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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다마이드 (Anandamide)]

한국인들이 음식에 열정적이었던 이유

by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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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TV를 켜면 거의 모든 프로그램이 음식 이야기로 가득하다.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먹는 일에 열정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확실한 건 한국 사회가 유독 음식에 집착하듯 몰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음식은 그 자체로 다채로운 색감, 식감, 풍미를 자랑하며 전 세계적으로도 자부심을 가질 만한 요소가 많지만, 때로는 ‘즐긴다’기보다 ‘얽매여 있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 배경에 ‘아난다마이드(Anandamide)’라는 신경전달물질이 있다. 일명 ‘몸속 마리화나’라고 불리는 이 물질은 인간의 뇌에서 생성되어 불안과 스트레스를 완화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인의 뇌에서는 이 아난다마이드 수치가 평균보다 낮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부족한 아난다마이드를 '음식'이라는 감각적 자극으로 채우려는지도 모른다.


매운 떡볶이, 마라, 곱창처럼 강렬한 맛에 의지해 고된 하루의 스트레스를 잊으려는 행동은 단순한 기호를 넘어서는 감정의 대체물처럼 느껴진다. 불안을 마주한 한국인이 그 감정을 ‘매움’으로 잠시 눌러보려는 모습은 회피가 아니라 일종의 도피, 혹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내려는 시도로 보인다.


하지만 음식이 삶의 중심이 되기는 어렵다. 요리는 인간의 감각을 풍요롭게 해주고, 삶의 한 장면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지만, 매일 반복되는 감정 대체제로 기능할 경우 오히려 그 깊이와 의미가 퇴색된다. ‘먹는다’는 행위는 소중하지만, 삶의 지평을 넓혀주는 진짜 요리의 경험은 생각보다 드물고, 접하기 쉽지 않다.


우리는 어느새 아난다마이드가 주는 위로에 취해 살아온 건 아닐까. 더불어, 지금은 그 아난다마이드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경제적 여건마저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 씁쓸하다. 오마카세의 전성기가 저물고, 일상 속 자극적인 음식이 위로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위안은 되지만, 그것이 궁극적 해답이 되지는 못한다.


통증이 쾌락이 되고, 매움이 안정이 되는 시대. 언젠가 이탈리아처럼 재료 본연의 맛을 음미하고, 그것이 곧 건강으로 이어지는 문화가 우리 사회에도 자연스럽게 자리 잡게 될까. 지금의 이 매운 시대를 지나, 그 너머의 풍미를 마주하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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