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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혁란 Dec 07. 2023

'티티우라는 이름을 지어주며
스너프킨이 하는 말

무민 골짜기의 여행자 스너프킨, 가을에는 남쪽으로 떠나지

초록색 헐렁한 고깔모자를 썼다. 큰새 깃털 하나를 펜촉처럼 꽂아 나름 방점을 찍었다. 햇살밀도에 따라 노랗거나 빨갛거나 까맣게도 보이는 더벅더벅 머리카락. 보는 이 마음에 따라 다르게 보일 초록눈동자, 계절에 따라 두꺼워졌다 얇아지는 목도리. 초록색 외투를(깊고 넓은 주머니가 달린) 걸치고, 진갈색 바지는 복숭아뼈쯤에서 멈춘 칠 부 정도의 길이, 발엔 징이 박힌 앵클부츠랄까 워커를 신었다. 전체적으로 나무가 가진 초록의 그러데이션으로만 차려입은 입성이다. 아이처럼 보여도 소년은 아니다. 그는 종종 파이프담배를 말아 피우는 청년이다. 


스너프킨은 변함없이 저러한 착장으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거나 풀밭에 누워 무민 골짜기의 바람과 햇살을 맞고 있다. 노래가 떠오르면 다리 난간에 걸터앉아 하모니카를 불거나. 그의 집은 무민 골짜기 강가의 천막이다. 오로지 혼자 조용히 살고 있다. 애정을 품었다 할까, 교류한다고 할까, 유의미한 관계를 맺은 존재는 무민 트롤 정도지만 마음이 황무지는 아니다. 무민 세계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스너프킨의 MBTI는 INTP일 거라고 소곤소곤 거린다. 희귀 유형, 사색가, 평범하지 않은 개인주의자, 변화에 강하고 호기심이 많은 사람. 편한 옷을 좋아하고 자유로운 영혼, 낯가림이 심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 말없는 아웃사이더.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무민’을 알고 좋아해 마지않던 시절, 몇 년 전까지 나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아이들이 툭툭 가져다준 무민 열쇠고리를 달고, 무민 쿠션을 베고, 무민 그립 톡을 휴대폰에 끼우고 돌아다니면서도 무민 골짜기 무민 가족과 친구들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하마인가? 흰 강아지인가? 했을 뿐. 풍문으로 무민 파파가 소설가고 무민 마마가 후덕한 좋은 엄마라는 이야기를 흘깃 들었을 뿐, 먼먼 핀란드나 스웨덴 숲속에 사는 동물모양 사람 같은 존재들의 동화 같은 세계에 마음을 주기엔 내가 사는 날들이 강퍅하고 살벌했다. 시큰둥하던 중에 어느 날 우연히 무민 소설시리즈 작가 토베 얀손이 나온 사진과 기사를 보게 되었다. 아무튼 무민이 유행이었으니까.  


하늘색 격자무늬 창을 뒤로 둔 판자로 메꾼 집 벽을 두고, 두 여자가 앉아 있다. 맨 앞은 초록색 관목에 핀 붉은 색 꽃송이 두어 개, 작업대는 대패질이나 못질이라고는 스쳐간 적도 없을 것 같은 나무 판때기를 이은 긴 널빤지. 거기에 두 여자가 각자의 손작업에 몰두해 있다. 노란 색 작은 꽃들이 꽂힌 화병은, 물이 숭숭 배어나올 것 같은 나무그루터기다. 캡션은 ‘글로브하룬 섬에서 무민 피겨를 만들고 있는 토베와 툴리키’라고 달려있었다. 중년의 두 여자는 연인 사이란다. 애인이나 커플이라기엔 참으로 무성적인 느낌을 주는 두 여자가 조물조물 나무와 흙으로 회칠로 작업하고 있는 집의 풍경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평화롭고 조화로워 보였다. 

남녀가 아닌 여여 커플이어서 그런가. 수직, 상하, 종적인 기운이 하나 없이 모든 게 나란히, 나란히 옆에 있어서 보기에도 왠지 좀 더 마음이 흡족했다.  

"이 곳에서는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내일 일 따위는 걱정하지 않아요. 가끔씩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일이 일어나곤 했지만 아무도 마음에 두지 않았어요. 이거야말로 정말 즐거운 일 아니겠어요?"-<즐거운 무민 가족>중에서.


