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말해요

공연 <춤이 말하다; 문소리 x리아킴>

by 아트필러

※ 이 글은 공연<춤이 말하다>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무대 위

이름만 들어도 아는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한때 스스로를 아무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서 있다.


대화인 듯 대사인 듯한 말이 들리고,

즉흥인 듯 안무인 듯한 춤이 들린다.


이야기는 때로는 비약하기도 하고,

한 순간에 오래 머물기도 한다.

우연이 생기를 북돋는다.



문소리

작은 몸이 뒷걸음치다

더 크고 자유롭게 춤추게 된 이야기


요가로 몸을 풀고 물구나무서기로 공연이 시작된다. 수많은 사람 앞에서 연기를 하는 사람이라면 무대가 두렵지 않을까. 아니, 아무리 그래도 수십 명이 쳐다보고 있는 그 시선 안에서 뭔가를 한다는 건 인간으로서 쉽지 않은 일이다. 아무리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다. 그런 무대에서 텅 빈 무대에서, 소품도, CG도 스태프도 없이 홀로 물구나무서기를 하는 모습을 보며 그 에너지와 집중력에 감탄했다. 그만큼 지금 이 순간 자기 자신에게 온전히 몰입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는 인사를 건네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름에서부터 시작한다. 문 씨 성의 아버지와 이 씨 성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작은 아이라는 뜻의 ‘문소리’ 몸이 작고 약했다. 늘 배터리 10%인 채로 학교-집만 왔다 갔다 하고 구석에서 가만히 책만 읽던 조용하고 나서는 걸 싫어하는 내성적인 아이. ‘연극 에쿠우스’가 모든 걸 뒤집었다. 갑자기 배터리가 20%, 30%, 40% 50%를 넘어가고, 와이파이가 연결되고, 블루투스 연동이 되면서 고속 충전이 되었다. 대학 연극 동아리에 들어가서 활기 넘치는 생활을 했고, <박하사탕>의 윤순임을 만났고, <오아시스>의 한공주를 만났고, <바람난 가족>의 은호정을 만났다. 처음에는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역할을 어떻게든 해냈고, 여전히 하고 있다'라는 이야기


image.png ⓒ안애순컴퍼니


고민했고, 설득했고, 결정했다. 이 세 가지 동사의 반복. 단순하게 말하지만 그 안에 얼마나 괴로웠을지 짐작이 간다. 나에게는 그 동사들을 살아내는 게 쉽지 않아서, 말로 표현하는 것조차 벅차다. 이제껏 나는 물 흐르듯이 매끄러운 필모그래피에서 매끈하게 다듬어진 배우 문소리의 이미지만을 봤구나 싶었다. 그 무대 뒤에서 어떤 인간이 있었는지 어떤 고민, 고뇌, 부끄러움, 슬픔, 기쁨, 환희가 있었는지 조금이라도 엿볼 수 있어서 기뻤다. 그런 경험은 정말로 흔치 않다. 그 사람이 유명하든 아니든, 나와 가깝든 아니든. 다른 사람의 인생의 백스테이지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다. 우리는 대개 자신의 인생은 더 슬프게 보고 남의 인생은 더 수월하게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타인의 삶을 그토록 쉽게 부러워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캐릭터를 연기할 때 어떤 몸을 먼저 만드는지에 대해 그 과정에 대해 설명해 줄 때 신기한 접근 방식이라고 느꼈다. 대부분 배우가 그 캐릭터가 되기 위해 하는 건 성격 분석, 전사 작업 등 정신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연기란 그 캐릭터의 영혼을 모방하기 위해 최대한 많은 걸 알아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몸이라니. 이상하게도 몸은 실재적이고 정신이 추상적인 개념인데, 연기에 있어서는 몸이 더 추상적으로 느껴진다. 단순히 몸의 형태와 외관을 넘어 그 캐릭터가 그 몸으로 어떻게 움직이는 가를 떠올리는 게 더 어렵게 느껴진다. 대사 속에서 그 내면, 복잡한 감정을 읽어내는 게 더 쉬워 보인다.


