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문화와 댄스 클럽의 소소한 스토리들
여러분 이태원을 아시나요? 이태원은 참 재미있는 동네입니다. 뭐 요즘에야 모두 쉽게들 놀러오는 그런 곳이지만 옛날에는 길에서 형님들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야, 이거 안 사? 한번만 입어봐, 응?"
"됐어요. 필요없어요."
"야 일루와봐. 형이 싸게 줄께."
이런 훈훈한 에피소드 -보자마자 호형호제하고, 싸게 해준다고 겁박;;하고- 가 예사로 일어나고, 밤에는 덩치 큰 군인들과 무서운 형님 누나들 때문에 오기 꺼려지는 곳이었죠. 그래서 괜한 느낌 때문에 이태원 역 근처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요. 은근히 등잔 밑이 어둡다고 이태원 소방서 골목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이걸 뭐라 표현해야 하나, 힙하다고 해야 하나. 장담하건데 대한민국에서 가장 힙한 초등학교가 하나 있습니다.
이름하야 보광 초등학교.
정문 앞에 할랄 음식점이 있는 초등학교였던 것입니다. 할랄 음식점이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학교 앞 분식집 느낌으로 존재한다는 것에서 한번, 흔히 볼 수 있는 케밥이 아닌 피자와 버거를 파는 곳이라는 것에서 두번 놀랐어요. 혹시 할랄 피자와 할랄 버거 드셔보신 분?
그 어떤 대한민국의 국제학교도 보광 초등학교보다 힙하진 못할 것 같은 그런 느낌입니다. 저 간판의 컬러를 좀 보세요. 이 학교를 졸업하면 다른 또래들보다 조숙할 것 같은 느낌은 보너스..
클럽을 만드는 프로젝트라고 해놓고선 시작부터 할랄 음식점 얘기만 늘어놨는데, 뭐 할랄 음식점이 없는 초등학교를 나와서 자격지심 때문에 그런건 아니고요. 이 동네의 기묘한 불균형(사실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굉장히 밸런스한)에 대해 먼저 이야기 하고 싶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에게는 일상이지만 멀리서 온 사람들에겐 기묘하고 낯선 광경이 꽤 많거든요. 타지역에선 쉽게 볼 수 없는 이 동네만의 정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뒤에 가서 이야기하겠지만, 과하게 세련되지 못하고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앞서가는 언밸런스함. 이 동네가 가지고 있는 기묘한 느낌을 우리의 프로젝트에도 담아 보고자 했어요. 지역이라고 하면 안됩니다. 반드시 동네라고 해야 합니다.
자, 이번 프로젝트는 이젠 너무나 유명해진 이태원의 클럽 FAUST 입니다.
우리는 새롭게 옮겨갈 곳의 설계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저 웃음이 처음이자 마지막 웃음이었다카더라
이 땐 날씨가 추웠네요. 그땐 그랬지. 이 글을 다시 올리고 있는 이 시점엔 다시 또 추워지고 있군요 슬슬.
아니 빈손으로 오시지 뭐 이런걸 다
몸에 좋은 거 쳐먹고 야근이나 해서 빨리 만들어달라는 거겠죠
기존 파우스트의 위치 되겠습니다. 사람들이 후커힐이라 부르는 곳에 위치해 있어요. 1층에는 한국야쿠르트가 있고, 2층에는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게 마카오 트랜스젠더 바가 있고요. 3층이 파우스트 입니다. 잘 보이지 않지만 지하엔 트렁크라는 게이 클럽이 있어요. 주차금지와 한국야쿠르트와 마카오 트렌스젠더 바와 클럽 파우스트의 조합이 참 오묘하네요. 그 아까 보았던 초등학교와 할랄의 조합같은 느낌 아시겠죠? 낮에 보면 너무나도 평온하고 조용한 동네이고요.
사진으로 볼 수 있듯 밤에는 밤 나름의 정취가 있습니다. 20년 이상은 발효된 것 같은 느낌의 붉은색, 녹색들의 네온과 빛들이 분위기를 만들어주죠. 아까 앞에서 이야기 했던 할랄 초등학교;; 에서 불과 150~200미터 떨어진 거리에요. 본격적으로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앞서서, 이 동네가 가지고 있는 느낌을 살펴 보았습니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던 언밸런스한 밸런스함이 마음에 들었어요. 사실 우리는 이 동네의 오랜 주민이기도 하고요.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이야깃거리가 참 많은 동네지만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먼저 이태원이라는 동네가 가지고 있는 정서와 분위기를 알아보았으니 잠시 넣어두고요. 이제 클럽에 대해서 탐구해 볼 차례입니다.
