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되뇝니다.
8월의 휴가가 끝나면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을 거라 믿었지만 인생이 늘 그렇듯 예상을 비껴갔지요. 그렇게 맞이한 8월 한복판은 그저 열심히 살 수밖에 없었고, 좀처럼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치 빠져나올 수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진 것 같았달까요.
나를 위한 여백을 만들고자 시작했던 일들이 어느새 산더미처럼 쌓여 저를 짓눌렀습니다. 책을 만들고 싶어 수강한 강의와 매일 주어지는 글감은 나의 텅 빈 곳간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었죠. 하나둘씩 밀린 글감들은 주말이 되면 더욱 불어나 저를 압박했습니다.
본업만으로도 바쁜데 나는 왜 이렇게 많은 일을 벌였을까. 글쓰기 모임까지 만들어 관리해야 하는 입장이 되자 한동안 무기력하게 침대에 누워 멍하니 시간을 보냈습니다. 글 더미에 깔려 죽어도 행복할 것이라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남은 것은 잿더미가 된 문장들과 그 속에서 작은 희망을 찾으려는 자신 뿐이었죠.
시간은 누구에나 공평하게 주어지기에 노력하면 모든 일을 해낼 수 있을거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체력 속에 정신력도 포함되어 있단 사실을 새까맣게 잊고 있었죠. 아무리 시간이 많아도 내가 회복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했고, 그 시간을 제외하면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은 고작 한 시간 남짓이었습니다. 그마저도 아무것도 하기 싫은 밤이라 스르르 잠들어 버리곤 했어요.
쓰지 않는다고 해서 삶이 불행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번아웃 없이 순리대로 흘러가는 삶이 감사하게 느껴졌죠. 행복은 생각보다 멀리 있지도 가까이 있지도 않았어요. 그저 옅은 안개처럼 희미하게 존재할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읽지 않는 것은 달랐습니다. 쓰기에 골몰하면서부터 읽기를 멈추었는데, 다시 읽기를 시작하기란 쉽지 않았거든요. 하루 종일 활자와 씨름하다 퇴근하면 검은 글씨는 쳐다보기도 싫었고, 그렇게 책태기가 찾아왔습니다. 책태기는 꽤 오래 지속되었어요. 점점 읽지 않는 인간이 되어갔죠. 쓰기에도 그 영향이 미치기 시작하자 나는 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인지 혼란스러웠습니다.
누구나 잃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제게는 읽고 쓰는 것이 그래요. 여백 속에서 읽고 쓰는 사람을 꿈꿨지만, 삶은 여백과 읽고 쓰기를 동시에 허락하지 않았을 뿐이죠. 그저 흘러가는 시간이 아닌 내가 붙잡은 시간 속에서 살고 싶었는데 인생은 모든 것을 다 주진 않았어요.
그럼에도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힘을 얻기 위해 씁니다. 책을 만드는 것은 도전이에요. 나의 한계를 절감하고 그래서 성장할 수 있었으니까요. 이젠 나의 책이 세상에 나올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아직은 미약하고 두서없는 원고이지만 어떻게든 이 줄기를 이어가야 함을 알고 있어요. 고민의 결과는 어떻게든 나올 것이고 저는 또 그것을 받아들이며 살아가겠죠.
작고 예민한 나의 품에서 벗어나 나올 글들이 조금이나마 환영받을 수 있도록 여백의 노트를 만들어야겠습니다.
숨 쉴 수 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