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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티칸 Aug 05. 2015

정신줄 놓고 마주한 '눈물'

이미 자신은 너무나도 풍부한 감성을 지녔으며, 틀면 쏟아지는 수도꼭지 같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이 이야기를 따라와 봤으면 좋겠네요. 어쩌면 이 이야기를 통해 여지껏 경험해 보지 못 한 '눈물'을 마주하게 될 지도 모르거든요.

마음에게 자유를!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린 이런 저런 이유로 내  몸뿐만 아니라 내 마음도 꽁꽁 묶어 놓고 살죠. 사회에 적응하며 살아가기 위해서 또는 현실을 견디기 위해서 가지가지 것들로 무장하고 경계하며 살고 있어요. 심지어 '해도 되는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을 자의든 타의든 뿌리 깊게 새기면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모든 것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마음에게 자유를 허락하지 않죠. 결국 다른 사람과 비슷해 보이기 위해 혹은 더 좋아 보이기 위해 진짜 마음은 감추고 아무렇지 않은 척 가면을 쓸  수밖에 없는 겁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 삶이 이렇지 않을까 싶네요. 그리고 그 삶의 무게는 만만치 않을 겁니다. 그 무게를 잠깐이라도 덜어내고 마음에게 자유를 허락할 수 있는 '나'를 꺼냅시다. 숨 쉬기가 한 결 수월할 거예요.

정신줄 놓고 동요를 부르다.

동요를 아무거나 하나 고르세요. 정말 아무거나! 가사를 깊게 고민하지 않아도 부를 수 있는 동요로 고르세요. 동요를 고르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노래를 잘 부르거나 못 부르는 것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죠. 동요를 멋 부리면서 부르려고 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있나요?) 다른 장르의 노래를 고르면 자기도 모르게 멋 부리는 것에 집중을 하게 될 수 있습니다. 동요를 부릅니다. 자신의 소리가 자신의 귀에 들릴 정도의 볼륨이면 충분해요. 그리고 소리의 방향은 가슴입니다. 자신이 내는 소리가 가슴 부근을 잔잔하게 울리는 것을 느끼면서 유지합니다. 노래의 속도나 마디 마디가 이어지는 박자는 흘러가는 대로 두세요. 단 빠르게 부르면 앞에서 말 한 것들을 느끼면서 하기 어렵겠죠? 속도에  구애받지 말고, 들숨 날숨이 꼬이면 숨  정리하면서 차분히 불러 보세요. 노래가 날 끌고 가는 건지 내가 노래를 끌고 가는 건지 모를 정도로 정신줄을 놓고 부르게 되는 순간이 올 겁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유 모를 '눈물'과 마주하게 될 거예요. 멈추지 말고 한 동안  계속하세요. 처음 마주한 '눈물'이 나오고 싶은 만큼 나오게 내버려 두세요. 

가면 뒤에서 홀로 외로웠던 나, 그리고 '눈물'

지금까지 꾹 참고 꽁꽁 묶어 놓았던 내 마음이 자유를 얻어 마주한 '눈물'일 겁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외롭습니다. 그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지요. 하지만 근본적인 본연의 외로움을 외면하고 가면을 쓰는 것으로만  일관한다면, 자신이 가진 본연의 모습을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이 외면하는 꼴이 되어버리는 거죠. 그런 삶이 얼마나 행복할까요? 그리고 가면 뒤에 숨긴 내 모습이 비단 외로움만은 아닐 겁니다. 나약하고 지쳐있는 나는 없을까요? 가면뒤에 숨겼던 '나'를 하나 하나 마주하며 만나는 '눈물', 참 묘한 만남이겠죠. 그리고 그 만남은 마음에게 조금씩 자유를 허락할 겁니다. 그리고 그 자유는 내가 가진 상처와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겠죠. 


울어도 괜찮습니다. 다시 가면을 써도 괜찮아요. 가끔 한 번씩만 마주해요. 보고 싶잖아요. 숨겨 놓은 내 마음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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