클럽에 간다, 라고 했을 때 사람마다 상상하는 클럽에 대한 이미지가 다를 거라고 생각해요. 바다 건너 온 문화이고 다들 다른 경험을 가지고 있을테니, 사람마다 떠오르는 생각도 다르겠죠. 그런데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심상이 굉장히 극단적으로 나누어진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부정적 - 긍정적'. 이러한 지점이 이번 프로젝트를 더욱 재미있게 만들어 주는 요소가 아닐까 싶었어요.
Nightlife라는 단어를 우리 나라에서는 흔히 ‘밤문화’라는 단어로 표현하고요. 물론 사전에도 그렇게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만, 이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Daylife가 반대편에 있듯, Nightlife라는 것은 또 하나의 삶 혹은 삶의 다른 한 면 같은 뉘앙스가 느껴지는데 반해, 밤문화, 라고 하면 인스턴트적이고 의미없고 그저 향락 집착적인 무언가로만 느껴지거든요. 이러한 생각이 드는 것이 비단 저 뿐은 아닐거에요. 밤문화라니.. 그럼 낮문화는 뭔가 싶기도 하고.
네, 저 뿐만이 아니었던 것 같군요. 밤문화 꺼져
Nightlife라는 단어가 참 로맨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상의 삶이 있고, 또 다른 삶이 있는 것 같은 의미잖아요. 그리고 음악을 매개로 하는 이 체험과 액티비티가 정신적 활동을 하는데에도 영감을 준다고 믿거든요. 그 활동이 어떠한 장르의 예술이 될 수도 있고, 사회적 관계 형성이 될 수도 있겠고요. 나아가 일상 생활에도 영감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운영자, 혹은 클럽을 만들어가는 사람 입장에서 얘기하자면, Nightlife를 그저 술이나 마시고 젊음을 탕진해 버리는 시각으로 접근해선 좋은 클럽이 나올 수 없겠죠. 이미 그런 관점에서 만들어진 너무 많은 클럽들을 우리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뭐 젊음 그까이꺼 좀 낭비하면 어때요.
박완서 선생님께선 이런 글도 쓰셨는걸요.
미덕이라고 하십니다.
자, 그러니 우리는 Nightlife를 삶에 굉장히 긍정적인 어떤 에너지를 주는 무엇으로 정리하자구요.
땅땅땅.
중요한 것은 Nightlife라는 광활한 세상 안에서 무엇을 다루느냐는 것인데요. 조금 더 깊게 들어가보면, Faust가 추구하는 음악은 테크노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Faust를 운영하는 뮤지션이자 DJ인 Marcus는 베를린의 테크노 클럽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었고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자 음악하면 EDM을 떠올리겠지만 같은 전자 음악 계열임에도 둘은 정반대로 다른 세계라고 할 수 있어요. 과하게 상업화 된 형태의 전자음악인 EDM과 다르게, 언더그라운드 문화에 가깝고요. 베를린을 기반으로 발전해온 테크노는 장벽이 무너지면서 동독과 서독 젊은이들의 화합에 기여했고, 동시에 권력에 대한 저항 정신과 함께 성장해 온 음악이에요. 무단점거로 대표되는 반항과 젊음의 상징이기도 했죠. 지금은 그를 훨씬 뛰어넘어 온 세계에서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기도 하고, 또 젊음의 상징으로 화합에 기여하기도 하고 있고요.
네, 굉장하네요. 테크노가 끼친 영향은 엄청납니다. 그러니 어느 나라를 가건 규모는 다르겠지만 테크노 클럽을 볼 수 있는 것이겠죠. 동시에 언더그라운드에 활성화 된 테크노씬이 어디건 자리잡고 있고요.
