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미술을 위한 대본분석

대본에 답이 있다

by BK

대본분석은 프리프로덕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다. 디자인 중에 고민이 많을 때도, 머리를 비우고 대본을 다시 보면서 답을 찾기도 한다. (때로는 오히려 대본을 무시하고 다른 답을 찾아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또한 대본을 꼼꼼히 보고 나서 가능하다.)


사람마다 대본을 분석하는 방법이 다르고 정답도 없겠지만, 처음 드라마를 접하고 대본을 보는 디자이너들에게 내 경험상 추천하는 방법이 몇 가지 있다.



1. 첫 일회독은 정말 중요하다.

경험상 대본을 처음 읽을 때, 가장 중요한 아이디어들이 떠오르고, 처음 대본을 읽고 느낀 인상이 가장 오래 남는다. (이 부분은 내가 만난 연출자나 미술감독들도 동의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이동 중이거나, 졸리거나,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환경에선 첫 일회독을 하지 않는 편이다. 맑은 정신으로 책상 앞에 앉아서, 최대한 끊김 없이 단숨에 대본을 읽어나간다. 어떤 부분에서 캐릭터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는지, 어떤 사건은 설득력이 있고, 어떤 장면은 어색하다고 느껴졌는지, 일견 미술과 상관없는 이야기의 흐름도 관객이 된 것처럼 읽어나간다. 그러던 중에 주요 인물의 미술 컨셉이나 공간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메모하며 읽는다.


미술감독은 다른 스태프들보다 초고를 빨리 받아보는 축에 속하고, 대부분의 연출자들은 대본 공유 후 어떻게 봤는지 궁금해하기에, 일회독 후에는 곧바로 연출자와 의견을 교류하곤 한다.


그때 대본을 읽으면서 인상 깊었던 부분, 잘 이해되지 않거나 개선이 되었으면 하는 부분 등을 메모해 두면 연출자와 의견을 나누기가 훨씬 수월하다. 그 과정에서 연출자와 미술감독이 이 작품을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가고 싶은지 방향 설정을 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2. 공간별 씬정리와 회차별 요약을 하면서 본다.


연출부에서도 공간별 씬정리를 해서 제공해주긴 하지만, 미술팀 자체적으로 씬정리를 하는 게 좋다. 나의 경우, 크게 세트와 로케이션으로 공간을 나누고, 공간 별로 어떤 씬이 있는지와 주요 사항을 문서화한다. 문서화하는 이유는, 공간별 씬의 개수와 중요도, 체크리스트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미술팀 내 공유를 위해서이다.


초고가 많이 수정되는 경우, 처음에 했던 씬정리는 씬넘버가 뒤섞이기도 하여 불필요한 문서가 되어버리곤 하지만, 초반에 씬정리를 하는 과정에서 대본의 구조와 흐름을 잘 이해하게 된다. 가변세트를 짓거나, 어떤 공간의 미술 세팅을 우선시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에도 도움이 된다.



3. 대본은 책으로 보거나, 출력해서 본다.


인간의 뇌는 정보를 물리적, 공간적 정보와 함께 기억할 때 더 잘 기억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소설책을 한 권 읽을 때, 책의 중반부에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지 기억이 안 나면 중반쯤 페이지로 돌아가 다시 찾아 읽곤 한다. 우리 뇌는 그 이야기가 50-60페이지쯤 있었던 것 같다고 공간적 정보를 기억하고, 그런 식으로 기억된 이야기가 머리에 더 잘 남는다는 것이다.


요즘은 태블릿으로도 대본을 많이 보고, 검색이나 메모의 편의성도 좋아졌지만 이런 이유로 대본은 책으로 보길 추천하곤 한다. 누군가는 태블릿으로 보는 게 머리에 더 잘 들어올 수도 있겠지만, 아날로그에 익숙한 나는 책으로 보는 대본이 훨씬 머릿속에 잘 기억되는 것 같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의 커리어 과정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