관심이 조금씩 생겨서 무민이 귀여워질 무렵 트롤이 뭔가 찾아보기도 했다. 주춤주춤 토베 얀손 무민의 세계로 들어서려는 어느 날, 또다시 우연히 저 초록색 의상으로 뒤발한 스너프킨 얼굴을 보게 됐다. 누군가 ‘트위터’에 올려놓은 그림 두 장과 거기에 쓰인 문장이었다.   

첫 번째 사진: “너, 너무 지나치게 누군가를 숭배하는 것은.”

두 번째 사진: “자신의 자유를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야.”


별 말도 아닌데, 누구나 하는 소린데 이 나이에 무슨, 그랬는데 두근두근 희한하게 마음이 끌렸다. 저 말을 하고 있는 스너프킨이 어떤 맥락에서, 무슨 상황에서,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못 견디게 궁금해졌다. 출처가 어딘지 백방으로 찾기 시작했다. 스너프킨 표정은 왜 저렇게 진지해 보이지? 화난 것 같기도, 어이없는 것 같은데 왜 저런 ‘어르신’같은 말을 하지? 저 말을 듣고 있을 앞에 있는 사람은 누구지? 이상한 집중이 시작됐다. 저 대목이 나오는 부분의 전체를 꼭 알아야만 할 것 같은 기분, 반드시 알고 싶은 마음, 무민 골짜기에 사는 여행자 스너프킨에 대해 원인 모를 호감은 사실 반한 거였다. 저런 이미지의 사람을 좋아했었다.  


사진 두 장을 딸에게 보냈다. 딸은 무민 애호가 친구에게 그 사진을 보냈다. 어디에 나오는 거니? 그것 하나만 물어봤다는데, 역시 광팬은 무섭다. ‘덕질’은 정말 위대하다. 사진 딱 두 장만으로 딸의 친구는 딱 그 장면이 나오는 비디오클립을 찾아내서 보내주었다. 채널 ‘스너프킨이 좋아요.’ 내가 찾던 그것은 <즐거운 무민 일가 24화> ‘돌아오지 않는 스너프킨’이라는 제목의 애니메이션이었다. 그것을 받은 날은 신기하게도 멀리 떠나와 혼자 잠들던 여행지의 밤. 사위는 적막하고 고요한데, 밤 고양이 소리만 울음처럼 들려오는데 스너프킨의 여행이야기에 완벽하게 빠져들었다.  


책 <늦가을 무민 골짜기>는 온통 스너프킨의 여행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무민 골짜기와 숲 속, 바닷가 마을, 저 멀리까지 ‘여행자’로 널리 알려졌으나 아무도 모르는 가을겨울 동안 이어지는 그의 남쪽여행 말이다. 이야기는 곧바로 길 떠나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무민 골짜기의 이른 아침, 천막에서 자고 일어나 가을 냄새를 맡은 스너프킨은 천막을 걷을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얼른 천막을 걷어야 했다! 갑자기 온 세상이 변해버리자, 스너프킨은 모두 몰려들어 이런저런 질문을 퍼붓기 전에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머뭇거리지 않고 천막의 기둥을 뽑고 서둘러 불을 끈 다음, 배낭을 짊어지고 마침내 길을 나선 순간, 스너프킨은 잎사귀를 모두 떨어뜨린 채 혼자 세상을 떠도는 나무처럼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풀밭의 천막을 쳤던 자리는 네모꼴로 하얗게 색이 바래 있었다. 잠시 뒤 아침이 되어 친구들이 일어나면 이렇게 말하리라. “스너프킨이 떠났어. 이제 가을이야.”

훌쩍, 홀가분하게. 가볍게 남쪽으로, 남쪽으로 혼자 여행을 떠난다. 


11월쯤부터 12월 1월 2월 3월. 4월쯤 봄이 오면 여행을 마치고 무민 골짜기로 돌아온다는 약속만 남긴 채. 오매불망 내가 찾던 이야기는 해마다 가을이면 여행 떠난 스너프킨이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여정에 생긴 에피소드. 무민 골짜기의 모든 등장인물들은 봄이 됐으니 돌아올 스너프킨을 기다린다. 특히 무민은 스너프킨에 대한 그리움으로 병에 걸릴 지경이다. 스너프킨이 오지 않는다. 무민은 물론 꼬마 미이, 플로렌, 스팅키, 스니프, 스노크 메이든, 무민 파파, 무민 마마까지 모두 여행에서 돌아올 스너프킨을 기다리느라 춘래불사춘, 목이 길어졌다. 어째서 돌아오지 않는 걸까. 이제 봄인데. 어떻게 된 걸까. 봄이 되면 금방 돌아왔었는데. 돌아오고 싶지 않게 된 걸지도 몰라. 찾으러 가볼까? 그가 떠난 쪽 길은 어느 쪽일까? 돌아올 사람이 오지 않는 것만이 무민 골짜기에 생긴 가장 큰일이다. 