하지만 거대한 규모의 상업적인 EDM 시장에 비하면 특히 아시아에서 테크노 시장은 매우 작고 또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자극적인 멜로디라인과 드랍으로 가득한 EDM에 비해 미니멀한 경향도 있고, 처음 듣는 사람들에겐 어렵고 지루하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거든요.
테크노는 이게 문제야. 약간 지루해.
EDM의 의미가 Electronic Dance Music이니까, 테크노도 그에 속하는 거 아니냐고 할 수 있습니다. 1990년대의 Progressive House가 굉장히 진보적이었지만 2010년대의 Progressive House가 이제 더는 진보적이지 않게 되었고, 그러면서 장르가 가진 함의가 변해버린 것처럼 EDM 또한 보다 상업적인 요소를 가지고 상업적 의도를 추구하는 빅 룸 댄스 전자음악을 뜻하는 고유명사로 보는 것이 좋겠죠.
이처럼 EDM과 테크노는 추구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클럽의 무드 역시도 완전히 다릅니다.
어디에서 어떤 음악이 나오는지, 어디가 EDM 클럽이고 어디가 테크노 클럽인지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느낌이네요. 대체로 테크노 클럽이라고 하면, 버려진 공간 혹은 텅 빈 창고 같은 곳에 스피커만 가져다놓은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데요. 그러한 이미지는 한국에서도 언더그라운드 클럽을 상징하는 어떤 룩앤필이 되었죠.
베를린에서 오랫동안 많은 클럽은 불법이었습니다. 언제든 도망가서 다른 공간을 찾아야 했기 때문에, 그간 디자인 개념이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음악과 그곳을 찾는 사람들만이 클럽을 대표하는 강력한 아이덴티티가 되었고, 버려진 공간의 이미지들은 시간이 지난 후 우리에게 ‘언더그라운드 클럽’ 하면 떠오르는 일종의 상징이 된 것이에요.
Dixon이 클럽의 본질에 대해 말해주고 있네요.
"그 때 그곳의 사람들은 다 이상한 사람들이었어요. 나는 그 특별함에 끌렸어요. 아마 음악 때문이었을 거에요. 나는 그곳의 사람들과 그곳의 상황들에 끌렸고, 오직 나만 이 곳에 대해 알고 있다는 느낌이었죠. 그게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줬고, 그곳의 일부가 되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는 세계 최고의 DJ가 됩니다.
지금까지 이태원이라는 동네가 가진 분위기에 대해 잠깐 얘기했고, 살짝 나아가서 테크노라는 음악에 대해 간략하게 스터디 해 보았습니다. 테크노에 대해 스터디하는 것은 아주 중요했는데, 클럽이 가지는 의미와 테크노가 발전해온 방향을 잘 이해해야만 좋은 공간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 어떤 음악을 어떻게 들려줄 것이냐에 따라 클럽의 방향이 정해지는 것이고, 또 어떤 사람들과 교류하고자 하는지가 드러나기 때문에, 이러한 과정은 정말 중요했습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하고 연구한 모든 과정은 결국 다음 단계를 위한 것이죠. 이태원에서 테크노를 하는데, 그 다음 단계엔 뭐 어쩔건데에 대한 대답이 필요합니다.
기존의 Faust를 살펴보면.
매우 조악하지만, 언더그라운드스럽고, 또 언제든 사운드 시스템을 해체하고 도망갈 수 있을 것 같고요. 동네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법하고, 테크노 클럽에 사실상 충실한 느낌이었습니다. 다만 새로운 공간은 면적이 두 배가 넘기 때문에, 정말 큰 도전을 해야 하는 셈이었거든요.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그 자리에만 머물러 있으면 곤란합니다. 언더그라운드씬, 소위 말하는 비주류씬을 키워나가기 위해선 항상 도전이 필요한 법입니다.
파우스트 달력이 참 예쁘다고 예의상 한 마디 했을 뿐인데,
야이 ㅁ닝;ㅣ암ㄴ;ㅣ라;ㅣ날;ㄴ미라;ㅁ니ㅏ;ㅁ니ㅏㅇ;ㅁㄴㅇ
그들이 추구하는 음악의 시장, 즉 수요를 키우기 위해 클라이언트는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클라이언트는 시장이 커져야 다른 클럽들과 함께 잘 될수 있다는 이야기를 강조했습니다. 위에서도 잠시 이야기했지만 두 배가 넘는 규모의 공간에 새로운 도전 없이 기존의 것을 그대로 갖다 옮겨놓아선 안된다고 생각했고요. 언더그라운드라는 단어가 조악함 또는 어설픔과 같은 의미가 되어선 안 된다는 공감대도 있었습니다.
