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로 그 시대 장원급제가 13세인 이이도 있습니다
단종에 대해 다룬 영화가 붐을 이룬다고 하여, 역사를 윤리 다음으로 좋아하는 저로서는 한 번 볼까 싶기도 한데, 단종이 10세에 즉위하여 왕에 오르기에 이르지 않냐, 지금 나이로 초등학교 5학년이다는 얘기들이 제법 있으나,
율곡 이이는 13세 가량에 국가 고시에 합격했고, 최치원은 12세에 당나라에 유학을 가 중국에서 직위를 가졌을 만큼, 그 시대에 10세는 어리기만 한 건 아닙니다. 그 시대에 최치원 혼자 당나라에 유학을 갔을 정도니까, 지금 시점으로 보면, 모든 게 이해가 안 가는 거죠.
이이가 아무리 훌륭한 인물이었다 할지라도 왕이라는 결정권을 갖는 것은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하는 게 사실이라, 국가 고시 합격과 왕을 비교하는 것에 무리가 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도 13세에 즉위를 했으므로, 다시 말씀드리지만, 현대로 오면서 아이를 키우는 기간이 너무 늘어났다, 너무 많이 늘어났다,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영화를 보진 않았으나, 혈통적으로 완벽했던 단종이 왕좌에서 끌어 내려져 유배를 간 뒤 자살 혹은 타살로 생을 마감한 건 상당히 이해할 수 없는 일로서, 세조는 가까운 친척으로 단종을 보필해도 됐을 텐데, 왜 조카를 끌어내리는 결정을 했을까, 참으로 의구심이 생기죠.
세종의 아들 문종도 외아들 단종을 얻기까지 상당한 고초가 있었던 것처럼, 왕들 중에는 후사가 생기지 않아 고심하는 일이 꽤 있는데, 왕이 여자를 못 구할 것도 아닌데도 후사가 잘 안 생기는데, 영조도 40에 아들을 하나 얻어 결국 죽인 것처럼, 세종대왕은 그 많은 업적을 남기며 후손도 꽤 만들어서 인상적인 왕입니다.
실제로 왕족인 전주 이씨 가문에서 가장 후손이 많은 것은 세종의 둘째 형이자 나중에 출가를 한 효령대군으로, 지금도 가장 활발한 종친이 있다고 하고, 이런 걸 보면, 세종대왕 형제들은 혈통을 만드는 것에 나름의 열정이 있었다고 생각이 되네요. 그러나 결국 단종의 유배와 사망으로 그 적통성이 깨지고야 말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