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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를 받느니 주는 쪽이 훨씬 마음이 편하다.

by 아트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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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이 생일이었다. 사실 해를 거듭할 수록 그 자체로는 별 생각이 없어지는 날이다. 굳이 주변에 먼저 이야기를 하고 다니지도 않는다. 다만 이를 명분 삼아 좋아하던 얼굴들을 마주할 수 있음이, 오랜만에 듣게 되는 반가운 이들의 소식이 더없이 기쁠 뿐이다. 하지만 챙김 받는 일에는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아서인지, 약간은 마음이 무겁기도 하다.


나를 향한 작은 호의나 마음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는 일이 참 어렵다. 여러 이유로 축하를 받을 일이 생길 때마다 나에게 건네지는 인사들이 참 감사하면서도, 항상 마음 한 구석으로는 이 축하를 건네기 위해 필요했을 모든 성의가 그들에게 부담이 되진 않았을까 걱정스럽다.

단순히 물질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건 마음을 쓰는 일의 무거움에 대한 것이다. 모든 축하 인사나 뜻밖의 선물이나 간만의 안부 같은 것들을 마주할 때, 약간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어떤 표현 방식인가와는 상관 없이, 공통적으로 그 안에 담겨 있는 작은 사실이 있다. 그것들에 대해 계속 곱씹게 된다. 그러니까, 어떤 방식으로든 내가 누군가의 의식 안에 존재하며 그의 심력을 쓰게 했을 것이라는 점에 대해. 내 존재가 그들의 감정적인 자원을 소모하게 만들었다는 점에 대해.

갈수록 시간과 마음을 쓰기가 어렵도록 생활이 빡빡해진다는 것을 안다. 나로 인해 피곤스러워지는 이가 아무도 없길 바란다.

이런 생각은 좋은 마음으로, 가벼운 호의를 전하고 싶을 뿐인 상대에게는 오히려 실례가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모두 분주한 와중에 본의 아니게 신경 써야 할 무언가를 얹어주는 것 같아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어쩌면 두려움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에게 내가 순간이라도 귀찮고 번잡스러운 존재처럼 여겨졌을까봐 드는 조바심. 애초에 신경쓴 적이 없다면, 거추장스럽다 여기는 일도 없을 터다.

물론 지나친 걱정일 수도 있겠다. 그들의 마음은, 그 대상이 내가 아니었어도 이뤄졌을 인류애적인 어떤 마음, 오히려 적당히 멀기 때문에 건넬 수 있던 것일지도 모르니. 하지만 그건 그것대로 꽤 쌉싸름한 사실이다. 이런 고민이 우스워질 정도의 깊이를 가진 관계였음을 나 혼자만 모르고 있던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뭔가를 받느니 주는 쪽이 훨씬 마음이 편하다. 나를 향한 호의와 도움과 선의 앞에서 나는 은연 중에 계속 스스로가 무언가를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 맞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사람끼리 마음을 주고 받는 일은 그런 자격을 일일이 따져가고 재 가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의 저울 위에 올려졌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고개를 들이민다.

배배 꼬인 심사로 보일 줄을 안다. 밝고 맑은 마음들을 앞에 두고 나는 오히려 그들에게서 제쳐지고 밀려나는 가정을 한다. 생각을 해주면 해준 대로, 가벼운 마음이면 가벼운 대로 이유를 붙여서 불안해하는 마음이 스스로도 잘 납득이 가질 않는다.


그 정도야 어떻든, 뚜렷하게 긍정의 영역에 속하는 마음의 대상이 나일 수 있다는 사실은 영 익숙해지질 않는다. 그런 긍정성이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가늠하는 일은 항상 어렵다. 이 마음이 먼 발치에서의 친절인지, 긴밀한 유대의 표시인지 알아낼 재간이 나에겐 없다.

그래도 어떻게든 받은 마음들을 돌려주고 싶은데, 얼마만큼의 마음을 내보여야 적당할지 고민하는 건 더더욱 어렵다. 산뜻한 마음에 부담스럽게 반응하고 싶지 않고 정성 들인 마음에 무심하고 싶지 않다. 누군가의 마음을 받는 일에 무뎌지지 않으면서도, 주는 이의 기쁨이 무안해지는 일이 없도록 능숙하고 싶다. 마음을 마음 그대로 바라보고 싶다.

익숙해지기 어려운 것들 앞에서 솔직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싶다. 아직은 멀게만 느껴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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