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이 다시 살아날 때, ‘자신감’이 먼저 움직인다
미술 시장은 본질적으로 신뢰를 기반으로 한 심리 게임이다.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단순한 수요와 공급의 논리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얼마나 이 시장을 믿고 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바로 이 신뢰의 회복을 알리는 신호가 등장할 때, 우리는 이를 카르피다스 효과(The Karpidas Effect)라고 부를 수 있다.
이 효과는 침체된 미술 시장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할 때 가장 먼저 나타나는 현상을 설명한다. 즉, 한두 개의 주요 작품이 예상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낙찰되며, 전체 시장에 “이제 다시 시작된다”는 감각을 불어넣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3년 9월 소더비 경매에서 나타났다. 폴린 카르피다스(Pauline Karpidas)의 런던 컬렉션은 전 품목이 낙찰되는 이른바 ‘화이트 글러브’ 경매로 마무리되었고, 이는 시장이 생각보다 탄탄하다는 첫 번째 신호였다. 바로 이어진 10월 파리 아트 바젤에서의 안정적인 판매는 이 자신감을 더욱 굳혔다.
사실 이 개념은 2008년 금융 위기 이후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당시 소더비, 크리스티, 필립스 등 주요 경매사의 낙찰률은 50% 초반에 그치며 시장은 붕괴 직전까지 내몰렸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피에르 베르제(Pierre Bergé)는 이브 생 로랑과 함께 구축한 자신의 컬렉션을 예정대로 2009년 3월에 경매에 부쳤고, 이는 역사상 가장 비싼 단독 소유 컬렉션 판매 기록을 세우며 반전의 서막이 되었다.
2009년 11월, 같은 맥락에서 폴린 카르피다스는 앤디 워홀의 *200 One Dollar Bills (1962)*를 뉴욕 소더비에 출품했고, 전반적인 시장 분위기가 여전히 침체되어 있었음에도 이 작품은 4,380만 달러에 낙찰되었다. 이처럼 기록적인 낙찰은 단순한 수익 이상의 상징성을 지니며, 시장 참여자들에게 "지금이 기회"라는 신호를 던진다.
카르피다스 효과는 단순히 누군가 작품을 고가에 사들였다는 사건이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다시 믿기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이다. 이 신호가 발생하면 거래량이 증가하고, 경매가는 상승하며, 잠시 잊혔던 예술가들이 재평가되면서 시장은 빠르게 회복의 흐름을 타게 된다.
미술 시장은 경제 지표보다 앞서 심리가 움직이는 시장이다. 그리고 그 심리를 뒤흔드는 결정적인 순간이 바로 ‘카르피다스 효과’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