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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인사이트 May 24. 2023

내가 이걸 왜 보기 시작했더라




내가 이걸 왜 보기 시작했더라
 

어느 순간부터 내가 남는 시간을 보내는 방식이 조용하지만 요란스럽고 또 텅 비어있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머릿속의 질서는 마구 흐트러지는데, 그걸 바로잡을 새도 없이 새로운 자극을 들이붓는 기분.

 

숏츠, 릴스..., 슬라이드 한 번이면 거슬리는 광고도, 끊김도 없이 계속해서 내가 좋아할 만한 콘텐츠들을 보여주는 각종 매체들. 분명 처음엔 이걸 보려고 했던 게 아닌데, 정신을 차리고 나면 언제 여기까지 왔지 싶을 정도로 온갖 잡다한 영상들을 섭렵하고 난 뒤였다. 한 번 습관이 굳어지니 딱히 볼 것이 없어도, 유튜브에 들어가서 메인 화면에 뜬 영상들을 목적 없이 보는 때가 많았다. 말마따나 그저 계속 그것을 보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 것이다.

 

내 생각이 콘텐츠를 끌어오는 것이 아니라, 알고리즘과 추천 영상들에 생각의 흐름이 끌려가는 형국이었다. 내 인지가 어떤 대상을 특정하기도 전, 알고리즘은 한발 먼저 그 인지가 향해야 할 방향을 유도해내고 있었다. 요란하지만 텅 비어있다는 모순적인 감상이 최근 들어 특히 강해진 건 그런 특성이 숏 플랫폼의 유행과 맞물렸기 때문이었다. 인지의 유도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여러 차례 일어나지만, 유도 당했다는 것을 인지하고 발을 뺄 틈도 주어지지 않을 정도의 자극이 계속해서 몰아친다.

 

알고리즘은 높은 확률로 내 입맛에 맞을 만한 영상들을 계속 들이민다. 그것을 보고 있다 보면 처음 내가 앱을 켜게 된 이유를 잊어버리고, 마치 내가 원래 그 영상들을 싶었던 것처럼, 내 본래의 목적과 취향과 선호가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느끼게 된다.

 

사실 이건 영상에 국한되는 것만은 아니다. 방문 기록, 검색 내역, 이용 기록 등 최근의 이용 경향에서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알고리즘은 계속해서 사용자의 취향에 부합할 만한 것들을 제안한다. 최근에 구매한 제품과 비슷한 것을 추천하는 광고 배너라든지, 자주 듣는 음악을 바탕으로 자동 생성된 플레이리스트라든지.

 

그런데 사실 취향이란 건 생각보다 많은 변수에 의해 흔들리기 쉬운 요소다. 애초에 취향이란 것 자체가 단순히 몇 가지 키워드로 요약되기 어려운 총체적인 것이기도 하고, 한 사람에게 한 가지 취향만 기계적으로 배당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시간에 따라 취향은 변화하기도 하고, 또 동시에 모순적인 여러 가지를 좋아할 수도 있다. 어떤 시기, 상황, 감정 상태 등을 거치고 있는가에 따라 취향은 특정되기 어렵게 달라지고 그래서 알고리즘이 지금 이 순간, 유저가 무엇을 좋아할지를 '있는 그대로' 예측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대신 알고리즘의 작동 근거가 되는 정보들은 곧 과거에, 오래, 많이, 본 것들이다. 문제는 이런 가시화된 지표들이 취향의 기준점으로 삼아지기에는 어딘가 논리적 허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오래 보았다고 해서 유저가 그것을 좋아하리란 보장은 없다. 영상을 틀어놓고 깜빡 잠이 든다든지 하는 특수한 경우가 발생했을 수도 있고, 긴 시청 시간이나 잦은 클릭은 유저가 평소에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취향을 가졌는지와는 별개로 그저 시간을 보내기 쉬운 흥미 본위의 콘텐츠들을 찾아다닌 결과일 수도 있다.

 

결국 실제와는 무관하게 눈에 띄는 것, 소화해내기 쉬운 것, 자극적으로 주의를 끌 만한 것들이 나의 취향처럼 여겨지기 쉽다는 것이다. 그렇게 간주된 취향에 기반해 알고리즘은 또 비슷한 무언가를 계속해서 들이민다. 주의를 쏟기 쉬운 것과 내가 선호하는 것이 곧 동의어는 아니지만, 가랑비에 옷은 젖기 마련이다. 본래의 목적이나 내적인 고민을 잊은 채 그런 자극들에 노출되다 보면, 나의 선호 역시 그것을 따라가 버리기 쉽다. 계속 눈에 띄는 것을 예전보다 더욱 자주 의식하게 되고 거기에 익숙해지는 건 어찌보면 당연하다.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호흡이 긴 책이나 영화 따위를 좋아하던 건 언제고, 곧바로 자극을 주는 콘텐츠에 젖어들다 보니 무언가에 제대로 집중하기 위한 예열 시간과 잠깐의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게 되었다. 결국 서두에서처럼 즉각적인 매체들을 매일 찾고 있는 스스로를 어느 순간 발견했다. 적어도 내 경험에 비추어 보았을 때는, 알고리즘은 단순히 입맛에 맞을 만한 것을 '제안'하는 역할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취향을 '구성'해나가고 있다고 봐도 무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추천시스템이 ‘이미 보아온 것’에 기반 한다는 점은 특히 유의할 필요가 있는데, 비슷한 주제들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경험은 사고를 고립시키고 편향되게 만들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알고리즘에 의해 비슷한 주제를 가진 것들, 그것도 주의를 끌기 쉽도록 자극적인 것들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개개인의 취향은 모여서 결국 하나의 사회적인 흐름으로 이어진다. 단편적인 자극, 생각을 내맡기고 몰입하기 좋은 콘텐츠만을 쫓는 습관이 사회의 경향으로 굳는다면, 그 사회는 사유하고 토론하는 힘을 잃어버릴 것이라는 예측은 어렵지 않다.

 

단순히 기술 비관주의에 기반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이미 알고리즘에 기반한 각종 편의 기능들은 일상에 깊숙하게 녹아 있은 지가 오래라(나 역시 그 편의성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지금 이 시점에 이러한 시스템의 존망 자체에 대해 논하는 것은 크게 유의미하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다만 알고리즘은 딱딱한 어감과는 달리 생각보다 더 ‘사회적인’ 것이고, 그 딱딱해보이는 것이 사실은 알게 모르게 내 존재를 구성해오고 있었다는 점은 종종 상기해볼 만하다. 모든 사유의 출발점이 되는 인지의 첫 순간을 ‘유도’해낸다는 특징을 가진 이 기술이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지, 오늘의 릴스를 넘기기 전 한 번 정도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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