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꿈을 꾸었다. 정확히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형이 너무 웃기는 드립을 치길래 웃으면서 잠에서 깨어났다. 하지만 형은 더 이상 연락이 되지 않는다. 살아있는지도 알 수 없다. 벌써 7년이 지났다. 별 꿈을 다 꾸네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꿈이 현실이 되었다. 아까 저녁 8시쯤 아기를 달래고 있는데 친구 A가 전화를 걸어와 혀가 꼬인 채로 소리를 지르면서 형이랑 같이 있다고 했다. 며칠 전 형과 연락이 되었고 다른 친구 B와 함께 대구로 내려가 만났다는 것이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형은 나의 학부선배이다. A, B의 같은 조 선배였는데 A, B와 친했던 나는 형과도 함께 어울리게 되었다. 형과 법학관 옥상에서 처음 인사했던 날, 형은 내게 깍듯하게 인사하면서도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않았다. 외모는 흡사 정우성을 연상케 할 정도로 출중했지만 이상하게도 내향적이고 사람을 가렸던 형은 '남자답게', '형답게' 행동해야 한다는 이상한 관념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었다. 우리를 항상 친동생처럼 챙겼고 우리도 형을 친형처럼 따랐다. 형의 원룸에서 몇 달을 함께 살았는데, 형은 불편할 법한 일이 생겼을 때도 내게 단 한 번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고 언제나 나를 살뜰히 챙겨주었다.
우리는 대학을 졸업하고 각자의 길을 갔다. 어쩌다 한 번씩 만나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학생 때만큼 자주 어울리지는 못했다. 특히 나는 첫 회사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늘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어느 날 밤 형이 전화를 걸어와 B와 함께 있으니 나오라고 했을 때도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형과도 일 년에 한두 번 보는 게 전부였던 것 같다. A의 아기 돌잔치에 함께 갔고, 주말을 이용해 지방에 있는 B의 집에 함께 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살고 있으니 언제든 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형은 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유학을 가더라도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들어올 테니 곧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후 형은 소식이 끊겼다. A와 B도 형이랑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게 벌써 7년이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언제나 형을 생각했을까. 아니었던 것 같다. 형 없이도 난 잘 살았다. 간간이 A, B와 연락하고 만나면서 형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과연 살아는 있을지 씁쓸해했고, 가끔 형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고 형의 이름으로 구글링을 했으며 형이 꿈에 나오기도 했지만, 그래도 형이 없다고 내 삶이 피폐해지고 그렇지는 않았다.
그런데 아까 형이 살아있다는 걸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하고 난 뒤부터 가슴이 두근거리고 도무지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오늘 형을 만나고 자정이 한참 넘어 서울로 돌아온 A, B와 계속 통화를 하면서, 형이 그동안 어디에서 뭘 했건 살아서 다시 만났다는 것에 정말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반복하면서, 형이 우리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형과 함께한 우리의 20대는 어땠는지 하나둘씩 떠올랐다. 형과 한동안 떨어져 있었음에도 우리 마음 한쪽에는 늘 형이 살고 있었던 것 같다. 형이 우리에게 잘해준 만큼 우리도 형을 지켜주고 싶었다. 그런 형이 무려 7년 만에 살아 돌아온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다.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났지만 어찌 보면 3류 드라마 같은 청승맞은 이야기이다. 다음 주 형을 만나러 대구로 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