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말하기와 듣기에 대하여

[도서] 지나친 고백

by 아트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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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말하기와 듣기에 대하여


아마존과 CNN이 선정한 2020년 최고의 책




비울수록 충만해지는 고백의 진실

에세이스트 크리스티 테이트의 폭발적 회고록



여성의 몸과 생애, 섹스, 감정과 욕망을 경험한 그대로 기록해온,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아니 에르노처럼 자기 고백적 글쓰기는 꾸준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저자의 용기 있는 고백이 읽는 이로 하여금 해방감을 선사하고, 읽는 이의 욕망 혹은 목소리와 동일시되어 공감과 연대를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여기, 그의 뒤를 연결하여 잇듯 자신의 목소리 내기를 주저하지 않는 여성 작가들이 고유의 이야기를 들고 세상 밖으로 나오고 있다.


저자 크리스티 테이트는 첫 책 [지나친 고백]을 출간함과 동시에 '아마존 에디터가 뽑은 2020년 최고의 책', '뉴욕타임즈 논픽션 분야 베스트셀러' 등으로 선정되며, 현재까지 미국에서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수많은 여성 서사와 에세이 사이에서 그의 이야기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그가 자신의 모든 비밀을 남김없이 폭로하는 데에서 오는 촌철살인 유머와 아주 조금도 꾸미지 않은 생각을 독자와 공유하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의 몸과 욕구에 관해서 이처럼 솔직하게 말했던 작가는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크리스티의 경우, 페미니스트 교육을 받고 여성을 위해 법률 자문을 줄 수 있는 변호사가 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으며, 그룹 상담을 몇 년째 받았음에도 유부남에게 이끌려 비밀스러운 연애를 하면서 자기합리화를 즐겼다. 성적으로 자신을 학대하는 애인에게 끝까지 목소리를 내지 못했으며, 부모님에게는 수년간 그룹 상담을 받고 있다는 고백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머뭇거림과 실패, 두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타인과의 애착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독자의 응원을 이끌어낸다.


누군가와 허심탄회한 대화를 하다 보면, 우리 모두 어린 시절에 겪은 불의의 사고와 성적 트라우마, 부모와 교육의 억압으로 인해 주눅 든 성격의 일부분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이런 대화를 소수의 사람과 속삭이듯 수치심을 가지고 이야기하지만, 크리스티는 자신의 이야기를 몸을 낮추거나 귓속말로 얘기하지 않고 큰 소리로 떠들며 공유한다.


지금껏 세상에 나온 여성들의 강력한 목소리 중에서도 크리스티 테이트는 노골적이지만 과장하지 않고, 과감하면서도 건방지지 않은, 언젠가 따라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방식으로 우리의 내면을 일깨운다.




수치심과 트라우마, 왜곡과 중독...

우리가 최선을 다해 속마음을 털어놓을 때

진정한 사랑과 이해가 가능하다



크리스티가 오랜 시간 겪은 거식증과 구토 증상은 이 책에서 비유적으로 읽히기도 하는데, 아마 그가 입 밖으로 말 대신 음식물을 토해내는 장면이 수치심에 의한 생생한 고통의 체험으로 끌어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크리스티를 응원하다보면, 그 응원에 힘입는 대상이 크리스티가 아닌 나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 오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저자와 독자는 서로를 끈질기게 응원하며, 사랑으로 충만해진다. 수치심과 트라우마의 근원이 어디이며, 나를 둘러싼 뼈아픈 기억들이 나를 어떻게 괴롭히는지 철저한 해부를 거쳐 "진짜" 나를 발견한 후에 진정한 사랑과 응원이 가능해진다.


알고 있었지만 차마 꺼내지 못한 나의 수치스러운 감정.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 알 수 없어 알아채지 못한 분노와 외로움. 우리는 여전히 여러 가지 감정에 대한 금기. 예의. 사회의 암묵적 분위기. 우리는 검열과 무지에 얽매여 선뜻 입을 떼지 못하고 있다. 부정적인 말은 언급하지 않는 것이 관계를 지키는 법이라고, 비밀을 폭로하는 일은 나의 약점을 내어주는 일이라고 배운 우리에게 크리스티는 관계의 매커니즘과 진실을 몸소 보여주며, 그동안 우리가 스스로의 입을 막고 있었던 사실마저 폭로한다.