물론 Faust가 불법 파티를 하지는 않았습니다만,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은 이런 과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미친 짓을 시작했다가 제대로 해 나가는 과정이랄까. 클라이언트 뿐 아니라 우리도 그런 과정을 겪고 있고요. 누구나 살다보면 한번 정도는 겪는 과정일 수도 있을 거에요. 특히나 새롭게 무언가를 개척한다는 것은 분야와 배경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든 쉬운 일은 아니겠지요. 인생의 좋은 경험이다 생각하고 열심히 해야지, 방법이 없어요.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한 핵심 가치는 클러빙에 대한 경험이었습니다. 쉽게 얘기해서 클러버가 행복해야 하고, 음악을 제공하는 DJ가 행복해야 한다는 것이죠. 클러빙의 바이브라고 하는 것은 클러버와 DJ의 상호 작용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둘 다 높은 수준으로 배려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먼저,
특히나 테크노 음악을 추구하는 클럽은 사운드 시스템이 좋아야만 했어요. 왜냐면 타 장르에 비해서 사운드에 섬세한 요소가 굉장히 많고, 또 트랙의 흐름이 상업적인 장르에 비해서 미니멀한 경향이 있기 때문에, 사운드의 질이 떨어지면 클러빙 경험 수준이 매우 낮아지게 되거든요.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오래 공간 속에 머물 수가 없습니다. DJ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로 굉장히 중요해요. 플레잉을 하는데 의도한 사운드가 전달이 잘 안된다면 굉장히 좌절스럽겠지요.
그래서,
다른 클럽과는 접근 방법 자체를 달리 했습니다. 먼저 가용할 수 있는 자원 범위 내에서 이상적인 음향 시스템 구조를 설계하고, 그 지점을 출발점으로 삼았어요. 독일의 Kirsch Audio와 협업해서 진행을 했고요. 즉, 가장 이상적인 구조로 음향 설계를 한 상태에서 그에 맞추어 평면 계획을 잡고 음향에 최적화 된 방향으로 디자인을 진행해 나갔습니다. 평면 계획이 나온 후에, 혹은 디자인이 다 끝난 후에, 스피커를 배치하는 식과는 반대로 사운드에 모든 촛점을 맞추었어요. Kirsch Audio와 피드백을 주고 받으며 기본적으로 초기의 음향 설계에서 어긋나지 않는 형태로 설계가 이루어졌고요.
쉽게 이야기해서 가장 기본이 되는 공간 평면 계획조차 음향 구조를 바탕으로 진행되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독일의 음향 설계팀과 피드백을 주고 받으며 많은 점을 배울 수 있었어요. 공간의 시작과 끝은 모두 사운드를 위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클럽을 감싸는 주 벽체는 두께가 600mm 로 흡음재가 가득차게 될 예정입니다. 많은 면적을 소모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상업 공간의 클라이언트라면 팔짝 뛸 수도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음악하는 사람들의 음향에 대한 욕심은 알아줘야죠. “이 면적이면 접객용 테이블 몇개를 더 만들 수 있는데 블라블라”로 시작하는 컴플레인도 받을 수 있는 상황입니다.
흡음 효과를 위해 직접 패턴을 디자인하고 가공을 통해 만든 패널이에요. 물론 기성 제품으로 판매되는 성능 좋은 제품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독일에서 요구하는 투과 면적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제품들이 대부분이었고, 또 미적으로 아름답지 못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발크로맷을 이용해 직접 만들었습니다. 음파를 튕겨내는 소재는 최대한 지양했고, 공간의 대부분이 발크로맷으로 마감이 되는 식이죠.
내부는 이렇게 벽마다 흡음재가 가득가득하고요. 이태원 한 가운데 위치한 클럽이라는 공간의 특성상 차음보다 흡음에 주력했습니다. 클럽 스테이지의 지상 면적은 약 40평대인데, 사용된 흡읍재의 단면적은 약 1300 제곱미터 정도니까. 두꺼운 벽체에 어마어마하게 채워넣은 것이죠. 작업하시는 분들이 뭘 이렇게까지 합니까, 라고 할 정도로요.
