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언 에듀케이션>
※ 이 글은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이 영화의 제목이 un-education인 줄 알았다. 근데 an education이었다. 영화의 메시지랑도 잘 어울리는 오해였다. 교육 밖의 뭔가 다른 것의 가치를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교육 그 자체의 의미를 보여준다. 하지만 아주 짧게. 설교하는 식도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환상적인 장면들로 영화는 대부분 흘러간다. 그러다 영화가 끝난 뒤의 현실을 조금 덧붙일 뿐이다. 그래서 더 매력적이고 설득적이다.
참으로 양심 있는 영화감독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 세계에 있으면 조금이라도 더 많은 낭만을 추구하게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대학입시는 개뿔, 고등 교육은 개뿔, 좋은 음악과 책과 그림을 접하는 게 진짜 교육이야!'라고 말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지만 영화는 그 기대를 뒤집어엎어버린다. 인생은 그런 식으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명확히 말한다. 영화의 환상으로 얻는 위안은 더 부질없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영화를 보는 내내 불안해하다가도 이런 낭만이 있을 수도 있잖아? 하면서 희망을 품었다. 기성세대가 틀렸다는 것, 부모님의 걱정은 기우라는 걸 보여주길 바랐다. 그런데 결국 결말은 진부한 진실이었다. 오히려 낭만은 제니가 그것의 힘이 절실히 필요할 때 그녀를 외면했다. 세상에 예외라는 건 생각보다 거의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따분하고 뻔한 길은 수많은 사람들의 선택과 순응으로 닦인 것이다. 직관이 생각보다 정확한 것도 그런 선택들이 만든 결과가 모인 감각이기 때문이다.
가끔 나도 내가 세상의 예외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문득 깨닫는다. 나라면 투자를 하지 않아도 성실하게 살아서 어떻게든 부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라면 매일 쓰고 고치지 않아도 직감으로 써낸 글로 작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건 다르게 생각하면 정말 무서운 일이다. 예외라는 건 아무것도 참고할 수가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어떤 책도, 어떤 조언도 먹혀들지 않는 인생이라는 건. 섬뜩하다.
스텁스 선생님의 집을 보는 순간, 번 존스의 그림이 그려진 작은 포스트 카드를 보는 순간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좋아하는 건 취미로 하는 삶은 꿈으로부터 회피하고 도피한 사람들의 변명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수많은 영화에서 그랬으니까. 예술가가 되지 못하고 수집가나 가련한 키치가 되어버린 안쓰러운 사람들. 그들 중 하나가 되고 싶진 않았다. 이왕 태어나서 한 번 사는 거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자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따분하고, 의미 없고, 비참한 것이 아니었다. 아늑하고 단단하고 너른 삶이었다. 자신의 삶을 깎아내리는 사람조차 다시 기쁘게 품을 만큼. 화려한 낭만과 꿈을 좇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소녀에게, 누군가는 경매에서 사들이는 그 그림을 카드로 간직하는 삶은 너무 초라하고 재미없게 느껴진다. 하지만 인생은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그녀가 형편없는 고등학생들의 작문 숙제를 검토하는 일을 한다는 사실이 곧 그녀는 낭만이 없고 메마른 목석같은 삶을 산다는 건 아니다. 그걸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데이비드의 화려한 취향이 그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진실로 느끼는 것은 다르다.
좋은 어른은 자신의 삶에 대한 견해를 말하지 않고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스턴스 선생님이 "이런 삶도 좋아. 안정적이고 내가 원하는 것을 어느 정도 적당히 즐길 수 있잖아."라고 말하면서 제니를 설득하려 했다면 아마 제니는 그녀의 집에 찾아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스턴스 선생님은 그저 조용히 기다리다가 손을 내밀었을 때 기쁘게 웃어주었다. 결국 말로 인생의 모든 걸 돌려 막기 하는 데이비드가 아닌 묵묵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스텁스가 제니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다.
제니는 멍청해서 데이비드와의 삶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녀는 옥스퍼드에 갈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노력하면 옥스퍼드라는 목표를 손에 쥘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을 위해서? 아무도 그 질문에 데이비드가 제공했던 삶보다 더 나은 답을 해주지 않았다. 그렇기에 삶의 따분함을 위해 노력하는 건 부질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제니는 그럴듯하게 보이기 위해 정해진 대로 흘러가는 삶을 견디기에는 너무 영리했다. 그래서 예상치 못한 풍경을 보여주는 데이비드를 선택했다. 하지만 그 삶에서도 결국 뻔한 진실이 드러난다. 이번엔 그럴듯하게 보이기 위해 추악한 진실을 외면해야 한다. 제니는 겉만, 말만 번지르르한 빈 껍데기 같은 삶을 견디기에는 너무 영리했다. 그 환상은 스스로를 속이면서까지 붙들만한 가치가 없었다.
제니는 기뻐했고, 불안했고, 절망했고, 다시 용기를 냈다. 옥스퍼드 합격 소식을 듣고 계단에 앉아있는 제니의 표정에서는 안도감도, 패배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건 끝이 아니다. 시작도 아니다. 잘못된 것을 고친 것도, 망한 인생을 가까스로 다시 궤도 안으로 건져 올린 것도 아니다. 그녀는 책을 읽었고 라틴어 공부를 했다. 그뿐이다. 그 행동엔 아무런 가치나 의미도 없다. 낭만을 버리고 현실에 순응한 것도 아니고, 성공한 사회인이 되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냥 살아낸 것이다. 홀로 서기 위해. 한 번도 파리에 가보지 않았던 것처럼 파리에 가기 위해서. 다시 낭만을 꿈꾸기 위해서. 담배를 피우고, 샹송을 듣고, 책을 읽기 위해서. 그리고 옥스퍼드에도 파리에 데리고 가겠다는 남자는 있었다. 정말로. 그녀의 인생은 망하지 않았다. 그녀의 인생은 따분해지지도 화려해지지도 않았다. 그녀의 인생은 해피엔딩도 새드엔딩도 아니다. 그저 또 다른 내일을 살아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