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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인사이트 Nov 30. 2024

핥고 만지고 내쉬는 것으로

 

희한하게, 기억에 남는 말을 잘 하는 한 교수님이 언젠가 들숨과 날숨에 대해 말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는 것에 대해서.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콩콩, 코 밑을 가리키며 직접 시연을 보여주셨던 것 같기도 하고. 몸집이 큰 그가, 별별 세계와 낯을 맞대다 결국 윗 입술 위, 코 밑의 작디 작은 공간에, 그리고 미약한 자신의 호흡에 집중한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삶의 거대함을, 그리고 때로는 숨막힘을 상기시켰다.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의 기준은 무엇일까? 나는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는 사람의 미약한 온기, 태아의 맥박처럼 조용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닌 모습을 떠올린다. 해야할 일, 7시 45분 혹은 11시 반이 적힌 계획서나 벽시계, 신념을 위해 투쟁하는 것에 끼지 못하는 시간의 흐름이다. 또렷해지는 것은 아마도 하천과 강산을 떠돌아 다니다 다시금 돌아오게 되는, 현재로서의 시간과 공간의 감각. 강에서 띄워 올린 풍등처럼 작은 것에 존재를 내맡기는 고요한 항해.

 

언어, 민족주의, 화폐 같은 것들. 인간과 인간만이 함께 만들 수 있다는 창조의 결과다. 없는 것에서 있는 것을 만드는 것. 이 때 있는 것은 있다고 함으로써, 그리고 있다고 하기로 함으로써 발생한다. 가상과 실재 사이의 상호작용은 연금술처럼 실재를 만들어 낸다. 약속과 계약, 합의. 가장 명료한 예시는 언어다. 눈썹 아래에 빛을 발하고, 물이 흘러 나오기도 하는 얼굴의 샘. 거꾸로 뒤집어 놓은 나룻배 같기도 하고 물고기 같기도 하여라. 우리는 아주 옛날 언젠가부터 이 둥그런 부근을 눈이라 부른다.


처음에는 오합지졸로 시작했던 세계에 무언가가 제시되고 동의하고 혹은 모방하고. 그러면 정말로 우리를 둘러싼 세계가 제법 두터워지고 단단해진다. 국가의 존재나 화폐의 존재 기능이 의심받지 않는 것처럼. 이것이 인간이라는 종이 광합성을 하고 잎을 내는 방식인 것 마냥. 때맞춰 기술은 발전하고 건물들은 높아진다. 실재의 외연은 강물처럼 불어나고 삶의 전제들은 둑처럼 쌓인다. 믿음이야말로 인간의 화폐인 셈이다. 인류의 믿음은 이 우주를 얼마나 가득 채우고 있을까.

 
  

클로드 모네, "인상, 해돋이" (1872, 1873)



나는 물 앞에 옹기종기 모여 별다른 행위 없이 주말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어느 주말 아빠와 우리 가족은 물이 있는 낮은 땅, 뒤로는 즐비한 건물들이 서 있는 어딘가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빠는 돌연히 건물들과 부를 쌓고도 이렇게 낮은 흙으로 돌아오는 인간의 회귀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굽이굽이의 진화, 그리고 발전에도 불구하고 시원의 실재가 발없는 새처럼 우리 존재 어딘가에 숨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마치 태초에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시작점에서부터 지금까지 그 거리의 아득함에 현기증을 느끼듯. 그리하여 존재를 세계에 용해시키기 위한 의식들이 자행된다. 문을 여는, 호흡에의 의식, 차 마시기, 담배 피기. 실재하는 것 중에 가장 실재하는 것인 몸을, 피부를, 숨을, 입술을 핥고 만지고 들이킨다.

 

더듬더듬. 말을 잊고 더 넓은, 벽 없는 세계로 가고 싶다는 위험한 소망. 다시 단순한 생물로 추락하고 싶은 천박한 욕구일까. 기의와 기표 간 불일치로 인한 인지부조화일까, 인류 진화의 속도를 다 따라가지 못해 다리를 질질 끄는 흔적일까. 이것이 탈출인지, 성숙인지, 퇴행인지 고민한다. 메디타치오가 삶 자체가 되어도 되는지, 나는 부쩍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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