벽면 상부의 구조, 천장 한가운데를 10미터 길이로 지나는 스피커의 양쪽 구조도 흡음 기능을 하고 있어요. 기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벽과 같은 패턴 및 마감을 이용해서 디자인의 포인트가 유지되도록 했습니다. 특히 천장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스피커는 Kirsch Audio 제품 라인에도 없는, 파우스트를 위한 제품이에요. 킥 우퍼 개념으로, 스피커 라인 밑에 있으면 가슴을 때리는 주파수를 발생시킵니다. 각 벽면 상부의 구조물을 통해 효과적으로 각종 시스템을 숨길 수 있었고, 코너부분에서 고질적으로 발생하는 저음역대의 부밍 현상을 컨트롤 할 수 있었습니다. 모서리 마감에 만들어진 각도들을 유심히 보세요.
발크로맷을 이용한 패턴과 패널의 각도 변화만으로도 정돈된 선의 흐름과 기하학적 질서를 주고자 했어요. 동시에 이 패턴은 클럽의 그래픽디자인 아이덴티티에도 활용되고요, 변화하는 조명연출에 어우러져 다이나믹한 느낌을 더해줍니다.
현장 상황이 좋지 않아 천장 높이가 앞에서 뒤로 갈 수록 150mm 이상 차이나는데,
요런 패턴을 이용한 착시 원리를 활용해서 핸디캡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발크로맷은 포르투갈의 발보팡 사에서 개발한 친환경 보드의 일종인데요, 포름 알데히드 방출량은 0.1ppm 미만으로 유럽과 미국 표준에 따르면 무독성으로 분류되고요. 그래서 사람이 많이 붐비게 될 클럽에도 사용하기 좋을 것이라고 판단했어요. 네, 친환경 클럽 Faust라고 불러주셔도 좋습니다. 심지어 일회용 컵도 사용하지 않아요.
좋은 건 좋은 것이니까요. 게다가 일반 MDF보다 강도가 30% 정도 좋고, 가공성이 우수하고 습기와 열에도 우수합니다. 유지나 보수도 쉽다고 하고요. 쓰고 보니 정말 좋은 자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번 프로젝트에 발크로맷을 소개해 주신 아워홈 정보람 과장님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 드립니다.
위의 사진은 송승용 작가의 작품인데, 발크로맷을 원하는 두께와 형태로 레이저 가공해서 저런 식으로도 만들 수 있습니다. 다음에도 기회를 봐서 적극적으로 사용해 보고 싶은 자재이긴 합니다만
제가 기회를 보겠습니다. 기회를 봐서 기회가 되면 사용을 하는데
글쎄요. 그 기회가...
Kirsch Audio의 개발자와 엔지니어에요. 마스크를 머리에 썼는데도 자연스러운 것은 탈모인이어서 그런 건가요? 테스트 후 사운드 튜닝을 하러 바다 건너 멀리 날아왔습니다. 완성된 공간의 흡음 성능과 공간의 컨디션에 대해 굉장히 만족해했습니다.
물론 항상 순조로운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어요.
장담컨대 한국의 클럽 중에 가장 퀄리티 좋은 사운드를 체감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절대로 우리가 잘났거나 뭘 특출나게 잘해서 그런건 아니고.. 공간 음향 설계 개념으로 접근을 한 클럽이 여태껏 없었으니까요. 출발선상이 다르니 더 나은 사운드가 안 나오면 그것도 이상하긴 합니다.
뒤에서 봐도 탈모인은 탈모인
클럽 내부에서 존재감을 크게 보여주는 DJ 부스인데요. 공연자가 사용하는 공간인만큼 기능적인 요구사항이 가장 많고 또 섬세하게 만들어져야 하는 부분이 되겠죠. 전체적으로 컬러는 극도로 절제했지만 그린과 레드의 아이덴티티는 톤 다운 되어 여전히 요소로 자리해요.
