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르 박물관 첫 번째이야기
오늘은 특별히 루브르 박물관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세계 최고라 불리는 박물관이자 미술사 책 속에서 등장하는 <밀로의 비너스>, <모나리자>,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 <민중을 이끄는 자유> 같은 작품들이 있는 곳입니다.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미술관은 어떤 곳인가요? 처음 프랑스 미술관에 가서 무척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미술관에는 뛰어놀고 있는 아이들, 몇십 분 동안 작품을 보면서 침 튀기며 논쟁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이젤을 들고 와 유화를 그리고 있는 예술가들이 있었습니다. 조용히 작품을 보고 나가야 하는 한국 미술관과는 다른 분위기였기 때문에 그런 모습이 저에겐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 프랑스에서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프랑스 친구들과의 약속 장소도 언젠가부터 ‘루브르 박물관 피라미드가 아래'가 되었고, 미술관 벤치에 앉아서 그림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프랑스인들에게 미술관이란 단순한 전시공간 이상의 의미가 있더군요.
유럽의 도시에는 그 도시를 대표하는 미술관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미술관은 오랜 시간 도시가 형성되며 서서히 미술관이 된 경우가 많기 때문에 도시의 색채가 담기게 됩니다. 미술관은 그 도시의 거울이자 인류가 간직해온 가치를 ‘미술 작품’으로 즉 ‘이미지'로 전달하는 곳입니다. 루브르는 파리에서는 그런 미술관으로 프랑스 사람들의 역사와 생각을 시각적 언어로 전달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루브르 안에 있는 소장품에 대한 관심이 많아 루브르 자체의 역사는 놓치는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1호선 루브르 박물관역에서 내려서 밖으로 나와 건물 외관을 따라 쭉 걷다 보면 루브르가 간직한 몇백 년의 세월을 마주하게 됩니다.
루브르는 12세기 필립 오귀스트 왕과 함께 지어지며 역사가 시작됩니다. 그때 당시에는 박물관이 아닌 요새의 역할을 했지만, 점점 요새의 기능을 상실하며 샤를 5세 때부터 프랑스 왕의 궁전이 됩니다. 태양왕이라 불렸던 루이 14세도 이곳에서 머물렀습니다. 우리에겐 <짐이 곧 국가이니라>라는 말을 남긴 유명한 왕이지요. 그도 처음에는 다른 왕들처럼 루브르 궁전에서 머물렀지만, 파리 외곽에 더 화려한 베르사유 궁전을 짓고 그곳으로 거처를 옮깁니다. 그렇게 되면서 루브르는 왕궁의 기능을 잃습니다. 하지만 루브르 궁전은 그냥 버려지기에는 너무 아름답고 왕실의 보물들로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이때부터 루브르에는 왕실의 후원을 받는 예술가들이 모여 살기 시작했고 살롱이 개최되면서 파리의 예술의 중심지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그리고 프랑스혁명 이후 왕실의 보물로 가득했던 루브르 궁전은 시민들을 위한 박물관으로 탄생하게 됩니다. 루브르 박물관에는 다양한 문화와 시대의 작품들을 전시해 보여주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최근에 그려진 즉 가장 마지막 시대에 해당하는 미술사조는 바로 ‘낭만주의’입니다. 테오도르 제리코가 이 운동의 시작을 알렸지만, 정점을 찍었던 화가는 바로 외젠 들라크루아였습니다. 왕실의 흔적들과 소장품으로 가득한 이곳을 둘러본 후 가장 마지막 시기에 그려진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와 마주하게 되면 무척이나 감동적입니다.
제목처럼 ‘자유’를 의인화한 여인이 여러 군중을 이끌며 전진하고 있습니다. 프랑스는 그녀에게 ‘마리안느’라는 이름을 지어줬습니다. 마리와 안느는 프랑스에서는 가장 흔한 여성의 이름입니다. 마리안느는 고대 해방 노예들이 썼던 프리지안 모자를 쓰고 시원하게 젖가슴을 드러내며 프랑스의 국기를 들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녀의 왼쪽에는 톱 헤트를 쓴 부르주아 남성과 흰색 휘장을 두른 남자가, 발밑에는 파란색 옷을 입고 있는 노동자, 오른쪽에는 어린아이가 있습니다. 계층, 성별, 나이 할 것 없이 그들을 무언가를 간절히 갈망하며 투쟁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은 프랑스 삼색기가 의미하는 ‘자유, 평등, 형제애’입니다. 배경에 아주 작게 그려진 노트르담 대성당은 혁명의 시작이 파리였음을 환기해주고 있습니다.
1789년 바스티유 습격으로 시작된 프랑스혁명의 역사는 나라의 주인도 바꾸어 놓았고, 예술작품을 향유하고 즐기는 것도 시민의 권리로 돌려놓았습니다. 그러면서 왕권을 상징했던 루브르 궁전도 시민들의 박물관으로 다시 탄생하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200년도 더 지난 지금 이 그림 앞에 서 있는 프랑스인들은 아직도 그때의 일을 오늘날의 사건인 양 이야기들을 늘어놓습니다.
루브르 박물관 앞에는 한 개의 개선문이 있는데 바로 ‘카루젤 개선문’입니다. 나폴레옹 1세가 전쟁에서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웠습니다. 다시 카루젤 개선문의 가운데 축을 쭉 따라 올라가다 보면 두 번째 개선문이 등장합니다. 바로 샹젤리제 대로 끝에 있는 ‘에투왈 개선문’입니다. 나폴레옹 1세가 짓기 시작했지만, 그가 죽고 나서 완성이 되었으며, 현재는 개선문 아래에 세계대전 당시에 희생을 당했던 무명용사들의 유해가 안장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운데 축을 따라 다시 쭉 가게 되면 나오는 ‘신개선문'이 있습니다. 각각 프랑스의 과거, 현재, 미래를 상징하는 개선문입니다.
루브르 박물관 앞에 있는 루이 14세의 기마상은 이 축을 향하고 있습니다. 이 축은 ‘파리의 역사 축’이라 불립니다. 재밌는 것은 이 축이 루브르로부터 시작이 되어 절대왕정의 상징인 루이 14세가 공화국의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고 있는 프랑스의 미래를 향해 달려 나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루브르 박물관은 시민들에게는 작품 감상 기회를 제공하고, 예술가들에게 작업 공간을 내어주는 곳이자 SNS의 소통이 중요한 현대인들에게는 모든 상설 전시실에 촬영을 허락해주고 있는 곳입니다. 최근에는 한 댄서가 박물관 내 조각 전시실에서 BTS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영상이 루브르 공식 인스타그램에 올리기도 했는데요. 이런 활발한 SNS 활동을 보니 루브르 박물관의 소통에 대한 의지가 느껴졌습니다.
갇혀있기만 한 과거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아름다운 명화들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800년 역사를 지닌 루브르 이야기는 언제나 새롭고 프랑스인들의 심장을 뛰게 합니다. 미술 작품을 통해 현재를 바라보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루브르가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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