15분까지, 돌아오지 않는 스너프킨을 기다리는 무민 골짜기 소동이 계속되다가 16분부터 마침내 스너프킨이 나온다. 여행자 스너프킨은 무민 골짜기로 돌아가기 위해 열심히 걷고 있다. 다섯 음계의 음률을 찾아 노래를 만들고 하모니카를 불고 길에서 잠들었을 그는 이 순간 어두워지는 산언덕에 초록색 작은 점이 되어 터벅터벅 걷고 있다. 홀로 걷는 여행자의 운명을 타고난 사람처럼 의연하고 단단하게. 높은 골짜기를 지나 부엉이가 우는 깊은 밤의 숲에 앉아 모닥불을 피운다. 몇 날이고 몇 달이고 저런 밤들을 보냈을 것이다. 


저렇게 가만히 있으려고, 말하지 않으려고, 엮이지 않으려고 여행을 떠난 사람이다. 타닥타닥. 포르르르. 스너프킨은 여행길에서 찾아오던 음률을 드디어 매듭짓고 있는 중이다. 문장 하나를 쓰듯이 음률의 꼬리를 잡으며 찻물을 뜨려다가 시냇물 건너편에서 반짝, 빛나는 두 눈을 포착한다. 작은 존재가 스너프킨을 향해 다가온다. 둘 사이에 흐르고 있는 밤의 시냇물 소리. 벌떡 일어선 작은 존재는 대뜸 저, 당신을 잘 알고 있어요. 당신은 스너프킨이죠? 묻는다. 오호라. 이런 깊은 숲속에서도 내 이름을 아는 자가? 스너프킨은 짐짓 무시하는데 작은 존재는 훌훌 물에 뛰어들어 헤엄쳐온다. 어이, 물은 아직 차갑잖아. 자, 빨리 이쪽으로 와서 불을 쬐어. 감기 걸린다. 귀찮지만 조금은 친절해진다. 젖은 몸을 부르르 털며 작은 존재가 다가와 저만의 기쁨으로 펄쩍펄쩍 뛰며 불을 쬐면서 흥분한 작은 존재는 재잘재잘 떠들기 시작한다. ‘광팬’과 ‘지친 유명인사’같다.


저, 당신이랑 만나서 무척이나 기뻐요. 게다가 당신의 불을 쬘 수 있다니, 최고예요.

너는... 어째서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거지?

그건 제가 당신에게 흥미를 가지고 있어서예요. 매년 이 길을 지나는 걸 보고 있어요. 여러 애들로부터 당신에 대한 소문을 들었어요. 

놀랐는걸. 나에 대해 그렇게 관심을 가지는 자가 있다니. 너의 이름은 뭐지? 

혼자 있는 것을 가장 좋아하고 말 많은 걸 싫어하는 스너프킨은 작은 존재가 살짝 귀찮고 성가시지만 몰인정하게 내치지는 않는다. 이름을 물어본다. 작은 존재는 풀이 팍 죽어서 하소연을 시작한다. 


"저는 아무도 이름을 붙여주지 않아요. 아마도 제가 너무 작고 빈약해서겠죠. 지금까지 저에게 이름을 물어봐준 사람은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 그렇게나 동경하던 당신이 제 이름을 물어봐 주었어요! 

너의 이야기를 들으니, 어쩐지 너무나도 과장되었다는 느낌이 드는 걸. 

스너프킨은 조금씩 짜증이 난다. 무작정 들이대는 건 질색이다. 

하지만 작은 존재는 한 술 더 뜬다.

있죠. 이런 걸 바라면 무척이나 귀찮으시겠지만, 제 이름을 생각해주지 않으시겠어요? 그 이름은 저만의 것이며, 다른 사람은 아무도 쓰지 않을 그런 이름을 원해요! 오늘 밤, 생각해주시겠어요? 