흔히 많이 하는 실수인데 DJ Booth를 저렇게 닫힌 형태의 구조물로 잘못 만들게 되면, DJ가 서는 쪽에도 저역대의 서브 우퍼가 굉장히 강하기 때문에, 부스 구조물 자체가 울림통처럼 작동하게 됩니다.
둥둥둥둥 울리는거죠. 막. 2차 진동을 유발하게 되고요. 심한 경우 진동이 생겨 바이닐로 플레이 하는 경우 판이 튀어 음악이 끊기게 되고, 심하지 않은 경우라 할지라도 진동과 떨림의 전달로 인해 노이즈나 불쾌함을 유발하게 됩니다.
가급적 닫힌 통의 형태가 되지 않도록 연구를 해 봅니다.
개념적인 아이디어에요.ㄷ 형태의 구조를 만드는데, 마치 건물을 짓듯 음파를 튕겨내는 단단한 구조체로 만들어 주고요. 각자의 음향 장비를 서포트하는 열린 형태의 지지체를 ㄷ자 안쪽에 별도의 구조로 세우는 형태입니다. 실제로 독일이나 네덜란드의 잘 설계된 클럽을 벤치마킹 했을 때, 이러한 개념을 이미 활용하고 있었어요. 그럼 그렇지, 세상엔 똑똑하신 분들이 많으니까.
거푸집을 짜고, 콘크리트를 타설해 ㄷ자 구조물을 만들고요. 내부에 구조체를 만듭니다. 민감한 장비인 턴테이블과 믹서만을 위한 빔 구조물을 만들고, 다른 장비를 위한 구조는 다시 따로 만들었어요. 그리고 구조를 구성하는 소재에는 구멍을 숭숭 뚫어서 음파가 지나갈 수 있도록 합니다. 저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을 정도로.
굳이 DJ 부스 외피 구조를 콘크리트로 결정한 이유를 하나만 더 이야기하자면, 전체적인 마감을 정제된 블랙에 가까운 톤으로 의도했기 때문에, 원래 그 자리에 존재했던 것 같은 Raw한 구조물이 떠억하니 자리하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굉장히 어두운 곳에서 음악만이 들리고, 음악이 플레이 되는 곳이 중심이 되는 그런 느낌? 잘 정돈된 곳의 한 가운데에 덩어리 하나가 고스런히 놓여있는 거죠. 유물이나 Wonder 같은 느낌입니다.
둘 다 하늘이 파래서 좀 거슬리긴 하는데 고대의 유물 같은 그런 신성한 느낌 있잖아요. DJ가 있는 곳이 신성했으면 좋겠고 굳이 설명하자면 그런 느낌인데.
God is a DJ 같은 유명한 밈도 있고, 파티에서 DJ가 가지는 절대적인 의미가 있으니까요. 빈티지 도장 마감처럼 인위적으로 덧칠한 느낌이 아니라, 러프한 질감의 유물 같은 것이 잘 마감된 발크로맷 패턴 벽체와 대조될 수 있다면 재밌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거푸집을 제거하는 짧은 타임랩스였습니다. 이대표님 화이팅.
DJ 부스의 완성입니다. 군더더기 없는 느낌.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네요.
완성된 최종 하부 구조는 공개할 수 없지만, 기본적으로 모두 열린 구조이며 각 장비들이 각각 다른 구조 위에 지지되고 있어요.
비포 컷을 넣은 것은 자랑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그만..
바이닐을 플레이하는 DJ들을 위해 12인치 바이닐 수납 박스도 만들어 주고요. 최근에야 다들 USB를 사용하는 경향이 많지만 여전히 바이닐을 고집하는 아티스트가 있고, 바이닐 특성상 무게와 부피를 많이 차지하기 때문에 수납 박스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편해져요.
그리고
#잘_만들어진_DJ부스에서_플레이하면_기분이_조크든요
기분이 굉장히 좋았나봅니다. 손이 보이지도 않는 디제잉 스킬.
여기까지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클럽 스테이지 내부에는 술을 판매하는 바가 없습니다. 바는 매출을 올리는 시설이기 때문에, 스테이지 내에 바를 위치시키지 않는다는 것은 모험이었지요. 바 사이즈를 변경하거나, 접근성만 달라지게 해도 매출이 달라지거든요.
