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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을 침략전쟁으로만 보지 말고 근대 관점에서 보면

일본의 1000년 수도가 바뀌고 지배 계급도 바뀌죠

by 이이진


며칠 전이 추석 막바지라 한국 영화를 ocn에서 주르륵하길래 저도 주르륵 한 번 봤습니다. <명량>에서 <시민덕희>에서 <콘크리트 유토피아>까지 죽 봤네요. 보통은 제가 워낙 사건도 많고 포스팅도 많이 하고 이걸 또 블로그로도 정리해서 올리고 하다 보니까, 글 쓰기 자체로도 바쁘다 보니, 영화 한 편 제대로 보기가 쉽지 않은데, 어제는 맘 잡고 한 번 다 봤습니다. 마침 제가 보고 싶었던 영화들이기도 했고요.


사실 <명량>을 비롯해서 일본이 한국에 <왜란>을 일으킨 당시를 영화나 각종 콘텐츠로 만든 것들이 많긴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 이순신 장군이 결정을 내림에 있어 고독하게 맞이해야 하는 부분 등을 조명하면서 인기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현대의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이런 여러 전쟁을 보더라도 (이 전쟁도 2년이 넘어가죠), 저는 전쟁이 바로 공격해 들어가서 치고 나오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서로 대치하면서 계속 압박을 가하는 상당한 심리전이라는 생각이 들고, 이런 면에서 보면 한국과 북한이 이렇게 70년 가까이 전쟁을 대기하는 자체도, 유럽의 100년 전쟁처럼 기록이 되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도 116년 동안 전쟁을 했다고 하면, <와,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한국도 그렇게 보면 70년 이상 내전을 치르고 있는 거죠. 임진왜란도 2년이다 12년이다 말 많고, 지금의 수많은 전쟁을 봐도 그렇고, 전쟁이 단번에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70년이면 그래도 긴 편에 속하니까 한국 전쟁이 상당한 압박 상태다 이렇게 보는 건 맞는 거 같고요. 여하튼 전쟁은 시작하면 끔찍한 고통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봐야겠네요.


다시 임진왜란으로 돌아와서, 저는 임진왜란이나 이런 것들을 한국이 일본에 침략당한 역사다 이렇게만 보진 않고, 일본 그러니까 동아시아의 변화 관점에서도 봅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기록에 따르면 통상적인 지배 계급이 아니었으며 농민에서 출발했다고 하고 통일 이후 세력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고 분석되지만,


글쎄요,


자기를 지지하는 세력을 전쟁에 보냈다면 국내를 통치할 때 반발 세력이 주도권을 잡아 국정 운영이 쉽지 않았을 테고, 자기를 반대하는 세력을 보냈다가 만약 업적을 세우면 역시 지지 기반이 흔들리는데, 과연 통일 이후 불만 세력을 잠재우려는 목적이었을까, 납득이 안 갑니다. 지지 세력과 반대 세력을 골고루 보낼 경우, 전쟁에서 합치가 쉽지 않았을 터라, 이것도 그다지 설득력이 없습니다.


전쟁을 일으키는 입장에서 질 것을 예상하기는 쉽지 않으므로 이긴다고 가정하고, 업적을 세우도록 지지 세력을 보냈을 가능성이 일단 큰데, 따라서 전쟁 중에 이미 국내에 지지 세력의 상당 부분이 없었을 것이고 전쟁에서 패하자 도요토미 히데요시 세력이 급감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 즉 에도 막부 시대가 열렸던 것을 보면,


뭐랄까,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를 이룬 계기의 발판이 마련되는 느낌이 들고, 헤이안 시대라고 하여 평안 시대라 불렸던 교토 수도 1000년의 시대가 마감하고 동경 즉 에도로 수도가 이전하는 변화가 감지되기도 하는 거죠. 한국은 한양 그러니까 서울이 수도가 된 게 조선 왕조로부터 현대 까지로서 700년쯤 된다고 봐야 하는데, 일본은 임진왜란 이후 수도를 바꾸고 경제 체제와 지배 계급이(?) 바뀌면서 근대화에 상대적으로 빠르게 안착할 계기를 마련하게 된 거죠.


그리고 이 지점에서 생각하면 뭔가 일본 자체 역사에서 일종의 관점 변화 같은 게 보이는데, 왜냐하면 1000년 교토 수도 시대를 일본인들은 평안 시대라고 하여 아름답게(?) 기억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걸 왜 동경으로 옮겨야 했을까, 교토는 분지로서 지진 등 자연재해에 상대적으로 안전하나 반면 도시가 확장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고 동경은 확장 가능성과 여러 편리성이 있긴 하지만, 여하튼, 의미심장합니다. 근대화 과정에서 동아시아가 이전 역사에서 보기 힘든 복잡한 갈등 상황에 놓이게 되기 때문에, 갈등의 근저를 바라보자면, 이 사건을 한국이 일본에 침략당했다 이 관점에서만이 아니라 다양하게 봤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콘크리트 유토피아>도 봤는데, 주인공 박보영 배우가 맡은 역할이 저는 참 납득이 안 가더군요. 개인적으로 저는 이런 타입의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 게 오직 본인의 양심을 위해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 나쁜 짓을 하게 만들고 아무런 대안은 없이 결국 남편과 도망쳐서 남편은 죽고 자기는 새로운 이방인들과 터를 잡는 게 결론이기 때문입니다.


