하고, 몇 개월에 걸쳐 공사한 세트가 완료되면, 촬영이 들어가기에 앞서 세트리허설을 갖는다. 미술감독인 나에게는 설레기도 힘들기도 한순간이 처음으로 감독님과 주요 스태프들에게 세트를 보여주는 이 때다.


세트리허설에서 찬사를 받은 적도 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거나 대대적인 수정을 해야 하는 힘든 순간인 적도 있었다. 어쨌든 기본적으로는 촬영에 필요한 것들을 세심하게 점검하는 자리이다 보니 각 파트별로 자신이 필요한 것을 중점적으로 확인하기도 하고, 미술팀 입장에서는 집중과 긴장이 필요한 날이다.


세트리허설과 첫 촬영을 앞두고 내가 주로 하는 일은 이런 것이다.

(시험 기간을 앞두고 책상 정리를 하듯이, 약간은 마음을 깨끗이 정리하고)


1. 세트를 돌아다니며 대본을 다시 본다. 세트에서 대본을 다시 보는 일은 나에게 꼭 필요한 일인데, 미술감독이 세트를 돌아다니면 여러 사람이 말을 걸기에 집중이 어렵지만, 최대한 해보려 노력하는 일 중 하나다. 대본을 보며 공간을 돌아다니다 보면 이 문이 이 방향으로 열리는 게 맞는지, 동선에 방해되는 것은 없는지, 중요한 앵글에서 이상하게 보이는 것이 없는지 미리 확인하게 된다. (가령, 앙각으로 찍어야 하는 샷에서 천정에 마감이 이상한 부분은 없는지? 반대로 배우가 바닥에 내동댕이 쳐지며 바닥이 타이트하게 찍힐 것이 예상되는 경우, 바닥재의 퀄리티나 마감이 괜찮은지? 출입을 해야 하는 문이나 기능을 가지고 작동해야 하는 것들이 제대로 되어있는지 등.)


2. 소품 세팅이 완성에 가까워지면 사진을 찍어 전체 느낌을 확인한다. 내가 만난 잘하는 소품팀들은 단번에 소품을 세팅하는 것이 아니라, 큰 것들이 채워지고 나면, 작은 것들을 채우고, 괜찮은지 보아가면서 디테일을 계속 만진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며, 더 좋은 선택지를 찾아가는 것이다. 물건들을 우당탕탕 채워놓고, 조명 달고 액자 걸고 나면 끝인 양 하는 팀들도 만나봤지만, 정말 잘하는 사람들은 그림을 그리듯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디테일을 수정한다. 나 또한 더 좋은 세팅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하기 위해, 그리고 세트콘셉트와 관련하여 시각적으로 튀는 것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사진을 찍어 확인하곤 한다. 카메라의 눈으로 봤을 때 튀는 것들, 조화를 해치는 것들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3. 사진가베 등 세트 외부와 동선을 정리한다. ‘사진가베’라고 많이 부르는 사진세트(backdrop)들이 제 위치에 있는지 확인하고 동선을 정리한다. 첫 촬영 시점이 되면 조명 세팅도 해야 하고, 여러 팀들의 장비와 짐이 들어오기에, 반입구 등 세트 외부에 위험한 물건이나 동선을 막는 것이 없는지 확인한다. 웬만해서는 세트, 소품팀이 알아서 정리해주기는 하지만, 불필요한 자재들이 남아있을 때도 있다. 나의 경우, 유리가 벽에 기대어 있던 것을 못 보고 지나쳐서 위험했던 경험이 있었다. 그래도 예전과 비교하면, 소방법이나 안전관리가 점점 체계화되면서 스튜디오 환경은 전보다 좋아진 편이다.


4. 감독, 촬영감독이 자세히 보아줬으면 하는 것, 반드시 상의해야 할 내용을 리스트화한다. (사실 이걸 잘해야 하는데, 이번에도 놓친 것이 있어 다시 한번 확인을 받아야 한다.ㅠ)

가령 촬영을 위해 오픈할 수 있게 만들어 둔 부분이라든지, 기계적으로 동작되는 부분, 특정 씬에서 변화를 주거나 중점적으로 체크해야 하는 부분 등이 있다. 촬영/조명감독이 가장 궁금해하는 사진세트의 위치와 바래나는 부분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크로마키 준비하여 cg처리할 것인지? 투명유리를 불투명하게 바꾸거나 시트를 붙일 것인지 등)에 대한 협의도 있다.


5. 세트리허설이 시작되면, 평면도와 대본을 갖고 다니며 리허설에서 발생한 수정사항에 대해 메모한다. 미술감독은 세트를 안내하거나 질문에 답해야 하는 등 바쁘기에, 후배 디자이너들에게 감독님이 하는 중요한 이야기나 세트 수정사항들을 메모할 수 있게 지시해 둔다.


6. 리허설을 마치고 나면, 수정리스트를 작성한다. 각 팀별로 수정할 부분을 전달해야 하기에, 보통은 세트 / 작화 / 소품/ 외부발주물 별로 수정리스트가 필요하다. 대부분 큰 수정이 아닌 경우가 많아서 (물론 큰 수정을 해야 하는 골치 아픈 경우가 없는 건 아니지만, 예산과 시간이 소요된다. 이러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사전 협의는 최대한 꼼꼼할수록 좋은 것 같다.) 도면에 알아보기 쉽게 표시를 해주는 정도로 빠르게 리스트를 만들고 수정요청을 하는 편이다.


7. 첫 촬영을 앞두고, 몇 달 동안 준비한 세트에 놓친 부분은 없는지, 소품적으로 아쉬운 부분은 없는지, 까지거나 망가진 부분은 없는지 등을 여러 사람이 확인하며 준비한다. 갈고닦는 느낌이다. 다른 스태프들은 대부분 완성이 된 후에 세트장에 들어오기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세트에 공을 들이고 많은 신경을 썼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세트를 짓는 각 공정마다 자신의 할 일을 가진 사람들이 주말, 연휴 할 것 없이 드나들고, 자기에게 할당된 일을 문제없이 하려고 노심초사하고, 문제가 있으면 고치고 매만지기를 반복한다. 잘 완성된 세트를 보았을 때, 많은 사람들의 정성이 새삼 실감되면서 정말 큰 고마움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나 또한 정성을 들인 사람 중에 하나이기에, 진심을 담아 ’ 수고하셨다 ‘, ’ 멋지다 ‘는 말을 들으면 큰 보람이 되고, 그렇지 못할 경우엔 내심 씁쓸함을 느끼기도 한다. 많은 사람이 나의 디자인을 실현해 주기 위해 고생했다는 것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사람은 미술감독이기에, 나라도 꼭, 함께 한 사람들에게 ‘고생하셨다,‘ ’ 감사하다 ‘는 말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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