클러버 입장에선 놀다가 술을 한잔 먹어야겠는데, 거리도 멀고, 지금 음악도 좋은데, 에이 귀찮다, 그냥 놀자, 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 매출발생실패!
이런저런 갑론을박이 있었지만 초심으로 돌아가서, 클럽 내부에서는 클러빙에 대한 경험만을 극대화하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바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사건이 스테이지의 좋은 바이브를 깰 수도 있고요, 반대로 바에서는 이야기에 집중하면서 술을 마시고 싶을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바를 어떻게 해야 하나, 어디 두어야 하나 많은 논의가 오간 끝에.. 댄스플로어 안에서는 오직 클러빙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고심끝에 결정했습니다. 물론 그 결정에 대한 의구심이나 불안감이 없지만은 않았으나
탄! 츠! 바! (반드시 위의 만화에 나오는 톤으로 읽어야 합니다)
Tanz Bar.
영어로는 Dance Bar라는 뜻입니다.
아까 말했듯, 우리는 모든 평면 계획을 음향 설계에 기초했다고 했었어요. 음향 시스템이 가진 스펙을 기준으로 클럽 스테이지 경계를 정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남는 공간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꽤 큰 면적이요.
상상해 보았습니다. 이름 그대로 Tanz Bar.
어떤 사람들은 술을 앞에 두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느린 템포의 음악에 춤을 추고요. 샴페인도 한잔 할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지만, 동시에 편하게 널부러져 쉴 수도 있고, 파티 시작 전에 워밍업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파티가 끝난 후에 애프터 파티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곳.
이렇게 말하면 클래식하면서 모던한.. 같은 헛소리 같지만,
.....
아 네. 존재할 수도 있겠네요. 처음에 이야기했던 언밸러스함을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관건이었어요.
클럽 스테이지에선 오직 사운드와 클러빙 경험만을 위해 컬러를 자제했으니까, 컬러를 보다 적극적으로 믹스하고 소재 역시 보다 다양하게 사용하는 방향으로. 대신 Faust가 가지고 있던 키치하고 언더그라운드한 느낌을 유지할 수 있도록. 이도 저도 아닌 온화한 느낌보다는 두 아이덴티티 컬러가 강하게 부딪히길 바랬고요. 동시에 성격이 다른 소재들이 부딪히면서 만들어 내는 묘한 이질감이, 이 공간에 대해 오히려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줄 수 있을 것으로 봤어요.
캐주얼하고 없어보이는 형태의 타일에, 있어보이는 테라조를 더해 이질감을 주고, 결이 있는 합판도 그대로 사용하고 흔히 볼 수 있는 몰딩도 백골 형태로 사용하고, 또 비틀었어요.
돈이 없어서 바닥은 싸게싸게했다카더라
패기 무엇
탄!츠!바!는 시간이 지난 후 사람들이 완성해 줄 여지가 넓다고 믿었습니다. Faust의 두 대표에게도 역시 처음 시도해보는 도전인 셈인데, 재밌을 것 같아요 두고보면.
흔히 공간을 만들 때 아무것도 안 하고 그대로 그냥 두면,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줄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진 않습니다. 왜냐면 빈 공간, 뭔가를 다 노출시킨다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은 공간 역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선입견 같은게 있어요. 건물 자체가 가지고 있는 톤이나 형태가 해석의 여지를 막아버리는 경우도 있겠죠. 그리고 같은 느낌의 클럽들이 많아지는 것 또한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주기 위해 적극적으로 언밸러스한 믹스앤매치를 시도합니다. 미스매치(Mismatch)라고 정의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이 정도라면. 이태원이라면.
그리고 이동 가능한 제 2의 DJ 부스를 하나 더 만들었습니다. Tanz Bar에선 클럽 스테이지와는 다른 음악이 나오는데, 칠아웃존 같은 느낌이지요. 음악 역시 다운 템포의 칠아웃한 하우스 계통이 주로 플레이 됩니다. 오픈하고 요 몇 주는 그랬던 것 같은데 앞으로는 안알랴쥼. 적당히 대화를 나눌 수도 있고, 동시에 춤추고 놀 수 있는 정도에요. 굉장히 다능하고 개성 강한 공간입니다.
