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간단한 강연 요청 + 어떻게 해서 미술감독을 하게 되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생각을 정리할 겸, 미술감독이라는 진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위해 나의 커리어 과정들에 대해 써본다.
1. 운
나는 미대 졸업 후 방송국에 공채로 입사하면서 일을 시작했다. 사실 그냥 사소한 인생의 결정들이 모여서 여기까지 온 것인데, 내가 이 일을 좋아하는 걸 보면 운이 참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2. 전공에 대한 생각
대학에서는 순수미술을 전공했지만, 졸업을 앞두고 시각디자인을 복수전공하며 취업 준비를 했다.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과, 뭔지 몰라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에 선택한 것이 무대디자인 직무였다.
주변의 미술감독을 보면, 나처럼 순수미술을 전공한 분들도 있고, 산업디자인, 시각디자인, 무대디자인을 전공한 분들도 많다. 은근히 각자 전공이 업무성향이나 작품에 드러나기도 해서, 다양한 전공의 미술감독이 있는 건 좋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인생이 이만큼 흘러와서 보니 “무대디자인”이라는 일이 좋고 잘하고 싶어서,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무대디자인과에서 공부를 했어도 좋았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인생 모르는 것..., 무대디자인을 공부했으면 청개구리같이 다른 일을 했을지도 모른다.
3. 회사의 성격
방송, 콘텐츠 제작업계에 있으면 다양한 방식으로 자기 커리어를 쌓아온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영화나 드라마의 미술팀, 소품팀 등으로 경력을 쌓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회사나 고용형태가 다양하다. 미술감독을 주축으로 한 소규모 디자인 회사도 있고, 나처럼 기업이나 방송국 디자인팀에 입사해 경력을 쌓을 수도 있다. 회사에 소속되어 일하다가 나가서 프리랜서로 일하는 분들도 있다. 프로젝트에 따라 그때그때 미술팀을 꾸리기도 한다.
4. 방송국에서 일하는 것
내내 회사에 소속된 디자이너로 일했기에 외부 사정은 잘 모르지만, 내가 경험한 커리어 과정의 장단점은 아래와 같다.
-소속 방송사의 거의 모든 작품을 소화해야 하므로, 쇼, 예능, 교양,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경험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단발성의 쇼무대(ex. 엠카운트다운, 인기가요)나 예능/교양 프로그램의 세트를 디자인하다가 좀 더 규모가 큰 대형콘서트/시상식, 드라마 순으로 경력을 쌓는다. 회사의 사정이나 개인 성향에 따라 달라지긴 하지만, 해외에서 만났던 미술감독도 CF나 뮤직비디오 -> TV show -> Film이나 Series 순서로 후배들을 키운다고 했다. 아마도 프로젝트의 기간이나 복잡성, 예산규모가 커지기 때문인 것 같다.
-프로그램을 배정받아 일하게 된다. 하고 싶어도 못하는 프로그램이 있고,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 있다. 프로그램 배정은 주로 팀장이 하지만, 연출자/제작자가 원하는 미술감독을 팀장에게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간택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기에, 기왕 일하는 거 내 취향인 작품이 내게 오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