이병현 배우가 연기했던 주민 대표의 방향이 마음에 안 들었다면 그러나 맞설 용기가 없었다면 남편과 그 지역을 떠나 애초에 다른 곳에서 터를 잡아 시작하거나 (즉 남편이 칼에 맞으며 생명이 위험해질 때서야 떠날 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든 이병헌에게 맞설 실질적인 궁리를 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이병헌의 방식이 아닌 방식으로 살아남을 방식을 고민하거나, 남편은 남고자 했다면 스스로라도 신념을 위해 떠났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작 남편이 먹고살기 위해 온갖 끔찍한 짓을 저지르는 것에 대해 분명히 알고도 암묵하고 자신의 생존을 위해 남편의 부정한 도움을 받아가며 살며 그러나 틈틈이 양심에 위배되지 않을 정도의 소소한 봉사 활동만 하다가, 대표자 이병헌이 미치광이가 되는 지점에서 아무런 대책도 없이 다른 주민을 앞세워 치부를 공격하여 결국 그 비밀을 공개한 주민만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죠.


이병헌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체계적으로 이를 비판할 준비를 하던가, 적어도 남편과는 상의를 하던가, 아니면 다른 주민의 도움 없이 총대를 혼자 매던가 해야지, 결국 이병헌도, 도움을 준 주민도, 남편도 모두 대책 없이 죽고, 이병헌이 돌보던 자기 엄마가 아닌 노인도 이병헌의 죽음으로 곧 굶어 죽을 거고, 자기만 살아남아 외지인들과 터를 잡죠.


박보영 캐릭터는 <이런 끔찍한 재난 상황에서 인간이 양심을 버리면 악마가 된다>를 자신의 신념으로 삼은 채, 그러나 자신도 그 신념을 위해 남편과 주민과 이병헌의 거짓 모친까지 죽게 하고는 이어서 아마도 주민 대부분이 서로를 죽고 죽이게 되는 분열 상황으로 치달을 상황을 만들어 놓고, 홀연히 다른 외지인들에게로 떠난 겁니다. 남편이 이병헌을 너무 믿고 따르므로 그 치부를 말해봐야 소용이 없었을 것이라는 전제는 결국 남편도 설득할 자신이 없으면서 이병헌을 따르는 그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이냐는 난제는 아예 고려하지 않은 단순 분노에 의한 폭로에 불과하고, 결국 주민 모두가 죽음으로 향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문득 <한국이 싫어서>라는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그 영화에서도 주인공은 자신의 양심(?)을 위해 한국의 각종 병폐를 뒤로 하고 홀연히 한국을 떠나게 되는데, 왜 그 주인공은 한국의 각종 병폐를 한 번이라도 정면에서 마주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꼭 소송하고 이의 제기하고 그렇게 까지 안 하더라도 바라보기라도 해 봐야지 싶고), 심지어 남자친구마저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 전제하고 가장 비난하는 존재로 만들었을까, 이해가 안 갔고, 물론 저도 어려서는 부당한 상황에서 일단 눈 감고 툴툴거리기만 하고 그랬었으나,


그렇다고 <한국이 싫어서>, <동네 주민이 싫어서> 외국으로 혹은 외지로 떠나 외국이 대안이다, 다른 도시가 도피처다 생각한 적도 없기 때문에, 박보영 배우가 보여주는 주변 가까운 사람을 모두 죽음으로 몰아넣고 자신만 외지인과 함께 하는 결론이 <한국이 싫어서>와 어느 부분에서 통하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런 결론은 어딘가 끔찍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온갖 악행(?)으로라도 자신을 살리려고 했던 남편에게만큼은 이병헌의 치부에 대해 사전에 고지를 하고 의견을 구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남편을 믿을 수 없었다면, 남편이 절대 설득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면, 저라면 그냥 이병헌의 치부를 사람들이 스스로 알도록 놓아둔 채, 남편을 두고 혼자 떠났을 겁니다. 그랬더라면 남편도 살고, 주민도 살고, 했겠죠. 자기가 사는 것은 불확실했겠지만 사람을 죽이는 건 안된다는 게 자신의 신념이라면 자신이 죽을 수 있는 길을 택해야지 남을 죽이고 자기가 사는 결정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가끔 조선시대 문학가들 산문을 읽어보긴 하는데 시간 나면 이순신 장군 <난중일기>도 한 번 읽어보고 싶긴 하네요. 개인적으로 전쟁 중에 일기를 쓸 정도면 대단히 꼼꼼한(?) 성격인 거 같고 왕이 있던 시대에는 아무나 기록물을 남길 수가 없기 때문에, 이 지점도 신기한 거 같고 그렇습니다. 지금처럼 자기 기록이 가히 미쳤다 싶을 정도로 난무하는 시대를 사는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겠죠. 정말 세상에 읽을 것도 너무 많고, 볼 것도 너무 많고, 들을 것도 너무 많고, 쓸 것도 너무 많아서 미칠 거 같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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