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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우한 환경에 불우한 남자만 만나면 잘못에 둔감해져요

불행한 경험의 중첩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게 훼손하죠

by 이이진

https://youtu.be/_o4 xo3 vvkRo? si=uWow0 qRoA2 C6 LCVi


이런 사건에서 대부분의 사람이 이해하기 힘든 건 오히려 피해자입니다. 무능력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등 가정을 책임질 능력이 전혀 안 됨에도 피해자는 가해자인 남편과 헤어지기는커녕 도리어 아이를 4명이나 더 낳고서 가정을 책임지겠다고 단란주점까지 나 가거든요.


한 명이야 잘 몰라서 낳았다 하더라도 아이가 5명을 넘어갈 때는 이미 남편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도 남았을 텐데, 따라서 주변에 남편에 대한 불만을 토로도 했으면서 왜 헤어지지 않고 계속 아이를 낳으면서 같이 산 걸까, 이해가 안 되죠, 피해자가.


이런 상황은 통상 피해자의 환경 자체가 상당히 나쁜 경우일 가능성이 큽니다. 피해자가 이미 한 차례 이혼한 것에서 봐도 이전 남자 또한 별 차이 없는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남자였을 것이며, 결혼 이전에 사귄 남자들도 비슷했을 것이고, 아마 피해자가 자란 가정환경 자체도 부친이 폭력을 행사하거나 범죄를 저지르거나 모친도 자식에게 아무런 애정이 없는 등, 그렇게 자랐으므로 본인 환경의 심각성을 쉽게 인지 못 하는 거죠.


제 경험을 요즘 자꾸 말하게 되는데, 저도 상당히 심하게 가난한 환경에서 커서, 옆옆집에서 첫째 딸이 공부를 그럭저럭 했음에도 중학교를 입학하지 않고 미성년임에도 아마도 매춘에 종사했을 것으로 생각되는 직장에 다니는 걸 봤고 (여동생들이 은연중에 화장하고 밤에 나간다 말해 주고 동생들도 학교 관둠), 딸이 많았던 집 가장도 술을 먹으면 자식들을 괴롭히는 등 환경이 상당히 안 좋았는데, 엄마가 4명인 집, 집에 가면 병든 아버지가 술 사 오라고 미성년 자녀를 재촉하는 집, 가난하니 심지어 중학교를 포기하는 집, 자식이 급사해도 부모들이 집에서 도박하는 집, 등등


따라서, 저도 대학을 들어가 중산층 이상의 정상적인 가정을 보기 전까지 제 부친이 문제인 줄은 알았지만 큰 문제라는 의식 없이 컸고, 지금도 부친은 주변 환경이 그러니 <그 시절 아버지들 술 먹고 다 그랬다> 이런 입장입니다.


피해자도 불우한 환경에서 불우한 남자들을 만나왔던 터라, 딱히 이런 환경이 큰 문제다 본인이 처한 상황의 심각성과 억울함을 간과할 수밖에 없었을 거고, 그러나 극적인 상황까지 가지 않고 해결이 되다 보니 (이번에도 살해당하기 전 가해자와 합의도 하는 등) 설마 가해자가 아이 5명을 포함해 모두 죽이리라고는 예상을 못 했던 거죠.


술을 먹고 폭행하고 무능력한데 유흥을 즐기는 수준의 악한 남성도 흔한 건 아니라도 가능은 한 수준이라면, 아이 네 명과 부인을 살해하고 집에 불을 지르는 수준의 공격성은 차원이 다르며, 피해자가 단란주점도 다니고 이혼과 결혼을 반복하며 사회생활로 남자들을 나름 경험했다 하더라도, 수준이 다른 남편의 잔인함을 간과했고, 이는 피해자가 자란 환경으로 인해 남편이 분명히 순간순간 보였을 잔혹성에 무감각해졌다 이렇게 보입니다.


저도 대학에 가서 정상적인 중산층의 가정, 가령 부모가 성적도 물어보고 같이 외식도 하고 자녀 교육을 위해 가족이 동원되고 이런 어떤 즐거운 경험과 반대로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자녀가 힘들어하는 일련의 모습을 모르고, 계속 그 가난하고 대책 없는 자식의 미래 자체를 고민하지 않는 환경 속에 있었더라면, 제 부친보다 조금 덜 폭력적이어도 좋은 남자인 줄 알고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즉 좋은 남자의 기준 훌륭한 가정에 대한 이상 자체가 낮거나 없으면, 그걸 체감할 기회 또한 없었으면, 본인이 남자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걸 모르게 되고 아이 낳고 사는 거죠.


물론 나중에는 중산층 이상 가정도 문제가 있는 경우가 꽤 있더라, 부모가 정서적으로 학대하거나, 성적으로 억압하거나 착취하거나, 인간관계를 차단하거나, 겉으로는 화목하나 폐쇄적이라거나, 외부 사람을 경계하고 찬구마저도 경쟁자로 인식하게 고립시켜 인격적 성숙을 막고 성인이 돼도 지배한다거나, 이런 걸 알게 돼, 가난하고 부유하고 가 중요한 게 아니다, 결국 나름 환경에 대해 균형 잡힌 시각을 갖게 됐으나,


어떻든, 이런 사건 피해 여성들은 불우하게 자라 주변에도 이런 남자들이 즐비해 원래 남자가 다 그런 줄 알고, 남자의 심각한 문제를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 의외로 이런 남자들이 폭력 등 문제 행동을 하고 착하게 행동하는 등 이중성이 있어, 더군다나 간과를 한 거죠. 아이 5명과 부인을 실제 살해할 정도면 심각한 상태라, 피해자 부인이 간과한 그 배경이 안타깝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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