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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에 휩쓸리는 상상력의 종말]

상상하지 않고 만들어내는 인간, 껍데기만 남는다

by 김도형

요즘 우리는 무언가를 왜 만드는지조차 모른 채 무작정 새로운 기술을 따라가고 있다. 마치 한때 유행처럼 번졌던 지브리 패러디 사진을 흉내 내던 것처럼, AI든 뭐든 신기술이 등장하면 우선 ‘해보고 본다’는 태도가 일상화되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공허함이 자리한다. 우리가 왜 그것을 하는가, 무엇을 상상했는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는가에 대한 주체적 물음 없이 그저 만들어 내기만 하는 시대. 그렇게 인간은 스스로의 상상력과 주체성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기술의 진보는 영상이든 이미지든 무엇이든 너무나 쉽게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그 결과 우리는 디자이너가 수년간 공부했던 ‘타이포의 감각’, ‘여백의 의미’, ‘비례의 감각’ 같은 기본기마저 생략해버리는 경향을 보인다. 이 모든 과정은 "기술이 있으니 결과만 있으면 된다"는 착각을 부른다. 하지만 영상 편집 프로그램을 안다고 좋은 영상이 나오지 않듯, 상상력 없이 사용하는 AI는 결국 반복되는 이미지와 영상만을 생산할 뿐이다.


지금 우리는 스스로를 ‘창작자’라 부르기엔 부끄러운 상황에 놓여 있다. 기술은 있으되 목적이 없고, 도구는 있으되 상상이 없다. 그 결과 우리는 점점 표현의 껍데기만 남긴 채, 내면의 발화는 잃어가고 있다. 무엇을 표현할지 상상하지 못한 채 그저 따라 하는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


상상력을 펼칠 도구가 있다고 한들 상상력이 없으면 무엇을 만들 것인가. 당연히 기술의 발전을 따라가는 것은 유의미하지만, 그 발전 속도를 그저 끌려가는 상태로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우리는 결국 자기 생각을 가질 시간조차 갖지 못한다. 그 맹점에서 벗어나야 한다. 진짜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상상이다. 그리고 그 상상은 결코 ‘기술 이후’에 오는 것이 아니다. ‘기술 이전’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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