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와요 속초항에"

by 아트인사이트


20220712175120_ueoevnhz.jpg


그해 여름휴가는 조금 이상했다. 버스에 올라탈 때부터 여행의 시작이 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흥적으로 떠난 여행이었다. S와 가는 첫 여행이기도 했다. 여행 일주일 전에 부랴부랴 가는 버스와 숙소를 예매하고, 인사이동으로 어수선한 회사에다 휴가를 쓰겠다 이야기했다. 그리고 속초에 가는 날까지는 앉은 다리가 저릴 때까지 일만 했다.


속초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싣고서야 숨이 제대로 쉬어지는 거 같았다. S와 머리를 맞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지나버린 우리의 소식을 정리했다. S는 지금 있는 회사에 계속 있어야 할지를 고민했고 나는 다른 부서로 발령 난 지금이 삶의 어떤 시점인지 몰라 방황하고 있었다. 희망편인지 절망편인지 모르겠어.

그래도 일단 그런 건 다 잊고 일단은 바다를 보러 가자며 둘은 어깨를 들썩거렸다. 나눠 낀 에어팟 사이로 좋아하는 음악이 나왔고 노트북이 없는 가벼운 가방 덕분에 콧노래가 나왔다.


하지만 서울을 채 벗어나지 못한 채 버스는 멈췄다.

사전 설명 없이 벌어진 돌발 상황에 버스 안은 승객들의 웅성거림으로 가득 찼다. 곧 경찰들이 올라탔다. 경찰들은 좌석을 몇 차례 둘러보더니 어떤 남자와 함께 내렸다. 남자는 별 저항도 없이 터덜터덜 계단을 내려갔다.

주변을 둘러보던 의아한 눈길들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버스는 잠깐 으르렁대다 출발했다. 도로에 서 있던 경찰차는 순식간에 멀어졌지만, 짐 하나 없이 몸 하나만 덜렁 싣고 가던 남자의 뒷모습이 계속 생각났다. 남자의 사정이 궁금했다. 우리는 어깨를 맞대고 이야기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20220712175039_vksfbmra.jpg


“우리 여행 진짜 이상하다 그치.”

“엉, 공포영화 도입부 같애. 우리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까?”


조잘거리던 목소리가 점점 늘어졌다. 아침부터 움직인 분주한 몸과 그간 쌓인 피로들이 눈꺼풀을 무겁게 짓눌렀다. 안정적으로 움직이는 버스가 지친 몸을 흔들었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버스 속에서 깜빡 잠이 들었다. 잠깐 눈을 뜬 곳은 휴게소였다. 버스 옆자리에 세워진 트럭에는 잔뜩 녹슬어버린 어린이용 놀이 기구가 실려있었다. 다시 눈을 감으면서 ‘정말 이상한 여행’이라고 생각했다.


속초에는 무사히 도착했다. 내리니 층이 낮은 건물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 있는 나지막한 동네가 우리를 반겼다. 차는 다음날 빌리기로 하고, 우선은 숙소까지 가는 택시를 잡아탔다. 트렁크에 캐리어 두 개를 뚝딱 실어준 택시 기사가 반가운 얼굴로 입을 연다. S의 얼굴에는 벌써부터 피로감이 어렸다.


“어디서 오셨어요?”

“서울이요.”


그리고는 한동안 택시 기사의 음식 지론이 펼쳐졌다.


“음식은요. 자기가 응, 오래 살던 동네 있잖어요. 거기에서 딱, 으응 따악 40킬로 내에서 나는 음식이 젤 잘 맞는다 하드라고요. 내가 여기서 택시 기사를 함서 싸우고 갈라져가지고는 택시 타는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봤겠어요. 그 사람들이 싸우는 이유가 뭐게요. 아가씨? 응 뭐겠어요.”


아무래도 S는 대답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내가 대신 입을 열었다.


“음식?”


택시 기사가 몸을 쭉 돌려 우리 쪽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남자가 진천 사람이요. 여자는 강원도 출신이라 둘이 휴가를 속초로 왔대요. 그런데 여기서 남자가 전날 술을 퍼질러지게 먹고는 뻗었어. 그러구 난 담에 여자두 그럼 우리 해장을 하자구선 가게를 찾아요 막. 그런데 여자는 항구 사람, 남자는 뭍사람이지. 음식이 다른 거예요 음식이. 여자는 이 근방 짠내나는 땅에서 20년은 족히 살았고, 남자는 진천에서 움직여 본 적이 없대. 남자는 그냥 뜨끈한 순대국 하나 말아먹고 싶은 거예요. 근데 여자는 물곰탕. 알어요? 그 곰치라구 퉁퉁한 물고기 있어요. 그거를 먹고 싶다고 했대요. 남자는 그걸로 해장이 안 된다. 여자는 여기까지 왔는데 그거 하나 못 먹어주냐 이렇게 쌈이 붙었어요. 그래서 여자가 결국은 갈라서자. 이렇게 해서 그 날 제 택시를 잡은 거죠.”


