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 꼭 한 번 가고 싶은 여행
죽기 전에 엄마랑 단둘이 여행 한 번 갈 수 있을까?
이 사소한 의문 하나로 이 여행이 시작됐다. 다음에, 나중에. 미루고 밀리다 스물일곱이 되어서야 태어나 처음 엄마와 둘이서 비행기를 탔다. 설거지고, 빨래고, 밥이고 뭐고 다 던져버리고 떠났다.
나처럼 누군가의 딸인 내 친구들에게 물었다.
"너 엄마랑 둘이 여행 가봤어?"
"어, 작년에 일본 갔다 왔는데 좋더라."
"당연하지. 넌 안 가봤어?"
"다음 달에도 가기로 했는데. 여기저기 다닐 수 있고 좋음."
그제야 알았다. 엄마랑 단둘이 여행 한 번 안 가본, 아니 못 가본 사람은 나뿐이라는 걸. 다른 집 딸들은 다 해봤는데 우리 집만 못 해봤다는 걸 깨달았다. 왜 그럴까? 왜 그랬지?
사실 성인이 되고 나서부터 줄곧 엄마와 둘이 여행을 가고 싶었다. 다들 가니까 나도 가보고 싶다는 두리뭉실한 이유 때문이 아니라 정말 그 느낌이 궁금해서였다. 딸들은 크면서 꼭 엄마가 되지 않아도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 여자로서의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 그렇게 엄마와 딸이 아니라 세상에서 제일 친한 친구가 된다. 나는 이 나이 많고 애정 어린 내 가장 오랜 친구와 함께 여행 한 번 가보고 싶었다.
엄마와 딸, 고작 두 사람이 함께 여행 가는 게 뭐 대수라고 이렇게나 미뤄왔나에 대해서도 곰곰이 생각해 봤다. 거기엔 다양한 이유가 있다.
첫째, 원팀 정신 우리 집. 혼자 가기보다, 둘이 가기보다 가족 전체 다 함께 가는 여행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환경. 그래야 옳다는 믿음. 그래서 따로 가자 생각하면 드는 묘하게 죄짓는 기분. 강력하게 형성된 '우리는 하나' 정신이 나와 엄마를 오래 묶어두었던 것 같다. 어쩌면 우리 스스로 날개를 꺾은 걸 지도.
둘째, 현실적인 문제. 돈이나 일정, 가족 구성원 식사나 눈치 같은 것들. 자식이 너무 어릴 땐 부모에게 여행이 여행이 아니고, 부모가 너무 늙어버려도 여행이 여행이 아니다. 이 사이 어디 즈음 부모와 자식 모두 건강하고 흥미가 있어 어딘가로 떠나기 적합한 딱 그 순간에마저 닥치는 아주 현실적인 조건들. 그 문제 하나하나 파고들다 보면 타이밍은 잡기보다 놓치기가 쉽다.
마지막으로, 떠날 수 있는 용기. 첫째도 됐고 둘째도 됐다. 여행이라고 해봤자 고작 며칠인데 그 사이 나머지가 굶어 죽기라도 하겠어? 갓난아이 두고 나 몰라라 가는 것도 아닌데.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는데 괜히 우리 둘이 눈치 보며 끙끙댄 것 아니야? 그냥 확 선언할 용기가 없는 건 아니고? 냉철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스스로를 반추해 본 결과 찾아낸 부족했던 용기.
엄마와 둘이 여행을 가지 못하는 데에는 그밖의 무수한 이유가 있다. 갈 수 있는 이유보다 못 가는 이유를 찾는 것이 쉬웠다. 훨씬 쉬웠다.
그러던 올해, 정말로 궁금했다. 어쩐지 좀 억울하고 걱정이 되어서 엄마에게 물어봤다.
"엄마, 우리 이번 생에 죽기 전에 둘이서 여행 갈 수 있을까? 나 좀 무섭다. 우린 평생 둘이 여행 한 번 못 가고 죽을 것 같아. 지금까지 이래왔는데, 앞으로 언제 가겠어? 살면서 더 나이 먹고, 아프면 더 안 가겠지. 계속 미루게 될걸. 주원이도 가봤고, 재희도 가봤대. 엄마랑 둘이 여행 가는 거 나만 못 해봤어. 우리는 언제 가? 엄마는 계속 늙어가고, 나도 마찬가지야. 우리에게 시간이 영원한 건 아니잖아. 솔직히 어쩌면··· 우린 평생 둘이서 여행은 못 갈지도 몰라."
내 말을 들은 엄마는 아마 조금 충격을 받았을까? 아니면 사실 엄마도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말일까?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가, 가자. 그까짓 거 가면 되지. 나도 그냥 가고 싶어."
어쩌면 오래 기다려온 말이었던 것 같다.
나는 곧바로 항공과 숙박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여행지는 오래전부터 정해두었다. 특히 작년 한 해 동안 수고스럽게 날 위해 애썼던 엄마를 위해 내가 선물을 하기로 했다. 마음이 서니 조사는 빨랐고, 결정은 더 순식간이었다. 수년을 고민하고 미뤄온 것이 무색하게, 우리는 일주일 뒤 바로 떠나게 됐다. 가깝고, 맛있는 게 많다는 일본 후쿠오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