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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인사이트 Dec 14. 2024

이 시국에 시




고백하자면, 그 밤에 나는 웃고 있었다. 황당하고 허탈해서 웃음이 새어나왔고, 그 웃음에 홀로 당황해서 재빨리 표정을 숨겨야 했다. 그러자 뒤늦게 분노가 찾아왔다. X발. 진짜 X새끼네. 답도 없는 나쁜 새끼네. 심각하게 미친 새끼네. 사람이 아닌 새끼네. 도저히 웃을 일이 아닌 것에, 필사적으로 분노해야 마땅한 일에 웃음을 터뜨린 죄로 나는 무질서한 감정의 소용돌이 안에 휩쓸려야 했던 것. 다행히 긴박했던 상황이 빠르게 수습된, 그러나 여전한 공포와 긴장이 남아있는 그 아침부터 지금껏 나는 생각해야만 했다.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는 어디로 가게 되나.


현실에서 잊고 있던 악몽이 어느 밤에 깨어났고, 우리는 아직 떨고 있다. 법과 질서를 포기할 수 없어 절차를 따라 극복하려는 노력은 아름답지만, 타인의 공포에 무감한 사람들이 공포를 이용하려고 발버둥하고 있는 현실은 지나간 밤보다 더 무섭다. 그러니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겨울의 매서운 추위와 그보다 더 서늘한 무감함 앞에서 소중한 가치를 지키는 몸과 목소리에게 존경을 보내며, 정당한 권위와 권리로 맞서고 있는 대리자들에게 응원을 보내며, 나는 그저,


겨우 시 몇 편을 찾아 읽는다.

 

우리는 마스크를 쓰고 교실에 앉아 있다.

너희 신종 플루 들어봤니?

소란스러움 속에서
어, 선생님 옛날이야기 한다.

앉는 몇몇 친구들이 있고

사스요? 메르스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요?

그래. 옛날 옛적에,
우리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 김소형, <나 옛날 사람인가 봐> 중에서

 

길게 남은 계엄의 공포 앞에서 ‘트라우마’를 운운하는 이들이 있다. (아무리 끔찍한 범죄자라고 해도) 우리가 모시던 지도자를 다시 잃는다면 우리는 또 무너질 거라고, 그러니 이전의 결정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우리의 이익을 위해 이번엔 반민주주의의 가치를 옹호해야 한다고. 시야가 좁고 생각이 무능해서 “그래. 옛날 옛적에,” 하며 그저 가까운 과거만 돌아볼 수 있는 사람들. 누군가의 가슴에 뚫렸던 총구멍은 외면한 채 내 손을 베었던 얕은 상처 하나만 들이밀며 징징대는 사람들.


하지만 그들이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는 “소란스러움”에서도 우리의 의지는 굳건하다. 우리가 우리의 과거에 진 빚은 갚기에 아직 많이 남아있으므로, “흘러내리는 마스크를 붙잡”듯 굳세게 마음을 다잡고, 병든 오늘날 민주주의의 “아픈 이야기”를 끝까지 써내려가야 한다는 것.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려는 세력으로부터, 우리가 우리의 민주주의를 다시 지켜냈다는 이야기를. “나 때는 마스크를 끼고 수업을 했는데 말이야”하는 과거형의 말처럼, 아찔했던 그날의 밤을 언제까지고 기억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그렇지 않으면 먼 훗날 참혹해진 세계에서 “아이들은 방독면을 쓰고” 물어올지도 모른다. ‘민주주의라는 게 뭔가요’라고.


길을 걷는다는 것은 하나의 꿈
길을 따라 걷다가 하나의 광장을 마주한다는 것은 또 하나의 꿈
마을 한복판 원형 광장의 분수대에 이르기까지
아무런 의심 없이
아무런 고민 없이
아침에 눈뜨고 대충 먹을 것 삼키고 어제의 험한 이야기 흘려들으며
문을 박차고 나가서 곧장 향한다는 것은
모두의 싸움과 놀이의 양상이 거리 가득 눈부시게 흐르는 햇빛 속에 은폐되었다는 것이다

- 김상혁, <마을 광장> 중에서

 

서로 다른 이들이 각자 다른 길을 걷는 것. 그 수많은 길들을 충분히 존중해주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이뤄내야 할 궁극이다. 다만 그 아름다운 끝에 다다르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의 꿈”을 꿀 수도 있어야 한다. 각자가 자신만의 “길을 따라 걷다가”도 곧장 “하나의 광장을 마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광장은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한다. 광장에 언제든 모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아무런 의심 없이 / 아무런 고민 없이 / 아침에 눈뜨고 대충 먹을 것 삼키고 어제의 험한 이야기 흘려”듣는 일상처럼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하는, 최종적이며 불가역적인 합의다. 그런 합의 아래서는 이따금 발생하는 “모두의 싸움”도 “놀이의 양상”처럼 변해 눈부시게 아름다운 방식으로 은폐될 수 있다.


그 어떤 개인도, 집단도 민주주의를 이룩한 우리의 합의를 뒤엎을 수 없다. “광장이란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가 편히 잠들어야 한다고 모두를 부추기는 함정”을 놓으려는 누군가가 으슥하고 추운 밤에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종류의 일이다. “광장에 모인다는 것은 / 광장 분수에 이른 뒤에야 질문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우선 광장에 모이고, 함께 광장을 지키고, 그 후에 각각 삶의 방향을 질문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것은 민주주의를 위한 전체주의다. 그런 놀라운 일들은 언제나 벌어져야 하고,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한 편의 시를 조각내서 멋대로 덧붙인다는 사실에 미안함을 느낀다. 그러나 지금 당장 절실한 문장 하나 필요할 때 우리는 시를 찾는 것 아닐까. 시인은 그 절박함의 날에 대비하여 시를 썼을지도 모른다. 시란 어쩌면 그런 것이다. 시를 품은 시대의 어떤 시국(時局)에서도 유효한 것. 그런 문장들의 외침. 심지어 지금 이 시국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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