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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인사이트 Nov 20. 2020

고3 동생과 함께 산다는 것

누구에게나 힘든 시절이겠지만, 그래도 행복하길 바란다.

 


 

11월 19일. 벌써 2020년이 끝나간다. 백화점은 크리스마스 준비를 가장 먼저 마쳤고 마스크로 입과 코를 가려도 연말 분위기는 스멀스멀 풍긴다. 누군가에게 11월 19일은 14일 남은 날이다. 수능까지 14일. 동생이 고3이라서 알고 있는 거다. 나에게 수능이 남의 단어가 된 지는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나이 차이가 꽤 나는 귀엽고 어린 동생이 수험생이고 나는 동생의 수능을 응원하는 어른, 제삼자다. 수능이 2주 정도 남은 시점에서 나는 독서실에서 돌아온 동생에게 간식을 건네거나 모의고사를 대신 프린트해주는 정도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학창 시절 내내 수능이 인생의 전부인 줄 알았다. 특별한 예술적 재능도, 흔한 반항심도 딱히 없었기에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 만이 정답인 줄 알았다. 고등학생이 되고 공부를 좀 잘하는 축에 속하면서 나는 거만해졌다. 고등학교에서 지위를 결정하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성적만큼 눈에 잘 보이고 효과적인 것도 없다.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중간고사를 보던 날을 기억한다. 전교 석차가 나왔고 누가 전교 몇 등인지 아는 건 쉬웠다. 내 입으로 말하긴 부끄럽지만 나는 좀 주목을 받았는데, 그전까지 무시하는 투로 '너 이거 풀 수 있냐?' 하며  21번 수학 문제를 들이밀던 애가 그 후로는 모르는 문제를 알려달라며 사근사근 찾아왔다. 중학교 때는 내내 전교 등수가 삼백 등대였기 때문에(한 번도 공부로 기대받아본 적 없기 때문에),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중간고사를 기점으로 주변에서 일어난 변화를 민감하게 감지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관심은 중요하다. 누가 나를 어떻게 보든 나의 길을 간다, 할 수 있으면 좋겠다만 그게 말처럼 쉬운 건 아니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이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고등학생 때의 나는,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알아서 누가 무시하던 신경 쓰지 않는, 쿨한 인간은 못되었다. 좋은 성적을 유지하는 내 곁에는 우호적인 분위기가 당연했고 딱히 노력하지 않아도 주변에 친구들이 있어줬다. 공부를 잘 못했던 중학교 시절에도 친구들과 잘지냈지만, 은근한 기대감과 부러움을 사는 눈빛과는 결이 달랐다.


좋은 성적은 좋은 점이 많았다. 높은 등수는 학급 내 존재감에 바로바로 영향을 줬고 부모님, 친구들, 학교 선생님, 학원 선생님은 우호적인 태도로 기대를 품었으며 1등급은 왜인지 앞으로의 인생에 성공을 보장해주는 것만 같았다. 성적과 자존감은 쉽게 직결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입시를 겪으며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라면 이런 나를 속물적이라고 비난하기 쉽지 않을 거다. 학교에서 성적으로 지위가 결정되는 건 너무나 보편적인 레퍼토리니까. 모두 똑같은 교복을 입고 있는 탓에 각자의 개성은 보이지도, 발굴해줘야 할 것도 아니었으며 드러내기도 어려웠다. 일찍이 대학에 입학하는 게 자기 갈 길이 아니다,라고 결론 내린 친구들은 쉽게 공교육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학년이 올라가 수험생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을 때, 나의 생활을 요약하면 이렇다. 6시 반에 기상해서 출근하는 아빠 차를 얻어 타고 등교한다. 오전 자습, 수업, 점심시간엔 집에서 싸준 도시락을 먹으며 자습, 수업, 하교, 시간을 아끼기 위해 저녁은 자주 혼자 먹었다. 그리고 독서실, 새벽에 데리러 온 엄마와 함께 귀가. 하루 평균 12시간의 순공 시간을 채우며 달렸다. 엄마 아빠 할머니를 아주 그냥 부려먹으면서. 감사할 줄이라도 알았으면 이렇게 부끄럽진 않았을 거다. 나는 내 성적을 무기 삼아, 고3을 벼슬로 가족에게 함부로 요구하고 당연한 듯 받아먹었다. 밖에서는 짐짓 의젓한 척을 했지만 집에서는 예민 보스였고 조금만 건드려도 소리를 빽 질렀다. 쉽게 상처 주는 말을 함부로 뱉었다. 어리광 수준도 아니고, 그냥 추했다고 생각한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태어났을 적부터 맞벌이를 하셨기 때문에 나는 거의 할머니 손에 자랐다. 그러다 보니 엄마가 대한민국 학부모 세계에 무지한 것에 대해 불만을 품었고, 좋은 성적을 꼬박꼬박 받아오게 되자 나는 엄마 아빠의 무관심 속에서도 이렇게 성과를 내고 있으니까, 내 요구를 들어줘! 하는 보상심리도 아닌 이상하고 비뚤어진 마음이 자리 잡았던 것 같다. 실제로 부모님이 무관심했던 것도 아니고 전혀 불만을 가질 만한 가정환경도 아니었다. 다만 절대적으로 부족한 수면시간과 운동량이 삼 년간 이어졌으며, 성적 스트레스가 심해 자주 헛구역질을 하고 위염약을 먹었다. 수능 앞에서 정신과 육체 모두 정상의 범주에선 벗어나 있었다. 성적비관 자살은 도시괴담이 아니다. 모의고사 등급이 인생의 등급인 양 벌벌 떨고,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는 말도 못 하게 날을 세우면서 그 모든 예의 없는 행태를 모두 성적을 무기로 흡수시키는 현실이 있었다.


