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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인사이트 Dec 15. 2024

수평선과 지평선 너머의 눈부신 세계

[도서] 호라이즌

 



누군가 달아나려 한다면 그 목적지는 어디일까?


북극에서 태평양,

갈라파고스, 아프리카, 호주, 남극까지

인간이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들로 떠났던

'여행하는 인간(Homo Viator)' 배리 로페즈가 머물렀던

수평선과 지평선 너머의 눈부신 세계

 

전미 도서상 수상 작가 배리 로페즈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발표한 역작 [호라이즌]이 한국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이 책은 배리 로페즈가 자신의 여행 경험을 집대성한 책으로, 그가 선보인 글 중 가장 방대하면서도 장소와 사유를 옹골차게 엮은 논픽션이다. 북극, 남극, 북태평양, 남태평양, 아프리카, 호주 등 여섯 지역을 갈무리해, 하나의 교향곡처럼 아름답고 치밀하게 재구성해냈다. 로페즈는 이들 장소를 배경으로, 북극권 지역으로 용감하게 파고든 선사시대 사람들, 아프리카를 침략한 식민주의자들, 태평양을 항해한 계몽주의 시대의 유럽인들, 외교의 문을 걸어 잠근 아시아로 건너간 미국인들 등을 엮어 탐험과 여행을 둘러싼 인류의 오랜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들려준다. 한편, 인류의 기원(인류학), 땅의 역사(지질학), 생물들의 뒤섞임(생물학), 탐험과 식민주의(정치), 기후변화에 대한 윤리적 과학적 성찰(윤리학과 과학) 등 다양한 영역의 주제들을 탐색해나간다.

 

이 책의 키워드가 되는 '여행'은 로페즈에게 지혜를 모으는 활동, 자신을 바꾸는 행동이다. 그는 익숙한 것의 경계를 넘어가 미지의 세계로 향하기 위해 끊임없이 길을 떠났고, 눈앞의 풍경을 보면서 기꺼이 경이로움에 사로잡혔으며, 길 위에서 만나는 낯선 것들이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더불어 각각의 장소를 거쳐 간 인물들을 호명하고 서로를 탁월하게 연결하는데, 이 과정에서 그는 인간이 노정하는 모순을 외면하지도 경멸하지도 않고 기꺼이 끌어안으며 끝내 초월한다. 저자가 생생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보여주는 지구 곳곳의 풍경과 사람, 과거와 현재는 책을 읽어나가는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남길 것이다.

 

 

땅 끝에서 바다 끝까지, 그리고 빙하 끝까지

여행과 장소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이 담긴 책

 

"자기가 어디에서 온 존재인지 알아야 길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살지 않을 수 있다." [호라이즌]에서 배리 로페즈는 사람들이 길을 잃지 않기를 바라며 지구의 숨겨진 푯말들과 조각들을 내민다. 그는 우리 대부분은 결코 보지 못할 지구의 여러 지점들을 여행하면서 경외심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 모든 풍경 속에 길을 잘못 든 이들이나 길을 잃어버린 이들의 슬픔이 부드럽게 뒤섞인다. 확실히 이 세상은 오랫동안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 곳이 아닌데, 놀랍게도 그의 어조는 내내 희망적이다. 그는 순간순간에 집중하는 알아차림으로 슬픔을 지그시 달래며, 독자들이 주목해야 할 것들과 보아야 할 것들에 시선을 다시금 집중시켜 자신만의 길을 찾도록 돕는다.

 

로페즈는 북극 선주민 정착촌의 잔해부터 운석 조각이 숨어 있는 남극 고원 가장자리까지, 사는 내내 자신을 끊임없이 부르고 손짓했던 장소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또한 18세기의 영국 탐험가 제임스 쿡이 처음 상륙한 북미 대륙 서해안부터 식민지 교도소 부지가 있는 호주 태즈메이니아의 남쪽 해안까지, 국가의 역사에서 새로운 공포의 지층을 발견할 수 있는 곳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다만 책에서는 시간이 선형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수백 페이지에 걸쳐 특정 날짜를 언급하거나 설명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로페즈는 더없이 친절한 안내자이지만, 독자에게 제시하는 진정한 방향은 오직 장소뿐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 삶에 본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장소라고 암시한다.

