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만에 가는 곳

특별한 설렘

by 아인장

2년 만에 가는 여행이라 출발 전이 정말 설렜다. 원래 모든 여행은 짐 싸는 시간이 전부다. 야무진 J로서 책임지고 3박 4일 일정을 세우며 맛집, 카페, 가볼 만한 곳을 열심히 찾았다. 엄마는 뭐든 좋단다. 가서 뭐 할지보다 가서 뭐 입지에 더 열심이셨더랬다.


오랜만에 가는 여행이라는 점 외에도 일본을 간다는 것 자체가 큰 기대였다. 나는 대학교 동기들과 갔던 7년 전 오사카가 가장 최근의 일본 여행이다. 금방 또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다시 가기까지 7년이 걸렸다. 엄마는 내 나이 정도에 갔던 게 마지막 일본이란다. 어언 30년 만에 가는 곳. 그때는 회사에서 패키지여행으로 간 거라 제대로 본 것도, 맛있는 것도 없어서 딱히 재미있었던 기억은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나랑 똑같은 말을 했다.


"금방 또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때 내가 스물여섯인가 그랬다, 참."




아침 7시 15분, 일본 후쿠오카로 떠나는 비행기에 올랐다. 이른 새벽부터 여행의 설렘으로 시끌시끌 북적였던 인천 공항을 떠나 가깝고도 먼 이웃 나라로 향했다. 이번 여행 기간 동안 틈틈이 그림을 그려보자 마음먹고 그림 도구를 챙겼다. 그리고 여러 로망 중 하나였던 '비행기에서 그림 그리기'를 이뤘다. 맑고 푸른 하늘과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작은 드로잉을 완성했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는 생각으로 제대로 된 카메라 없이 핸드폰과 셀카봉으로 남긴 비행기에서의 드로잉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기류에 기체가 흔들려 펜과 붓의 움직임이 곧지 못했다. 그래도 이것까지 낭만 아닐까! 다소 투박한 드로잉에 집중하며 막 그림을 끝냈을 무렵, 곧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하니 좌석 등받이를 세우고 테이블은 접어달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와, 나이스 타이밍. 조금만 더 지체했더라면 안타깝게도 로망은 실현 도중 중단되었을지도.


약 50분의 짧은 비행으로 우린 다른 나라에 도착했다. 제주도보다 가까워서 신기하고 아쉬웠다. 적어도 2시간은 진득하게 타고 싶은데 억지로 멀리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나에게 후쿠오카란〉 일본, 후쿠오카

비행기에서 내려 짐을 찾으러 가는 길, 반가운 입국장 웰컴 벽을 발견했다. 여행 전 조사하며 알게 된 후쿠오카 대표 음식 중 하나인 돈코츠라멘과 유명한 일본 약들이 우리를 맞이한다. 일본에 온 여행객들을 반기며 즐거운 여행을 빌어주는 그림을 내 마음대로 바꾸어 그려봤다. 후쿠오카에서 제일 맛있었던 함바그와 라멘, 아이스크림과 카스텔라까지. 다녀와서 그린 거지만 내가 느낀 후쿠오카가 모두 이 안에 있다.




후쿠오카 공항에서 지하철을 타고 하카타역까지는 약 5분이 걸린다. 역 2개 거리니 금방 도착이다. 오랜만에 동전 넣고 지하철 표를 끊었다. 7년 전 일본을 처음 갔을 때, 나와 친구들은 일본어로 쓰여있어 생소한 노선도를 보며 표 끊는 기계 앞에서 힘을 합쳐 천천히 발권을 했다. 일본 지하철 표 끊는 법 미리 공부하고 올걸, 하며 적당히 진땀 좀 뺐던 우리. 기억 속 그 기계 앞에서 나는 또 그때와 같이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친절한 일본인 직원분의 도움으로 무사히 표를 끊었다.


〈표를 날름〉 일본, 후쿠오카

일본 지하철 표는 미니 사이즈다. 그래서 목적지에 도착해서 나갈 때까지 잘 보관해둬야 한다. 나는 이 작은 표를 개찰구에 넣고 지나갈 때, 마치 날름날름 표를 받아먹는 기계의 입에 쏙 넣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표를 순식간에 호롭- 빨아들이기 때문일까? 실제 개찰구에는 없는 혓바닥을 내밀며 배고프다고 표 밥 달라고 응석 부리는 것 같다. 일본인들은 아마 익숙해서 모를 사소한 재미가 개찰구 입에 작은 표를 쏙 집어넣는 그 순간에 있다.




지하에서 올라와 하카타역을 나왔다. 하카타 역은 분당 서현역과 마찬가지로 쇼핑몰이 있고, 양쪽으로 출구가 뻥 뚫린 큰 역이다. 한쪽은 넓은 시내 방향, 반대쪽은 택시 탑승장과 호텔들이 있다. 현수막, 간판, 홍보물이 동글동글하거나 거친 형태의 일본어와 한자로 도배된 것을 보니 정말 일본에 온 것이 실감 났다. 정말 다른 나라에 왔다는 느낌에 신이 났다.

〈날 좋은 하카타역〉 일본, 후쿠오카 하카타역

이번 여행 내내 하카타역은 필수로 지나야 하는 관문이었다. 우리 숙소는 택시 탑승장과 호텔이 많은 방향이라 텐진이나 나카스 방면으로 가려면 꼭 하카타역을 뚫고 가야 했다. 덕분에 햇살 좋은 봄, 하카타역의 모습을 자주 눈에 담았다. 네모나고 긴 외관의 하카타역. 사람들을 와르르 뱉어냈다가 또 후르릅 들이마시는 후쿠오카의 심장. 첫날엔 설렘의 눈빛을, 마지막 날에는 아쉬움의 눈빛을 보냈던 정든 하카타역.




30년 만에 다시 찾은 이국에서의 첫날은 정말 배부르고 즐거웠다. 가려고 했던 식당은 줄이 길어 원하는 시간에 가지 못했고, 구경하고 싶던 쇼핑몰은 영업시간이 끝나 시시한 분수쇼만 보고 나올 수밖에 없었던 그 모든 것들까지 좋았다. 공든 계획을 지키려고 노력하기보다 순간에 충실하며 보낸 시간들이었다. 몇십 년의 시간이 지나 다시 온 이웃 나라에서의 낯선 하루하루는 매일이 새로운 발견이자 행복이었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