이제 동생 이야기를 좀 해볼까. 동생은 나와 많이 다른데, 간단히 말하면 좀 느긋한 편이다. 사실 그 정도만 해도 대단한 건데 우리나라 수험생들은 대단 수준을 넘어 공부하는 기계처럼 하루하루를 보내니까 언제까지나 상대적인 평가다. 부모님은 종종 동생이 내가 했던 만큼 열심히 하지 않는 모습에 불안해하신다. 늦게까지 잠을 자다 점심시간이 되어 일어난 동생을 두고 엄마, 아빠, 할머니는 큰일이 났다며 나보고 한마디 하라고 눈치를 줬다. 부은 얼굴로 점심 식탁에 앉은 동생에게 아빠가 결국 버럭 했고 눈물 대잔치가 시작됐다. 엄마, 아빠, 할머니의 기대와 달리 나는 적극적으로 동생을 옹호하는 포지션에서 항변했다. 동생이 나처럼 십 대의 마지막을 보내지 않고 있는 것이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수능이 끝나고 나서 너무 불행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목표하던 대학에 들어가는 것의 가치를 폄하하려는 건 아니다. 그건 분명, 누군가의 인생에게는 큰 성취이고 또 정답일 수 있다. 그런데 자기가 얼마나 힘든 수험생활을 보냈는지 설교하며 그렇게 살면 좋은 대학이 보장되고 그 결과로 지금 날 봐, 스타강사가 되어 스포츠카를 끌고 다니지 않냐! 인생 성공하지 않았냐! 세상은 이렇게 굴러가는 거다! 하며 틈만 나면 공부 자극 스토리를 풀던 인강 강사들이 생각난다. 고등학생을 대하는 어른들은 종종 세상을 등에 업고 설교했다. 세상이 다 그런 건 아닌데. 얼마 전 들은 동창의 소식에서 누구는 미용사가 되었단다. 누구는 패션 브랜드를 론칭했고 누구는 힙합 앨범을 냈단다. 각자의 인생은 각자의 방식으로 이어진다. 이 단순한 사실을 왜 몰랐을까.


동생은 친구들이랑 가끔 놀러도 다니고 연애도 한다. 고3인데 자주 웃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족에게 날을 세우지 않는다. 마음이 건조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목표하는 대학에 합격하면 너무 좋겠다만, 수능을 망쳐도 인생을 망치는 게 아니라는 걸 아는 모양이다. 엄마한테 신경질 한번 안내는 동생을 보면서 나는 매일 배운다. 쟤는 나보다 한참 어리지만 한참 성숙하다. 점심을 먹다 말고 눈물 대잔치가 열린 날, 울면서 별 얘기를 다하다 자기는 어렸을 때부터 나를 보면서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결심했단다. 그런 말을 반면교사 삼은 사람을 앞에 두고 하다니 참 당돌하다. 근데 뭐, 맞는 말이라 부끄러워서 할 말이 없더라.


고3 동생에게 조용히 간식을 건네주면서, 요즘 자주 나의 학창시절을 돌아본다.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가장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던 시절을 반추하며 동생은 그러지 않음에 안도감을 느낀다. 결과가 어떻든 상관없다. 이미 충분히 잘했고, 고맙고 대견하다. 나랑 같이 서울로 대학을 다닌다면 정말 좋겠다만, 하하. 사실 별로 상관없다. 나보다 인간이 먼저 된 어린 동생은 자기 인생을 자기 나름의 속도로, 자주 웃으며 걸어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수능을 2주 앞두고 많이 긴장하고 있을 텐데, 수능 잘 봐라. 근데 그것보단, 행복하길 바란다.

 

 


 

 

글 -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송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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