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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티칸 Aug 04. 2016

'마음의 범죄:1막' (2)

삶의 리얼리티reality

‘마음의 범죄’를 통해 내가 생각하는 ‘사실주의 극’과 ‘사실주의 연기’를 이야기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짧고 굵게, 간단명료하게 이 이야기를 풀어보려는 내 의지는 접어야 할 것 같다. 아무리 정리하고 고민해 봐도 이것들은 짧은 이야기로 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전달하려면 효율적이어야 할 필요가 있는데, 도대체 그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 지금까지 내 결론이다. 그만큼 ‘사실주의 극’과 ‘사실주의 연기’에 대한 기준점은 엄청나게 다양하다. 그리고 그것들은 하나하나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조금이라도 쉽게 전달되었으면 하는 나의 마음이 읽는 분들에게 전달될 수 있기를 무지무지하게 바란다.



'사실주의 극'과 '사실주의 연기'는 우리의 삶 그 자체를 다루고 있다.

‘마음의 범죄’는 ‘사실주의 극’이다. ‘사실주의 극’은 ‘개개인 삶의 리얼리티reality’에 바탕을 두고 구성이 된다. ‘개개인 삶의 리얼리티reality’에 바탕을 둔다는 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리얼리티reality’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이야기도 된다. 말장난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개개인 삶의 리얼리티reality’가 모이면 ‘사람 삶의 리얼리티reality’라는 단어가 되는 것이니 말이다. 한 사람의 삶을 알고자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나?’라는 넓은 범위의 고민이 필요하고, 반대로 사람의 삶을 알고자 ‘한 사람 한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나?’라는 고민이 필요한 것처럼 두 가지 기준점은 서로 유기적으로 묶여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사실주의 연기’, 또는 ‘메소드 연기’가 가진 연기에 대한 접근법과도 관련이 있다. 또한 내가 ‘사실주의 극’과 ‘사실주의 연기’를 좋아하는 이유이며, 이러한 연기와 극을 사람들에게 마구마구 보여주고 싶은 충동의 뿌리이다.

‘사실주의 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각자 고유의 삶이 있고, 극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드러내도록 구성되어져 있다. 즉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인물이 가진 고유한 삶인 것이다. 그런 이유로 ‘사실주의 극’은 너무나도 매력적이다. 등장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살아있게’ 만들어야만 성립될 수 있는 장르니까 말이다. 그 어떤 역할의 삶도 극의 장르를 성립시키고 합리화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사실주의 극’이다. 이 모든 말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를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른 장르 극의 성립 조건을 예로 생각해 보면 아주 간단하게 이해가 된다. ‘코메디comedy’라는 장르를 성립시키고 합리화하기 위해서 등장인물의 삶은 어떻게 쓰이는가? 처음부터 끝까지 인물이 가진 고유한 삶만을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장르인가? 그렇지 않다. 관객의 웃음을 끌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이다. 그렇기 때문에 등장인물의 흐름은 고유한 삶을 드러내는 것에 집중되어 있지 않다. 등장인물이 가진 고유한 삶은(고유한 삶을 애초에 가지지 못한 등장인물일 가능성이 높을 수도 있겠지만) 관객의 웃음을 끌어내려는 시도나 작가, 연출, 배우, 또는 제작자의 의도에 따라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닐 수 있는 것이다. 고려의 대상이 아니어도 ‘코미디comedy’라는 장르는 충분히 성립될 수 있고 합리화할 수 있다는 말이다. 각각의 인물이 극의 장르를 성립시키고 합리화하기 위한 도구로 쓰여도 무방한 장르인 것이다. 하지만 '사실주의 극'은 인물들이 가진 고유한 삶들 가운데 하나의 삶이라도 도구화되는 순간 이 장르가 가져야 할 균형이 무너져 버린다. 더 이상 온전한 '사실주의 극'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것이다. 

왼쪽 김규리(레니 역) 배우

오른쪽 김아연(레니 역) 배우 

사실 이 글은 ‘마음의 범죄:1막’을 빌미로 한 ‘사실주의 극’과 ‘사실주의 연기’에 대한 고찰(?)인 듯한 내용이다. 하지만 ‘마음의 범죄’라는 작품을 제대로 읽어내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이야기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마음의 범죄’ 뿐 아니라, 안톤 체호프, 아서 밀러, 테네시 윌리엄스, 유진 오닐, 핸리 입센 등 우리에게 사실주의 작가로 알려진 사람들의 작품들, 그리고 ‘사실주의 극’이라고 불리는 모든 작품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 알아야 하는 이야기다('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항상 맞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이 경우에는 백번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사실주의 극’과 ‘사실주의 연기’, 그리고 ‘메소드 연기’라는 것에 목을 매며, 사람들에게 보다 제대로 된 이야기를 알리고 싶다. 왜냐하면 난 이것들로 밥벌이를 할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된 이야기(전적으로 내 기준이라 하더라도)를 이해하고 알고 있어야 한다.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나 혼자 좋다고 아무리 떠들어 봐야 되돌아 오는 건 별거 없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사실주의 극', '사실주의 연기', '메소드 연기'에 대해 잘 못 알려졌거나, 전혀 알려지지 않은 것이 너무 많다. 고로 난 당분간 ‘마음의 범죄:1막’에 대한 정리를 빌미로 ‘사실주의 극’과 ‘사실주의 연기’, 그리고 ‘메소드 연기’에 대해 부던히도 떠들 생각이다. 우리가 공부한 '메소드 연기'가 '마음의 범죄:1막'이라는 작품을 만들면서 어떻게 접목되었는지, 그리고 그 방향이 왜 '사실주의 극'과 '사실주의 연기'를 하는 것에 있어서 맞는 방향인지를 말이다. 또한 이 연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사실주의 극'과 '사실주의 연기'에 대해 무한한 흥미를 느끼고, 그 재미에 푹 빠졌으면 좋겠다.



덧붙임

일주일에 적어도 한 편씩은 꼭 올리리라 마음먹은 것이 오히려 독이었는지(이것도 그냥 핑계인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지만), 이번 회 내용이 영 알차지 못 한 것 같아 마음에 걸린다. 예전 같았으면 모자란 글을 어떻게든 알차게 써 보는 것에 중점을 두고 업로드하는 것을 미뤘을 터이다. 그럼에도 업로드하는 것은 이번 연재에 대해 좀 가볍게 접근해 보고자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에서 이다. 그래도 다음 글은 보다 알이 꽉꽉 찬 녀석으로 만들어 올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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