작은 존재는 소심한 것 같으면서도 행동은 꽤나 적극적이다. 스너프킨이 만난 지 처음으로 기대에 찬 눈빛을 반짝이며 무작정 자기를 좋아하는 해맑은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고개를 돌리며) 너의 말대로인 이름을 생각하는 건, 어려울 것 같네.

(나름 집요하다. 찬양조로 흥분한다) 하지만, 당신은 뭐든지 알고 있는 사람이잖아요? 

이때다. 우연히 본 사진 속에서 화난 듯, 슬픈 듯한 그 대화를 뱉은 때가. 

스너프킨은 참았던 화를 좀 내면서 단호하게 말한다.


너, 그렇게나 누군가를 숭배하는 건 자신의 자유를 잃는 일이야. 


스너프킨은 진심인 것이다. 그는 꽤 여러 번 저 말을 했을 것이다. 자기를 좋아하고 숭배하고 모든 일을 함께 하기를 원하는 존재들을 많이 겪었을 것이다. “넌 정말 멋져. 정말 현명해. 넌 세상의 모든 신비를 아는 것 같아.”같은 말들. 

스너프킨은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고 혀가 마르게 자기를 칭송하는 자들의 허기와 갈망을 싫어하는 사람이다. 제발 누군가를 너무 많이 동경하지 마. 누군가를 존경하고 숭배하면 결코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없어. 해물렌에게, 무민에게, 스니프에게, 토프트에게도 저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우연한 침입자는 턱없이 숭앙하고 떠들더니 이름까지 지어달라고 한다! 작고 이름 없는 존재는 더욱더 흥분하고 찬양하며 기죽지 않는다. 이것 봐요! 그런 대단한 것도 알고 있네요. 당신은! 저도 언제나 당신처럼 자유로워지기를 바라왔어요. 


지친 스너프킨은 한숨 쉬며 고개를 돌린다. 작은 존재는 비록 작지만, 이름도 없지만 강적이다. 이제 그만, 졌다는 표정이다. 그제야 작은 존재는 돌아가려고 하면서도 눈치 없이 또 말을 이어간다. 아, 제가 수다를 너무 많이 떨었네요. 당신은 여행 도중에 지쳐 있는데. 아참, 무민 골짜기로 가는 거죠? 친구를 만나러. 호저에게 들었는데, 무민은 올해 겨울부터 깨어나서 당신이 오기를 계속 기다리고 있대요. 누군가가 당신을 동경하고 있고, 무척이나 만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아는 것은 정말 기분이 좋겠네요! 


작은 존재는 너무 모른다. 스너프킨은 그런 것을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다. 누군가와 말을 많이 하는 것. 누군가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달라붙는 것. 챙기고 보살피고 감정을 돌봐야하는 것. 자기가 여행을 떠났다고 기다리고 울먹이는 것. 넓고 넓은 땅에 이름을 붙여 소유하는 것. 스너프킨은 출입금지, 제한구역, 닫힘 그리고 입장 금지 등등 사유지를 나타내는 표지판은 무엇이든 싫어하는 사람이다. 이름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며 내 것이라고 표시하고 울타리를 쌓아 영역표시를 하는 것을 무엇보다 싫어한다. 스너프킨은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며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는다. 딱히 누구에게 정서적 애착도 보이지 않는다. 자기가 의존하게 되는 것도 누가 자기에게 기대는 것도 싫어한다. 외로움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지 않는다. 겁이 없고 독립적이고 자유롭다. 스너프킨은 자유, 몸과 행동의 자유와 감정의 자유를 온몸으로 실현하는 사람이다. 누군가가 자기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 정말 기분을 좋게 하지는 않는다. 작은 존재를 향해‘만약 우리가 누군가를 동경하면 자유로워질 수 없다’고 또 한 번 부르짖을 마음이 되어버린다. 이제 작은 존재에게 등을 돌리고 ‘나는 혼자 있는 것이 제일 좋다’고 단호하게 말을 맺는다. 


마침내 몸도 다 말랐다고, 고맙다고, 잘 있으라며 작은 존재가 꼬리를 내리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자리를 떠나가고 있다. 천천히, 기운 없이, 슬퍼하면서. 소심하고 여린 자들이 가진 마지막 필살기, 불쌍해 보이기를 시도한다. 냉정하게 대했지만 돌아선 작은 존재의 애처로운 뒷모습은 못내 안쓰럽다. 남을 숭배하면서 스스로 자유롭지 못한 자에게 자유로워지라고 소리치는 것은 무리다. 스너프킨은 문득 작은 존재를 불러 세운다.  


