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이디버드 리뷰_written by 이담
그레타 그윅이 제작한 영화 <레이디 버드>는 스스로에게 ‘레이디 버드’라는 이름은 부여한 고등학생 크리스틴의 성장 과정을 그리고 있다. 왜 소녀들에게는 소년의 성장영화 ‘보이후드’와 같은 성장 영화가 없는지에 대한 물음으로부터 <레이비 버드>가 시작되었다는 그레타 그윅의 인터뷰를 보면,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가치는 특별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대학 진학 직전의 시기에 위치한 소녀의 꿈과 환상,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겪는 갈등과 불안의 심리를 영화는 크리스틴의 시선을 통해 은은한 빛무리를 가만히 들여다보듯 섬세하게 그려낸다.
크리스틴이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새크라멘토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동네다. 학교도 카톨릭계로 그녀의 하루하루는 엄숙한 성당과 같은 분위기 아래 평범하게 흘러간다. 하지만 핑크빛 머리의 크리스틴은 이 온건한 생활에 불만이 가득하다. 그녀는 스스로 별종이 되기를 선택했고, ‘레이디 버드’라고 스스로를 명명한다.
‘새’를 의미하는 단어가 포함된 만큼 레이디 버드는 어디에도 구속받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꿈을 향해 날아오르고자 한다. 레이디 버드에겐 많은 꿈이 있었다. 동부의 대학에 진학하는 것, 좋아하는 남자와 환상적인 첫 경험을 하는 것 등등. 하지만 주목할 점은 레이디버드의 행동이다. 그녀는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것을 위해 거침이 없고 의구심이나 불안을 느끼지도 않는다. 확고한 꿈에 대한 믿음 아래 동부 쪽 대학에 지원하기 위해 아빠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이를 반대하는 엄마에 지지않고 의견을 피력한다.
한 편으로는 좋아하는 남자가 생기면 망설임 없이 다가간다. 오디션 공연에서 한 눈에 반한 대니에게 곧바로 다가가 연인이 되었고 이후 밴드 공연으로 처음 본 카일과도 가까워지기 위해 그전에는 별로 좋아하지 않던 카일의 친구 제나와 친해지려 노력하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레이디 버드는 좋아하는 이에게 다가가기 전의 어떤 고민이나 부끄러움을 거의 느끼지 않고 바로 직진한다. 욕망에 솔직하고 그 욕망에 부끄러움이라는 부수적인 감정은 기꺼이 가볍게 넘겨버린다.
이렇게 레이디버드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 강한, 자아가 강한 소녀다. 하지만 보수적인 학교에서 그런 그녀의 특성은 다소 뾰족하게 드러난 못과 같다. 얄미운 선생의 채점파일을 버리기도 하고, 제나의 관심을 얻기 위해 수녀님의 차에 ‘예수와 방금 결혼했다’는 현수막을 다는 심한 장난을 치기를 거리끼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러한 그녀의 고약한 면모들은 그다지 미워보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녀의 몇몇 행동이 치기어리다 해도 그녀가 진실로 믿는 옳은 일들과 행동들이 많은 이들을 생각하는 사려 깊은 마음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기 때문이다. 레이디버드는 자신에게 게이였던 것을 들킨 전 남자친구 대니의 아픔을 보듬어줄 수 있고 한동안 소홀히 했던 친구를 찾아가는 용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또한 사사건건 그녀의 자존감을 갉아먹는 엄마의 말들에도 엄마의 큰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딸이었다. 그녀의 주변의 인물들이 각자의 상황에 우울을 느끼고 있기에 그 사이에서 자신을 믿으며 주변 사람들을 포용하고 이해하는 그녀는 더욱 강해보인다.
굳은 자신에 대한 믿음, 거칠 것 없는 성격, 따뜻한 마음 등을 가진 ‘레이디 버드’는 그래서 이상적이다. 어떤 17살짜리 소녀가 이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 이 시기의 불안감은 때론 나아가지 못하게 하고 모든 것을 망치기도 한다. 지금의 상황에 수긍하고 살아가는 학생들이 대다수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매순간을 의심하는 시간을 겪을 때가 바로 이 시기다. 더 나아지지 않을 수 있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현실에서의 안주, 옳지 않은 것과 규칙에 순응하기 쉬운, 부드럽지만 심지가 곧지 않은 영혼을 가지고 있을 때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그러한 레이디 버드에 대한 찬양이 아닌 성장서사를 담는다. 환상과 꿈을 좇던 레이디버드가 다시 크리스틴으로 돌아와 현실의 땅을 밟게 되는 성장 과정 자체가 이 영화의 메시지다.
