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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레트 Jan 12. 2024

확신으로 기억되는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나에 대한 확신은 그 누구도 아닌 내가 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작품을 감상할 때 무엇을 먼저 확인하시나요? 아무런 정보 없이 작품의 조형미 혹은 분위기를 충분히 음미하는 경우도 있고, 작품의 제목과 화가의 이름, 제작 연도 등을 확인하고 작품의 의미를 추론해보기도 할 것입니다. 이 때 화가가 살아온 삶의 흔적을 근거로 작품을 해석하는 것은 미술 감상에서 자주 시도하는 방법이지만, 동시에 작품 해석을 단순화 시키거나 오해의 소지가 있는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소개할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 1593-1656)의 그림은 그녀의 삶을 말하지 않고는 설명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1620년 경, 우피치미술관, 피렌체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에는 세 사람이 등장합니다.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와 하녀. 건장한 체구의 장수지만 두 명의 여성에게 더 이상 저항할 힘도 없이 죽어가는 홀로페르네스. 성경 속 인물인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를 주제로 그린 그림들은 많았지만 유디트는 늘 아름답고 연약한 존재로만 표현되었습니다. 적장의 목을 벤다는 건 상상도 못할 만큼 가녀린 외모이고, 피가 튀기는 모습을 찡그리며 바라보는 여인. 도대체 왜 이 짓을 하고 있어야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 이와 비교하면 젠틸레스키가 그린 몸집이 크고 강인해 보이는 무덤덤한 표정의 유디트는 전례가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이 특별한 유디트는 젠틸레스키에게 벌어졌던 일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 시대의 여성들은 공식적으로 미술 교육을 받기 어려웠기 때문에 보통은 아버지를 화가로 둔 재능 있는 여성들이 아버지로부터 미술교육을 받곤 했습니다. 젠틸레스키 역시 당대 인정받는 화가였던 오라치오 젠틸레스키의 딸로서 아버지에게 그림을 배웠지요. 아버지보다 재능이 더 많다는 칭찬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이었기에 아버지를 도와 작품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았지요. 하지만 아버지를 따르는 남자 제자들에게 늘 둘러싸여 지내던 어느 날, 제자 중 한 명이었던 아고스티노 타시로부터 씻을 수 없는 몸과 마음의 상처를 받고 오랜 시간 소송을 진행하며 치욕스러운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타시의 명백한 잘못이 드러났음에도 아르테미시아는 주변의 차가운 시선을 오롯이 견뎠고, 후에 자신이 살던 로마를 떠나 피렌체의 화가와 결혼하여 이주합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었음에도 로마를 떠난 건 정작 젠틸레스키였으니, 얼마나 억울했을까요. 그로부터 몇 년 뒤에 그린 이 그림에서 타시와 닮은 얼굴로 홀로페르네스를, 젠틸레스키와 닮은 얼굴로 유디트를 그린 것은 우연이 아니겠지요.


   젠틸레스키에 대한 이야기가 여기서 그친다면, 혹은 타시와 얽힌 일이 그녀의 삶에 가장 중요한 에피소드로 기억된다면 그것은 미술에 대한 그녀의 진심을 모독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녀는 분명히 화가로서 뛰어난 재능과 열정이 충만했고, 사회적으로도 마땅히 인정받은 화가이기 때문입니다. 젠틸레스키는 피렌체에서도 화가로서 실력을 인정받아 당대 최고의 가문이었던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았고, 피렌체의 미술 아카데미였던 ‘아카데미아 델 디세뇨’의 첫 여성 회원으로 뽑히게 됩니다. 이제 그녀는 아버지를 돕는 재능 있는 딸이 아닌, 한 남자의 아내가 아닌, 온전하고 독립적인 화가로서 당당하게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갑니다. 


회화의 알레고리로 그려진 자화상>, 1639년, 로열컬렉션, 런던

  

  젠틸레스키의 작품 중 화가로서 자부심을 완벽히 담고 있는 그림이 있습니다. 바로 <회화의 알레고리로 그려진 자화상>인데요. 제목에서도 읽혀지듯 젠틸레스키 자신을 회화 그 자체로 바라보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고백합니다. 작품 속의 그녀는 일반적인 자화상들과 달리 정면을 응시하지 않습니다. 무척 파격적인 구도의 작품이지요. 두 손에 들린 팔레트와 붓은 그녀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도구입니다. 그녀의 시선은 화면 밖의 캔버스라는 것을 짐작하게 하지요. 화면 밖에서 그녀를 보는 시선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또한 당대 유사한 자화상들이 자신을 귀족처럼 표현한 것과 달리 그 어떤 화려한 옷도 장신구도 없는 온전히 작업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두 팔을 크게 벌리고 거침없이 그림을 그리는데 몰두하고 있는 현재 진행형의 자신을 담아낸 것이지요. 과거에도 지금도 미래에도 같은 모습일 것이 분명한! 


   누가 나를 어떻게 보든 개의치 않을 것이라는 다짐, 내가 가장 나다울 수 있는 것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는 명백한 확신이 느껴집니다. 잃어버렸던 자기 자신을 규정하는 그 외침이 메아리 되어 그녀 자신의 상처를 치유한 것은 아니었을까요? 활짝 벌린 두 팔이 그녀의 삶을 있는 그대로 껴안는 기분마저 듭니다. 젠틸레스키는 누구보다 자신을 진심으로 이해했고, 슬픔과 절망 속에서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고, 가장 사랑하는 화가의 길을 성큼성큼 걸어가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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