네 이름... 말이지! 예를 들면... 티티우라고 하는 건 어때? 티티우... 시작은 밝게, 마무리는 살짝 슬프게 끝나는 거야. 티티우. 작은 존재는 바로 티티우가 된다. 티티우는 몇 번이고 새로 지어 받은 이름 티티우를 소리 내어 불러본다. 티티우. 티티우. 둘이서 함께, 여러 번 티티우, 티티우, 수 번을 반복한다. 숲이 다 울릴 만큼. 펄쩍펄쩍 점프하면서, 얏호! 굉장한 이름이야. 티티우. 덤블링 하면서 티티우. 저다지도 기쁠까? 동경하던 스너프킨이 자기 이름을 지어준 것이. 이름을 지어주고 불러준 것이? 이번 여행에서 작은 존재에게 베푼 최고의 우정이다. 다섯 음계를 잡아 노래를 짓는 대신 여행길의 마지막 밤 스너프킨은 예술가가 아니라 최고의 작명가가 되었다. 이름이 생긴 티티우는 새로운 집을 지어서 티티우라는 문패를 붙이겠다고 수다를 떠는데 표지판을 붙이고 소유를 표시하는 걸 그토록 싫어하면서도 스너프킨은 잠깐 티티우에게 웃어준다.


그리고 아침, 봄날의 좋은 아침. 마침내 잡은 다섯 음계로 새 노래를 완성한 스너프킨이 무민 골짜기로 돌아온다. 깊은 숲에서 건진 하모니카의 음률은 무민이 살고 있는 집까지 울려 퍼진다. 그리움에 절여져서 누워 있는 무민의 침대까지.

늦가을에 시작한 스너프킨의 여행은 마침내 끝났다. 스너프킨은 겨울 외투를 벗고 배낭을 내려놓고 강가 다리 난간에 앉아 하모니카를 불고 있다. 무민에게 들려주려고 긴 여행에서 완성한 비의 노래 봄의 노래다. 마침내 상봉이다. 


티티우는 그 여행의 마지막 날 불현듯 나타나 이름을 받고는 애니메이션 어느 편에도 다시 출현하지 않는다. 완전히 불이 붙어 모든 <무민 이야기> 소설 시리즈를 섭렵했지만 티티우라는 이름을 다시 볼 수 없었다. 내 휴대폰 포토앨범에는 온통 스너프킨 얼굴이, 뒷모습이, 웃는 얼굴이 가득 찼다. 담배 피우는 토베가 그린 스너프킨 얼굴을 사진 찍었다. 두꺼운 <토베 얀손 일과 사랑>을 읽었다. 토베 얀손에게 스너프킨이 현실의 누구였는지도 알게 되었다. 뒤늦게, 이렇게나 스너프킨과 토베 얀손을 좋아하고 숭앙하게 되었다. 스너프킨이 그렇게나 남을 좋아하고 숭배하고 동경하면 자유를 잃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목 터지게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림일 뿐인, 이야기 속 인물일 뿐인 스너프킨을 사랑하게 되었다. 스너프킨 같은 여행자를 만나면 나도 이름을 지어달라고 떼를 쓸 것만 같다. 티티우처럼. 


티티우는 어느 깊은 숲 속에 집을 짓고 티티우라는 문패를 달고 만나는 모든 존재들에게 내 이름은 티티우라고 펄쩍펄쩍 뛰면서 자기소개를 하고 있을 것이다. 스너프킨은 무민 골짜기에서 봄과 여름을 보내고 가을이 오면, 나뭇잎이 떨어져 무민 골짜기에 날리기 시작하면 바로 당장 길을 떠날 것이다. 어쩌면 여행길에서 만나는 이름 없는 존재들에게 노래 대신 이름을 지어줄지도 모르겠다. 

그가 무민 골짜기에 남기는 것은 무민에게 쓴 짧은 편지밖에는 없다. 편지는 반드시 짧아야 한다. 눈물방울이나 슬픔의 정조를 품고 질척거려서는 안 된다. 그는 <무민의 겨울> 첫 대목에서 무민에게 이런 편지를 남기고 천막을 거뒀다. 


“안녕. 겨울잠 잘 자고 슬퍼하지 마. 따뜻한 봄이 오는 첫날, 내가 다시 와 있을 테니까. 댐은 만들지 말고 내가 올 때까지 기다려 줘. 스너프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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