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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갖고 있던 '열정'

[에세이] 과거를 그리워하는 이유 - 스포츠 경기를 보다가

by 아트인사이트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일 저녁. 약속이 있어 서울의 한 대학가로 향했다. 이제는 퇴근 후 약속에 대해 설렘과 즐거움보다는 피곤함과 다음 날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집과 회사를 반복하는 일상에서 하루라도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퇴근 이후 누군가를 만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


대학가 골목에는 과잠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대학생들로 가득했다. 새 학기가 시작했나 보다. 기껏해야 나보다 몇 살 정도 어리거나, 혹은 나랑 비슷한 또래일 텐데, 나에겐 그들이 가진 열정도, 활력도 모두 없는 듯했다. 저마다의 삶에 대한 척도를 이러한 것들로 나누는 것 자체가 실례이겠지만, 그럼에도 나의 마음속엔 왠지 모를 부러움이 존재했다.


적어도 20대 초반까지는 삶에 대한 걱정이 없었다. 고등학생 때는 ‘대학교 입학’이라는 목표만 이루면 되었고, 군 생활 당시에도 ‘무사 전역’이라는 목표만 이루면 되었다. 하지만 사회는 달랐다. 내가 무엇인가를 이룬다고 하여 탈출할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철없는 소리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이가 드는 것이 싫었다. 물론 아직은 어린 나이라고 생각한다. 20대 중반과 후반 그 어느 사이에서 힘겨운 항해를 하고있는 나는, 회사 내 함께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어린 축에 속한다. 높으신 분들은 항상 “내가 너 나이 때는…”이라는 말들을 자주 꺼내곤 한다. 나는 이 말들을 항상 새겨듣는 편이다. 이 말들에는 그분들이 젊었던 시절 누리지 못했던, 젊었을 때만 할 수 있었던 일들에 대한 후회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지금의 나에 대한 좋은 충고이다.


어릴 적부터 함께했던 친구들을 만나면 당시의 활력을 얻어갈 수 있을까? 정답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설렘 가득한 연애 이야기는 어느새 결혼에 대한 걱정들로, 무작정 꿈꿔왔던 찬란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회사 생활에 대한 어려움으로 변해갔다. 천 원짜리 분식을 먹어도 즐거웠던 우리들은 수만 원짜리 술값을 계산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지만, 우리의 활력은 이와는 반비례하는 양상을 띠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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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떠한 것에서 젊음을 잃지 않고 그때의 열정을 찾아낼 수 있을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에게 1순위는 ‘스포츠’이다. 그중에서도 어릴 적부터 열렬히 응원해 왔던 ‘프로야구’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잠실야구장을 찾은 것이 야구와의 첫 인연이었다. 약 15년 정도의 시간이 지난 지금도, 아버지는 예전 모습 그대로 팀이 잘하고 있을 때는 아낌없는 박수를, 반대로 팀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팀에 대한 쓴소리와 함께 채널을 돌리신다.


프로 스포츠가 전 국민에게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는 ‘지역 연고제’에 있다고 본다. 서울에서 자란 나는 서울 연고 팀인 ‘두산 베어스’를 응원하지만, 주변 친구들을 보면 서울 친구들임에도 기아, 롯데, 한화 등 다양한 팀을 응원하는 경우도 많다. 이를 통해 각 친구의 부모님이 어디 출신인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이는 우리 부모님 세대에는 고향을 떠나 서울로 상경하여 자리 잡으신 분들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


잠실 야구장에서 기아, 롯데 등 지방 인기 팀들의 경기가 열리는 날에는 자리를 구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그리고 이들은 원정팀임에도 불구하고, 홈팀보다 더욱 뜨거운 응원을 펼친다. 이들의 응원에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 나아가 젊은 시절의 추억들이 담겨 있다.


나 또한 어릴 적 함께 야구 경기를 관람하던 친구들과 지금까지도 야구장에 자주 방문하곤 한다. 당시 주목받던 신인 선수는 어느덧 팀을 이끄는 베테랑 고참 선수가 되었고, 당시 역사상 최고의 타자라고 평가받던 선수는 우리 팀의 감독이 되었다.


우리의 모습 또한 많은 것들이 변하였다. 동네에서 함께 모여 야구장으로 향했던 우리들은 저마다의 바쁜 삶을 살다가 퇴근 후 야구장에서 모여 인사를 나누었고, 어릴 적 입던 유니폼은 사이즈가 맞지 않아 새로운 유니폼을 구매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야구에 대한 열정과 팀에 대한 기대이다. 시즌이 시작하는 이때쯤이면, 우리는 모두 ‘올해는 다르겠지’라는 기대감과 함께, 어릴 적 함께였던 그때 그 모습으로 돌아간다.

독일 분데스리가의 레버쿠젠은 120년 만에 첫 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며남녀노소의 수많은 팬들이 열광하였다


최근 스포츠계에는 수많은 역사가 새로 써지고 있다. 얼마 전에는 손흥민 선수가 뛴 적이 있어 국내 팬들에게도 익숙한 분데스리가의 레버쿠젠이 120년 만에 첫 우승을 하였고, 메이저리그에서는 텍사스 레인저스가 창단 첫 우승, 국내에서는 LG 트윈스가 29년 만에 우승하며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하였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노인 팬들의 눈물이다. 어릴 적부터 해당 팀을 응원하던 소년이 백발의 노인이 되어 처음으로 팀의 우승을 함께했다는 것이다. 살면서 이보다 훨씬 어려운 일들도, 즐거운 순간들도 많았을 이들이 흘린 눈물의 이유, 어릴 적 갖고 있던 ‘열정’이라는 것을 마음속에서 다시 찾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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