 

이 책의 핵심은 무엇보다 여행의 본질과 호모 사피엔스가 처음부터 여행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탐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저 여행 문학인 것만은 아니다. [호라이즌]은 한 발 물러서서 자연의 장엄함을 바라보는 책이 아니라 우리가 존재하는 맥락을 이해하고, 폭력적이고 호기심 많은 종으로서 우리가 어떻게 그 맥락을 공격적이고 끈질기게 재구성하는지 파고드는 책이다. "여행은 과거부터 이어진 상식을 수정하고 선입관을 떨쳐버리도록 자극한다. 또한 우리의 정신이 맥락을 고려하도록 유도하고, 인류에 관한 절대적 진실의 독재에서 정신을 해방한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길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도 이해하게 해준다. 사람은 똑같은 길보다는 자신만의 길을 가고 싶어한다."

 

 

여행 끝에 얻은 하나의 질문 - 나는 무엇을 배웠을까?

인류가 일으킨 말썽을 해결하기 위한 간곡한 제언들

 

한편 이 책은 지구에 사는 인간의 위기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는 책이다. 1980년대 중반, 배리 로페즈가 [북극을 꿈꾸다]를 출간했을 때만 해도 극북 지역의 생태계와 동물, 사람들이 직면한 위험은 대부분 자연, 즉 험준한 지형에서 살아가는 기본적인 어려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석유 탐사와 채굴이 호황을 누리기 시작하면서 도로와 중장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지역 사회는 무례한 침략의 영향을 느끼고 있었다. 로페즈는 이 지역과 지구의 미래에 대해 걱정했지만, 이 땅의 모든 것을 존중하며 행동하면 숨 막히는 무지가 우리에게서 멀어지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을 되돌아본다면, 우리는 세상을 향해 다르게 행동해야 한다고 외치고 싶을 것이다. 생태계 파괴를 멈추고, 화석 연료를 태우지 말고, 모든 것이 무너지기 전에 협력을 시작하자고. 오늘날 산업 발전과 기후변화의 연쇄적인 영향이 지구의 다른 많은 지역을 변화시키는 것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로페즈가 걱정했던 상황이 현실로 다가왔음을 여실히 느끼게 된 것이다.

 

이 책은 로페즈가 스스로가 던진 인간을 둘러싼 질문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그렇게 세상의 많은 장소를 보고 난 후, 나는 인간이 초래한 위험, 인간의 승리, 인간의 실패에 대해 무엇을 배웠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 그 답은 900쪽에 걸쳐 펼쳐지는 몽환적이면서도 절박한 호소처럼 다가온다. 로페즈는 가는 곳마다 인류의 무자비한 행태에 대한 안타까움과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고자 하는 간절함을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인간의 끔찍한 행위를 끊임없이 상기시켜도 로페즈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매력은 줄어들지 않는다. 세계 구석구석, 심지어 가장 부끄러운 역사의 현장을 탐험하는 중에도 우리는 참을 수 없는 호기심과 이끌림을 느끼며 읽어나가게 된다. 그것은 로페즈만의 희망 전략 덕분이다. 매우 현실적인 환경적 실존적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로페즈는 기억과 꼼꼼하게 기록된 현장 노트를 모두 찾아내 자신의 경험을 재구성하고, 축적된 지혜를 채굴하며, 희망의 빛을 찾아 그 자신이 시간을 보냈던 먼 곳들로 우리를 데려간다.

 

 

"배리 로페즈처럼 쓸 수 없다면 자연 묘사는 그만둘 것."