이 책은 폭로하기, 분노하기, 마주하기가 선행될 때 진정으로 나를 알아가고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공표한다. 안정감과 완전한 사랑을 꿈꾸는 우리 앞에 아무리 클리셰적인 문장과 장면들이 쉽게 떠올라 진실을 가릴지라도 크리스티의 사랑스러운 고민과 유머러스한 문장은 끈질기게 우리를 내부로 끌어당기며 놓지 않는다.




서로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어느 그룹의 웃음 나는 성장기



"크리스티한테 필요한 건 치유가 아니에요. 지켜봐줄 사람이죠."(73쪽) 상담사에게서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이 위로의 한 마디가 로젠 박사의 입에서 나올 때 우리는 다른 기대감을 품게 된다. 로젠 박사의 심리치료 그룹에서는 '비밀'을 갖고 입을 꾹 닫은 사람을 마치 폭탄을 쥐고 있는 위험인물로 간주한다. 그의 한마디에 크리스티는 아침과 저녁으로 그룹 멤버들에게 전화를 걸어 '하루 동안 먹은 것'을 보고하고, 둥글게 모여 앉은 그룹의 동료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전시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그의 조언은 성가시고, 웃음이 나고, 심지어는 연극적이어서 의심의 눈초리를 받지만, 미션을 완수하고 나면 분명 심경에 어떤 변화가 나타난다. 그룹 동료들에게 전화를 걸어 나름의 비밀을 고백한 시간이 쌓인 후, 크리스티는 비밀은 물론 거식증과 구역질에서 해방되고, 종종 그들과 함께 맛있는 저녁을 먹으러 가곤 한다. 이들이 주고받는 짜증과 분노, 질투라는 감정은 지나가는 현상에 불과하지만, 서로를 사랑하고 믿는 마음은 켜켜이 쌓여 관계의 증거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내 문제가 뭐든 그걸 해결하려면 훈련 과정에서 사람의 심장을 해부해본 적이 있는 누군가의 기술이 필요할지도 몰랐다. 어쩌면 로젠 박사에게는 내게 해줄 조언이 좀 있을지도 몰랐다. 상담 한 회기나 두 회기 동안 나눠줄 수 있는 뭔가가. 어쩌면 그는 내 절망을 누그러뜨리고 심장에 칼집을 내줄 알약의 처방전을 써줄 수 있을지도 몰랐다.(31쪽)


다수의 사람 앞에 서자, 상처 하나 없던 크리스티의 심장에는 '샵(#) 부호들이'(30쪽) 생겨나기 시작한다. 상처에 그 순간들을 혼자 버텨내라고 했다면, 크리스티 역시 도중에 그룹을 뛰쳐나왔을 것이다. 크리스티에게는 그를 돕는 수많은 손길이 있었다. 그들은 제대로 된 관계의 기능 속에서 크리스티의 몸을 "위로, 위로, 더 위로 들어올리게 도와줄 어떤 영혼이라도 불러내기 위해 다같이 애를 썼다."(121쪽)


사생활은 보호되어야 하고, 개인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현시대에 로젠 박사의 그룹은 구시대적이고, 비문명적인 모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반대로 지극히 인간이 맺을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관계의 세계가 이들 안에서 형성되었다는 사실을 반증하기도 한다.




크리스티 테이트 Christie Tate



수필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욕망과 감정을 솔직한 어법으로 기록하는 것에 몰두하며, 활발하게 회고록을 출간하고 있다. 대형 로펌 스캐든 압스와 앱스타인 베커&그린 등을 거친 후, 연방정부 변호사로 일했다. 10년 가까이 집단 상담에 관한 글을 쓰고 있고, 이십 대 중반부터 이어온 집단 상담도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계속될 것이라고 말한다.

[뉴욕 타임스] '모던 러브' 칼럼과 더불어 [더 럼퍼스] [더 워싱턴 포스트] [더 시카고 트리뷴] [맥스위니의 인터넷 동향] [이스턴 아이오와 리뷰] 등에 꾸준히 글을 기고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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