영원히 완벽이 불가능한 부분에 어떻게든 애써서 다가가려고 하는 그 노력. 그리고 그걸 착실하고 진실되게 해온 그 성실함. 그게 놀라웠다. 배우로서의 재능, 타고난 연기력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고 느끼는 일을 어떻게 착실히 해왔는지가 드러났다. 그리고 끝도 없고, 완수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그 작업을 부질없다고 포기하지 않고 해온 것. 그리고 해본 사람은 안다.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는 몰라도 그걸 어떻게 할 수 있는지는 안다. 그런 단단한 확신을 들을 수 있었다.


담담한 목소리로 담백하게 전하는 이야기 속에 담긴 유머도 마음에 들었다.


-'고것 참 물건이네.'라는 말에서 정말 말 그대로 물건처럼 있을 수 있는 아이였어요.

-연기파 배우라는 건 좀 웃긴 말인 것 같아요. 요리사에게 요리파 요리사라고 하지 않잖아요.

-현대무용은 현대의학만큼 좋은 거구나!

-사교댄스를 사교육 하듯이 골방에서 배우고 있는 거죠.


몸으로 수많은 배역들을 만나고 헤어지며 살아온 배우 문소리의 이야기는 어린 시절 친척들 앞에서 춤추는 게 지독하게 싫었던 어린 문소리의 이야기로 돌아가 끝맺는다. 늘 뒷걸음질 치던 아이가 그 걸음도 춤이었다는 걸, 중요한 건 방향이 아니라 움직임 그 자체였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하며 사람들 앞에서 탱고를 춘다.


탱고를 추는 모습을 보는데 눈물이 났다. 이유 없이 뭔가 벅차올라서 울었던 게 얼마만이었나. 지켜보는 사람 하나 없이 혼자였던 수많은 공간에서 움직여왔던 몸이 눈을 감은 채 음악과 파트너에게 의지해서 춤을 추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꿈만 꾸던 걸 실제로 한다는 건 이렇게 별 거 아니고, 저렇게 아름답구나. 그 모든 시간을 지나와 지금 이 순간 무대 위에서 탱고를 추는 이 순간이 그냥 기적 같아서. 대견해서, 존경스러워서 울었던 것 같다.




리아킴

타인, 세상 그리고 나의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춤추게 된 이야기


1등, 꿈, 성공. 1등, 꿈, 성공. 그런 게 얼마나 쉽게 허망하게 사라지고 사람을 망가뜨리는지-라고 말하는 사람. 끝이 없는 것 같은 어둠을 겪어본 사람. 마지막 남은 자존심까지 박살나본 사람. 그리고 그걸 젊었을 때 겪은 건 축복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강하다.


'괴롭힘을 피해 다녔던 쭈굴 했던 자신이 처음으로 자신감 넘치게 잘할 수 있다고 느꼈던 것, 술술 배워지고, 피해야 했던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끌어당겼던 것이 춤이었다. 뭐든 세계 최고, 최초가 되고 싶어서 고된 훈련도 즐거웠다. 하루 10시간 연습, 3시간 동안 푸시업 1000개, 암웨이브 1000개. 그렇게 세계 챔피언 대회에서 우승한 후, 세상이 달라졌을 것 같았는데 똑같았다. 오히려 더 나빠졌다. 그렇게 망가져갔다. 나의 오만함이 나를 망가뜨렸다. 불안이 열정을 집어삼켰다. 남김없이 깨부숴진 후 그리고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연습을 시작하고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다 페이스북 동영상으로 화제가 되고 다양하게 배웠던 춤들을 토대로 경계 없는 안무를 만드는 안무가로서의 삶이 이어졌다.'라는 이야기.