레이디 버드는 이상을 좇았지만 차츰 현실을 깨달으며 한 계단씩 그 아래로 내려온다. 빛나는 별처럼 영원할 것 같던 대니와의 사랑은 그가 게이인 것을 알게됨으로써 배신으로 돌아왔고, 환상적일 거라 믿었던 첫 섹스에 대한 로망은 카일이 경험이 6번이나 있었다는 고백으로 깨지고 만다. 언제나 자신을 지지해주었던 아빠는 우울증을 겪고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된다. 또한 엄마가 그리도 강조했던, 돈이 부족한 집안 사정에 불만을 드러내는 것이 얼마나 오만한 일인지 깨닫는다. 이 일련의 사건들은 레이디 버드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하지만 그녀는 특유의 강인함과 함께 주변 사람들의 애정으로 상처를 갈무리하며 성장한다. 미워하던 엄마의 사랑이 사실은 얼마나 큰지, 얄랑한 사랑이라는 환상보다 친구와의 우정이 더 소중함을 다시 되새긴다. 차마 직접 전해주지 못한 꼬깃한 종이들 속 수십번은 고쳤을 엄마의 서툴지만 깊은 마음과 누구보다 같이 있으면 즐거운 친구 줄리와 같이 춤춘 프롬의 밤은 깊이 우리의 마음에 스며든다.
이렇게 그녀가 깨닫는 것들-엄마의 사랑, 친구와의 우정-을 통해서 이 영화가 다른 영화들의 성장서사와 다른 결을 그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도 많은 영화에서 소녀들이 목매었던 남자에 대한 사랑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관계로 모녀관계와 친구와의 관계가 더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수 있다. 사실상 이러한 관계가 18세의 소녀에게 더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주고, 많은 또래 관객들의 공감을 얻어냈다는 점에서 소녀 성장 영화의 그림은 더욱 다양해졌다.
따라서 레이디 버드가 크리스틴으로 돌아오는 결말은 아프거나 실망스러운 결과가 아니다. 사랑에 실패했더라도 모녀간의 갈등에서 서로 한 발자국 더 나아가고, 친구와의 관계도 회복한 일이 ‘크리스틴’의 삶을 긍정하게 만들어주었다. 더 이상 크리스틴은 지루한 새크라멘토에서 사는 소녀가 아니었다. 새크라멘토의 추억으로 성장했고 이는 그녀가 뉴욕에서 더 단단하게 살아갈 힘을 줄 터였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힘은, 이 시기를 겪었던 많은 여성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는 점이다. <레이디 버드>는 그 시절을 다시 되새기게끔 해준다. 나도 ‘낭랑 18세’라는 나이었을 때, 많은 로맨스 소설에서처럼 끝내주는 일년을 보낼 거란 기대를 갖고 있었다. 남자친구도 생길 것 같았고, 학교에서는 영원히 기억에 남을 추억을 쌓을 수 있을 것 같았던 기대에 어느 정도 상기되어 있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 18살 때의 시간들은 그리 기억나지 않는다. 그 해는 불안감을 느꼈던 감정의 흔적만으로만 기억하고 있다. 지루한 나날에서 벗어나 멋진 도시의 대학에서 빛나는 미래를 상상하고 노력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불안했던 것들을 그대로 겪고 있었으니 말이다. 친구들과의 관계는 언제나 큰 고민 중 하나였고 부모님과의 갈등도 그러했다. 그럼에도 큰 사건들은 없었다. 하지만 내면의 감정들이 그 무엇보다 부풀었기 때문에 거기에 매몰되어 있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크리스틴의 대사에서처럼 마지막 장면에서 언제나 영화처럼 소리치거나 극적인 것들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냥 조용히 지나갈 뿐이다. 하지만 그녀가 겪은 감정들은 분명했고 너무나 우리가 겪었던 것과 비슷해 마음이 울렁이는 듯한 공감을 낳는다.
한편으로는 레이디 버드를 동경한다. 그녀는 나랑 달리 매우 용기있고 진취적이었다. 내가 하지 못했던 일들을 대신 하는 그녀를 통해 위안을 느끼면서도 그녀처럼 나아갈 수 있을 듯한 용기를 얻기도 한다. 앞으로 놓인 미래에는 끝없는 현실의 위협과 타협이 놓여있을 터였다. 하지만 내 주위에 소중한 이들이 있기에 넘어진 무릎에도 개의치 않고 툭툭 털어 앞으로 걸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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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이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