그니까 요지는 뭐냐면 아가씨가 제일 편한 음식을 먹어요. 공연히 응. 타지 왔다고 기분 낸다고 무리해서 못 먹고 맛없는 음식 먹지 말고. 나야 뭐. 여기서 한평생을 살았으니 식탁에 생선 없으면 수저를 못 드는데 뭐…….

20220712175212_gxufdrlk.jpg


진천, 물곰탕, 40km. 나는 휴대폰을 들고 택시 기사가 말하는 이야기 중에서 몇 개의 단어를 주워 담는다. 편한 음식을 먹으라는 말에 마음이 울렁거렸다.


그 시기의 나는 통 음식을 못 먹었다. 마음이 불편했고, 먹으면 가슴께에 꾹 하고 얹혀서 그대로 썩는 느낌이 들었다. 그 해초부터 예고된 인사이동이 가장 큰 변수였다. 차라리 닥쳐서 알려줬더라면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알게 된 것, 어쩔 수 없었다.

그냥 인사이동이라면 몰라, 팀이 해체된다는 것을 통보받은 이후 마음이 끊임없이 들끓었다. 그리고 팀이 바뀐 후 한 달이 지난 그 시점이 고난의 절정을 찍었다. 먹고 싶은 것이 없었고 늦게까지 잠을 자지 못했다. 이러다 죽겠다 싶어서 어수선한 회사 상황에도 과감하게 휴가를 냈던 것이다.


멈춰버린 식욕이 말썽일까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속초에서는 잘만 먹었다. 별다를 것도 없었다. 서울에서도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인데도 하나도 걸리는 것 없이 잘 들어갔다.


“서울 독이 빠지나 봐.”

“그러게 우리 왜 이렇게 많이 먹어.”


처음으로 내내 품던 노트북 없이 떠난 여행이었다. 어떤 계획도 세우지 않고 그날그날 가고 싶은 대로 발걸음을 옮겼던 그런 시간. 우리는 길 가다 마음이 드는 풍경이 보이면 지체 없이 차를 세우고 한참 그 풍경을 구경했다. 어떤 산 중턱이기도 했고 해안 도로이기도 했다. 어느 카페 앞이기도 했고 전봇대 앞이기도 했다.

정해지지 않은 것이 무섭고 불안한 내게는 모든 것이 새로운 즉흥 여행이었다. 특히 미래가 한없이 불투명했던 그 시점의 나에게는 더욱 그랬을 것이다. 정해진 것이 없어도 어떤 것도 잘못되지 않았고 어떤 것도 무너지지 않았다. 불안이 없는 마음이 얼마나 고요한지 잊고 살았다는 것이 놀라웠다.

20220712175009_gzabcxuu.jpg

기묘한 속초. 기묘한 여행. 사람들은 무엇에 쫓기듯 다급하게 행복을 외치는 가운데 걷는 사람은 오직 우리뿐이었다. 느닷없이 비도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길거리에 얼굴을 빼꼼 내밀고 택시를 잡으려 손을 흔들다 우리밖에 없는 텅 빈 거리를 보고 웃었다.


숙소까지는 걸어가기로 했다. 매운맛 치킨을 먹어 아려오는 배를 안고 비 웅덩이를 밟으며 걸었다. 우산에서 떨어진 물이 소매를 적셨다. 우리는 헤엄을 멈추고 항구에 뿌리를 내린 배 사이를 가로질러 건너갔다.

가로등은 드물게 있었지만 무섭지 않았다. 지나치게 조용한 항구에서는 멸망한 도시의 냄새가 났다. 아침이면 거짓말처럼 다시 움직일 항구를 오래오래 구경했다. 항구 근처에 있던 밥집의 이름이 자꾸 기억에서 꿈틀거린다. ‘돌아와요 속초항’.


속초의 순우리말 이름은 풀묶음이라고 한다. 나는 두고 온 것 하나 없는데, 왜 자꾸 그때의 시간들이 떠오를까. 마음을 묶어두고 와 자꾸만 돌아보게 되나 한다. 이번 휴가는 속초로 돌아가 볼까……. 다시 가슴이 두근거린다.

20220712175432_cydpibmw.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는 관계가 어려운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