image.png ⓒ안애순컴퍼니


이야기를 듣는 것과 그 이야기 속에서 사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그 시간의 감각을 온전히 느꼈을 것이다. 나는 종종 자서전에 ‘그는 평생에 걸쳐 신경통을 앓았다.’라는 문장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생각한다. 24시간 내내 징그럽게 달라붙었을 그 통증과 징글징글하게 진절머리가 난 마음을 단 14글자로 끝내버린다. 그건 너무한 일이다. 그래서 그 문장을 접할 때면 잠시 멈추고 묵념하듯 그 시간에 대해 경외감을 표한다. 리아킴의 이야기에서 어마어마한 연습량과 7~8년간의 슬럼프 얘기를 들었을 때 그랬다. 단 몇 단어로 압축된 그 시간들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이야기를 역순으로 되돌아간다. 지금의 인생으로 이전을 비추어본다. 과거에는 알 수 없었던 결과를 우리는 알고 있는 채로 과거로 돌아간다. 그래서 그 모든 고난과 역경과 슬픔과 처절함과 비루함과 좌절이 그저 가벼운 고난 정도로 느껴진다. 지금의 성공과 결말을 위한 복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을 때, 그때 이렇게 움직일 수 있었을까. 어떤 것도 보장되지 않는 순간에 그저 묵묵히 움직일 수 있었을까. 오히려 몰랐으니 그렇게 살아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벌어질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몰랐기에 오히려 하고 싶다는 그 처음의 열정을 그대로 가져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감동적이다. 뭔가를 알아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몰라도 그저 그냥 계속했다는 그 움직임 자체가.


image.png ⓒ광주시문화재단



이 공연에서 ‘여성’은 주제와 핵심으로 부각되지 않지만, 그들의 말과 몸에서 매 순간 의식되고 드러난다. 솔직하고 거침없이 말한다. 춤은 더더욱 전혀 조심스럽지 않다. 멋진 여자들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벅차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싶다. 내 옆자리와 대각선 좌석에서 눈물을 훔치는 여성 관객들을 보았다. 같이 눈물 흘리는 것만으로도 연대감이 느껴졌다. 마치 삼각형의 동맹이 나를 든든하게 받치고 있는 기분이랄까.


우리가 그들의 움직임에서 기어코 의미를 찾아내고자 하고, 그보다 훨씬 전에 먼저 벅차올라 눈물이 흐르는 이유는 그들이 유명해서, 성공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조명 하나 없는 차가운 맨바닥에서 끝없는 어둠 같은 시간을 오로지 혼자 보낸 몸이기 때문이다. 그 몸이 지금 내 눈앞에서 누구보다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 감동적인 것이다.


누구에게나 시작은 있다. ‘연극 에쿠우스’, 마이클잭슨의 내한공연. 거기서 그들은 어두운 객석에, TV 화면 앞에 있었다. 감동에 전율하는 경험을 하면서. 그들도 누군가를 동경하는 사람, 아무도 아니라고 느끼는 사람이었다. 나중에 그 이야기를 무대에서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그 이야기에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된 건 그 감동을 소중히 간직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왔기 때문이다. 바뀌는 건 그 순간부터 할 수 있다. 대단한 결심이 아니더라도 그 감동을 계속 가져올 수 있다. 그걸로 인생을 바꿀 수 있다.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다. 모든 걸 바꿔놓은 고속 충전의 순간이 있었다. 그 감동은 한때 자기소개서의 빛바랜 첫 문장이 되었다. 어쩌면 나는 그 문장에 매달려왔는지도 모른다. 절대 그 순간을 잊지 말고 살아가라고 무의식과 의식이 애써서 늘 끄집어 올려왔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순간으로부터 얼마나 오래 뒷걸음질 치고 있었던 걸까. 나는 이럴 수밖에 없는 사람인데. 무대에서 그런 감동을 다시 목격하면 저렇게 살고 싶어 미치겠는데. 또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까지 미쳐본 적이 있나? 눈 돌리지 않고 바보처럼 달려본 적이 있나? 독하게 꿋꿋이 버텨본 적이 있나? 무엇이 두려웠을까? 생은 짧고 한 순간인데.


감동을 줄 수 있는 몸이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 바지런히 움직이고 싶다. 나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내가 작가고, 나는 글을 쓰고 있고, 그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삶을 살아갈 힘을 주고 싶다고 말할 때, 때로는 말하지 않을 때 그 어느 순간에도 항상 당당한 몸. 누군가 내 몸의 움직임을 보는 것만으로도 감동받을 수 있는 그런 몸.


쩨쩨하게 굴지 말고, 가슴 쫙 펴자구!
-영화 <바람난 가족>에서


영화 <바람난 가족>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사다.

그래, 가슴 쫙 피고, 하고 싶은 대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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