지구의 생명력을 도드라지게 나타내는 특별한 글쓰기

 

로페즈는 이야기(내용)의 걸출함 못지않게 아름답고 아귀가 딱 맞는 만연체 문장으로 유명하다. 이 책에서도 놀라울 정도로 여유 있는 필치로 우아하게 글을 쓴다. 총 여섯 장으로 구성된 본문에서 각 장은 특정한 지리적 닻을 내리고 있는데, 이 닻이 정거장에 불과하다는 점과 핵심을 날카롭게 파고들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점에서 W. G. 제발트의 [토성의 고리]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로페즈는 남극 대륙의 생명력 없는 아름다움을 묘사하지만, 얼음 성당이나 맑은 물, 거친 바람은 그 어떤 존재보다 생명력 있는 문장으로 우리 몸을 시리게 파고든다. 또 독자들을 바다로 데려가 바다표범의 숨결이 콧구멍과 폐를 채우는 경험을 공유하기도 하는데, 작은 것이 우주로, 다시 가장 작은 것으로 펼쳐지는 문장들이 너무도 능숙하고 아름답게 표현되어 끝이 다가올수록 아쉬움을 느낄 것이다. 이런 미문의 기술은 다른 작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쳐왔다. 지구에서의 인간에 대해 글을 쓰는 수많은 작가들은 우리 주변 풍경의 눈에 띄지 않는 세부 사항을 관대함, 경이로움, 구체성으로 포착하는 로페즈의 특별한 기술을 본받아 작품을 써왔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났을 때 또렷하게 떠오르는 이야기는, 우리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지만 아직 준비할 시간이 남아 있다는 메시지다. 다른 모든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존재는 궁극적으로 어둠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 중 누구도 그 어둠 속을 살아서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었는데도, 바로 그 희망이 우리를 감싸 안는다. 그렇게, 로페즈가 우리에게 선물한 것은 현재에 대한 관대한 시각, 그리고 어둠 속에서도 우리 앞에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전언이다. 그 안에는 희망이 있고 보존할 가치가 있는 것들이 있다. 이 사실을 품는다면, 우리의 하루하루는 조금 덜 힘들지도 모른다.

 

 

배리 로페즈 (Barry Lopez, 1945~2020)

 

1945년 미국 뉴욕주 포트체스터에서 태어나 캘리포니아주 샌퍼낸도밸리와 뉴욕 맨해튼에서 성장했다. 이후 노터데임대학교에서 글쓰기, 사진, 연극을 공부했다. 1960년대부터 땅과 인간의 관계를 비롯해 인간의 정체성 문제를 다룬 픽션 및 논픽션 작품들을 발표하는 한편, 다른 작가들이나 사진작가, 화가, 음악가, 극작가, 환경 운동가, 과학자 등과의 공동 작업을 왕성하게 모색했다. 1970년 매킨지강과 숲의 풍광에 반해 오리건주 핀록 지역에 정착했지만, "어딘가 부서져 있는 지구"를 감각하며 여러 장소로 떠나기를 반복했다.

 

1978년 현장 조사를 바탕으로 한 [늑대와 인간에 대하여]로 전미 도서상 최종 후보에 올랐고, 1986년에는 역시 오랜 현장 조사를 거쳐 쓴 [북극을 꿈꾸다]로 전미 도서상을 수상했다. 평생 약 일흔 개 나라를 여행하면서 스무 권이 넘는 책을 펴낸 그는 2020년 일흔다섯의 나이에 암으로 생을 마감했다. 배리 로페즈의 원고와 메모, 현장 기록 등은 텍사스 공과대학교에 보관되어 있다. 저서로 이 책 이외에 [북극을 꿈꾸다] [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 [늑대와 인간에 대하여] [황야 건너기] [북아메리카의 재발견] [강의 기록] [사막의 기록] [저항] [울버린의 교훈] [현장 노트] [까마귀와 족제비] [변명] [이 삶에 관하여] 등이 있다.

 

[호라이즌]은 배리 로페즈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집필한 장편 논픽션으로, 북태평양 동부, 캐나다 북극권, 갈라파고스 제도, 아프리카 케냐, 호주, 남극 등 세계 곳곳을 다니며 얻은 평생의 경험과 배움을 집대성한 저술이다. 이 책에서 로페즈는 지구라는 장소와 시간이 선사해주는 경이로움을 만끽하는 한편, 그곳을 지나쳐 간 오래전 인간들의 삶을 공감 속에서 반추하고, 지금의 인간들을 연민의 마음으로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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