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뜨린 다음, 다시 긋는 일
지금은 거의 모든 영역에서 경계를 허무는 데 집중하는 시대다. 예술 분야뿐 아니라 대부분의 카테고리 사이 경계가 흐려지고,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크로스오버가 주목받는다. 경계를 허문다는 말은 결국 지금까지 유지해온 형식과 틀을 깨는 일이기에, 새로운 발상과 조합은 자연스럽게 중요해진다.
그런데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모두가 경계를 허무는 데만 집중한다면, 그 다음에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그 질문을 살바도르 달리에게 던져보았다.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당신들은 지금 경계를 허문다고 말한다. 장르의 경계, 현실과 환상의 경계,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 좋다. 나는 평생 그 경계 위에 수염처럼 위태롭게 서 있었으니까.
하지만 모든 경계가 완전히 사라진 세계를 상상해보면, 벽이 없는 미로는 더 이상 미로가 아니다. 문이 없는 문은 통과할 수 있어도, 통과했다는 감각을 남기지 못한다. 경계가 없다는 말은 결국 방향도 없다는 뜻이 된다.
그래서 모든 경계가 사라진 다음, 예술이 해야 할 일은 다시 선을 긋는 일일지도 모른다. 다만 이전과 같은 선은 아닐 것이다. 경찰이나 교과서가 긋는 선이 아니라, 꿈이 긋는 선, 무의식이 긋는 선, 논리가 따라오지 못하는 속도로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선이다.
모든 예술가는 경계를 부수는 혁명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무너진 잔해 위에서 새로운 환각의 질서를 조직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예술가의 몫이다. 경계가 모두 사라진 다음, 예술은 자유를 축하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다시 새로운 집착과 새로운 금기, 새로운 집요한 규칙을 발명한다. 인간 상상력은 아무것도 없는 평원보다, 금지된 표지판 하나 서 있는 사막에서 훨씬 더 멀리 달려가기 때문이다.
그러니 예술은 경계를 허문 다음, 다시 경계를 만든다. 다만 이번에는 이성이 아니라, 광기가 설계한 경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