클러빙을 제대로 하다보면 많은 체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편하게 널부러져 쉴 수 있는 것은 중요합니다만,
분명 음악은 칠아웃인데 ㅜㅜ
칠칠맞게 놀다가 아웃되는 느낌
실제론 꽤 어두워서 이 정도의 조도;; 같은 느낌입니다.
물론 클럽 스테이지에 비하면 매우 밝고요.
메탈러스를 밴딩하느라 힘들었습니다. 휴. 다들 안된다, 못한다 그래서. 굉장히 러프한 소재이지만 유려한 곡선 형태로 가공해서 언밸러스한 일관성을 만들고자 했어요. 별 것 아닌 요소 같지만 길이도 길고 볼륨감이 있어서 중요한 포인트가 되는 부분입니다. 지금은 형광등이 새 것이라 7.8% 정도 아쉽지만 시간이 지나면 멋이 더해질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기존 Faust 고유의 컬러 아이덴티티가 Tanz Bar 내부에서도 유지되고 또 확장 됩니다. 이미 음악에 있어서 좋은 컨텐츠를 가지고 있던 공간이었기 때문에, 기존의 아이덴티티 또한 중요했어요. 사실 Bar를 분리할 수 있었던 것도, 음악 컨텐츠에 대한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어요. 기본적으로 음악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편이고요. 그리고 다른 클럽에 비해서 술 가격이 매우 저렴하거든요.
다들 입장료를 지불하고, 또한 술이 저렴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오래 머물게 돼요. 반대로, 누구나 쉽게 무료로 들어올 수 있고, 술이 비싼 경우엔 부작용이 생기게 되는데, 사람들이 밖에 나가서 편의점 같은 곳에서 술을 마시고 들락날락 한다는 것이에요.
#리빙포인트
이렇게 해서 탄!츠!바!도 함께 완성됩니다. 공간이 알려지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면서 재밌게 진화할 것 같은 느낌이에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클라이언트가 가진 고민을 함께 했습니다. 언더그라운드에 대한 애착이 있고, 음악의 힘을 믿는 클라이언트에게 영감을 받기도 했고요. 우리도 좀 더 다양한, 오래가는, 언더그라운드 클럽들을 가질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거창한 철학까진 아니더라도 믿음과 열정을 가지고 다양한 장르의 클럽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많은 사람들의 삶이 더 풍성해 지겠지요. 언더그라운드 문화는 문화의 뿌리 같은 것이니까요.
테크노가 독일에서 동서화합을 이끌어 냈듯, 한국에서도 더 큰 화합을 이끌어 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들의 친구 파우스트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밤문화가 아닌, Nightlife를 바라보는 관점은 이런 것이 아닐까요?
오늘은 Faust에서 공연을 펼친 아티스트의 멋진 음악으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애시드한 면도 있고, 드라이빙한 부분도 있고요. 굉장히 동시대적인 느낌의 테크노 셋이랄까. 베를린의 악명높은 베앜하인에서 레지던트로 플레이하는 Fiedel 입니다. :)
https://soundcloud.com/ostgutton-official/berghain-08-fiedel
그리고, 파우스트 메이킹 과정에서의 숏 다큐멘터리를 짧게 보여드리고요.
아래에선 완성된 공간 사진을 보실 수 있어요.
공간을 완성할 때는 예상치 못했지만 전세계의 많은 잡지와 언더그라운드씬에서 관심을 가져주고 feature 해 주어서 뿌듯함이 느껴지는 프로젝트였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pTdjv6vHM8
- Project Management : 김형진 / ARTEFACT
- Spatial Designer : 강예경 / ARTEFACT
- 잘 찍은 사진 : 여인우
- 대충 찍었는데 화질 좋은 사진 : 김형진
- 대충 찍었는데 화질 별로인 사진 : 강예경
- 거푸집 제거 타임 랩스 영상 촬영 : 이의재
- 천년초 : 이의재
- 작업 기간 동안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주류 협찬 : 이명하
- 축 오픈 화환 : 다미
- 발크로맷 소개 : 정보람
- 달력 : 이의재
- 음향 설계 : Kirsch Audio
- 인용한 다큐멘터리 필름 : Real Scenes - Berlin
프로젝트 문의 : contact@artefact.co.kr
인스타그램 : @artefact.kr
웹사이트 : http://artefac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